1980년대-고백: 팬진 편집자

<아스날 에코 에코> 편집장(1987-1991), 가이 하보드

"1987년 <아스날 에코 에코>를 창간했을 때 <토요일이 오면>[각주:1]의 접근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축구에 대해 별 논쟁거리를 쓰지 않던 시절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시중에 있던 모든 잡지 중 가장 독창적이었으니까요. 이 팬진이 아스날 팬들에게 중요한 것들을 논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우선 서포터들을 웃게 만들고 싶었어요. 창간호 때, 일천부를 찍어서 제 친구에게 돈 좀 쥐어주고 팔라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스테이플러를 찍었어요. 1987년 말 제가 창간호를 팔 때, 저는 노스 뱅크 쪽으로 내려오는 계단 꼭대기에서 서성거렸어요. 당시 사람들이 팬진이 뭔지가 알리가 없죠. 그래서 이상하게 쳐다보더군요. 이걸 가지고 뭘 하는지 알지 못했어요. 첼시 전 경기 시작 전에는 2, 3부를 팔았는데, 사실 기운이 좀 빠졌죠.

  하프타임이 되니까, 좀 더 팔리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한 부 사려고 몰려들었어요. 기적의 순간이었죠! 그때 경찰이 사람들이 몰린 것을 눈치를 채고, 제가 뭘 팔고 있는지 보더니 썩 좋아하지 않대요. 그래서 저는 클럽 사무실로 끌려갔습니다. 헤드라인은 대충 이런 식이었어요. "충격보도. 조지 그레이엄이 5파운드나 쓰는 순간 포착-인터폴도 경악." 이적시장에서 돈 안 쓰는 것을 비꼬는 거였거든요. 관계자의 입장은 '이런 것을 팔게 할 수는 없습니다'였구요. 그래서 하이버리 안에서 팔 수 없게 됐습니다. 관계자는 조지가 제 농담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지가 화를 내겠다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나요. 경기장 출입을 금지당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경기 나머지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길레스피 로드 쪽 입구의 노점을 하나 빌렸지요. 경기마다 3000여부를 팔았습니다. 꽤 괜찮은 성적이죠. 하지만 몇몇은 잘 이해하지를 못했어요. "레스터 피곳, 새 토튼햄 감독으로 선임"이라는 헤드라인을 단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 탈세 혐의로 구금되어 있었을 때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게 장난인지 모르는 거에요. 앨런 파트리지가 진짜 토크쇼 호스트라고 오해하는 것이랑 똑같다니까요! 뭐 이해하거나 말거나 둘 중 하나죠.

  진짜 언론들을 흉내내기 시작했어요. 모든 권에, '허브가 똑바로 말합니다'라는 칼럼을 실었는데 존 새들러가 <선>에서 하던 것을 베낀 것이지요. 자주 토튼햄을 놀렸습니다. '허브'가 "호들은 신을 찾았고, 워들은 음악을 찾았지만 둘 다 이발사는 찾지 못했다. 지저분한 것들."라고 적은 대목도 있었죠. 문장이 짧을 수록 효과는 강했습니다. 최소한 우리 생각은 그랬다구요. 이런 헤드라인도 있었습니다. '첼시 감독 존 홀린스가 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라든지 '노팅엄 포레스트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가 스티브 윌리엄스가 자신의 햄스터를 먹었다고 폭로하다'라든지요. 미러나 더 선의 헤드라인을 베껴온 것이지요. 하지만 <아스날 에코 에코>는 종종 진지한 주제도 다루었요. 경기장 관중들의 고급화 현상이라든가, 대처가 제안한 회원제 계획, 조지 그레이엄이 찰리 니콜라스를 팔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매치데이 프로그램에서는 결코 다룰 일 없는 것들이잖아요, 그렇죠? 에코가 아스날 팬들에게, 최소한 잡지를 사 본 팬들에게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이 처음으로 직접 반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잖아요.

  저 자신은 팬진 편집자였던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머슨, 로캐슬, 토마스, 아담스가 있는 그 세대가 제 세대였어요. 클럽은 앞으로 전진하고 싶어했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오고 싶어했습니다. 우리가 당시 대단히 여겼던 것을 지금 돌이켜보면 기이합니다. 리틀우즈 컵 우승은 그땐 크게 보였지만 이제는 별로 중요한 대회가 아니잖아요. 아마 아스날 팬들의 기대치가 크게 올라가서 그렇겠지요. 요즘은 늘 3위 안에 들어야 하지만, 그때는 그런 고상한 야망은 없었어요. 타이틀을 우승할 수도 있고, 그냥 중위권에 머물 수도 있었죠. 80년대 말 팀 성적은 정말 요동쳤거든요. 하이버리에 오면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에요. 돌이켜보면 늘 새로웠죠. 편집자일 때 가장 즐거웠던 적은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팬들이 팬진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이에요 한 번은, 어떤 남자가 무엇이 웃긴지 친구들에게 보여주더니, 다 같이 웃는거에요. 정말 좋았어요.

   <에코>는 1991년에 폐간됩니다. 리버풀 쪽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계속 팬진 편집자를 한다는 것은 이해가 상충되는 일이었어요. <에코>에서 리버풀 선수를 공격하자마자, 그 선수를 인터뷰할 수는 없잖아요.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습니다. 4년을 했고, 꽤 오래 했는데다가, 당시 팬진 열풍이 몰아칠 때 그 많은 팬진 중에서도 우리가 괜찮은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팬진의 첫 사설에 이렇게 적었지요. "…가슴 사진도, 별점도, 조언 콜린스[각주:2]도 없다. <아스날 에코 에코>의 목적은 정말 중요한 일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흐믓합니다.

<구너> 편집장(1987-2001), 마이크 프랜시스

"80년대 말에, 많은 아스날 팬들이 매치데이 프로그램에 실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불만을 달래줄 용기워 결단력이 필요했지요. 당시 축구에 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는 않았고, 언론보도도 지금에 비하면 훨씬 모자랐습니다. 요즘 신문들은 스포츠 섹션만 따로 내놓지만, 그때는 16페이지짜리 부록은 없었거든요. 아스날 팬들이 1980년대 말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몇 년 동안 축구를 잘 하지 못했고, 1988년에야 마침내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때는 그냥 조금만 잘해도 너무 새로웠고, 특히 성공에 굶주린 18살짜리 소년인 제게는 더욱 더 놀라운 기분이었습니다.

  마침내 응원가처럼 조지의 군대와 같이 전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스날 팬들이 그때는 꽤 느슨해서 자조도 잘 했지요. 80년대 말의 축구에서는 자본이 그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았어요. 한 시즌에 10경기 지는거야 놀라운 일도 아니어서, 진다 하더라도 세상이 끝나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당시 잉글랜드 팀들이 유럽 대화를 못 나가서 유럽대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었고, <구너>지를 그 발판 삼으려했습니다. 그리고 곧 팬진 하나를 편집한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감을 요하는 것이고, 팬들이 제가 뭐라 말하는지 귀담아 듣는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구너 창간호는 300부를 찍었습니다. 6호 째에는 800부를 찍었구요. 팬진은 조잡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직접 복사기를 돌렸고,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주말 밤새 팬진을 엮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제가 팬들에게 팭진이 뭔지 설명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몇몇은 사겠다고 하고, 몇몇은 '죄송합니다.'라며 걸어가버렸죠. 보통 제가 너무 수줍어하거나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구너 판매상들은 하이버리 도처에 널려있고 팬들에게 경기일 추억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도, 경기장 안에서 판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코 지에서 일하는 가이처럼 끌려가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클럽이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팬진 운동이 팬들을 더 비판적이고 탐구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구요. '레드액션'같은 단체도 팬진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구너는 초창기 팬진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에코>와 <원 닐 다운>은 일찌감치 폐간했고, <하이버리 하이>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전문 필진이 있었음에도 종종 기고하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점이 바로 우리의 강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신선하게 해주죠. 다 제쳐두더라도, 80년대 말이 팬진에게는 정말 황금기였습니다. 선수들은 좋은 선수들이었지만 오늘날처럼 육체적으로 완벽한 종족은 아닙니다. 그루브스나 거스 시저 같은 선수들은 놀릴 수도 있었어요. 그리고 선수들이 평범하게 살았어요. 요즘은 선수들에게 접근할 수가 없죠. 게다가 논쟁거리도 많았죠, 입석을 없애려는 움직이라든지, 텔레비전의 영향력이라든지. 그리고, 조지가 이끄는 아스날이 지루한지 안 지루한지! 그 논쟁거리 중 몇몇은 논쟁 중 해결되었고, 몇몇은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논의되고 있어요. 벵거의 팀이 멋진 축구를 하지만, 그래도 80년대 말은 아스날의 성공이 너무 새로웠기에, 제게는 최고의 시기였습니다. 클럽과 축구의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할 때 구너를 시작해서 기쁩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1986년 창간된 영국의 축구 잡지. 모토는 '사소하든 아니든 관심 가는 분야라면 모두 토론할 수 있는, 진지한 견해와 유머러스한 견해를 모두 제시하는, 지성있는 축구 팬들에게 목소리를 낼 곳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이다. [본문으로]
  2. 영국의 여배우. 섹시한 이미지로 유명하고, 종종 칼럼을 기고하게도 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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