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80년대-검투사들

"진정한 아스날 선수라면, 그러니까 최고의 팀들을 상대로 뛰는 것을 즐기는 선수라면 대륙 축구와 유럽 축구 결승전이 그에 걸맞은 무대라는 것을 알 거야. 아스날이 1980년 컵 위너스 컵 4강전에서 유벤투스와 대진이 잡혔을 때, 온 몸이 흥분으로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지. 당시 유럽축구에서 가장 유명한 팀이었으니까." 윌리 영의 흥분은 동료 선수들의 그것과 같다. 아스날이 안더레흐트를 페어스 컵에서 무찌른지 10년, 하이버리는 다시 한 번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런던 각지에서 몰려온 유벤투스 팬들 때문에 관중석은 미어터졌다.

  경기는 하이버리에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전년 여름 리암 브래디는 1979-80 시즌 계약이 만료되면 아스날을 떠나고 싶다고 밝혔다. 팬들에게는 심장이 찢어질 것만 같은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경제적인 보상은 하찮았다. EEC의 규정 때문에 아스날은 600,000 파운드 이상의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윌리 영이 말했다. "그것도 무슨 돈이라구. 백만 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리암이지. 하지만 리버풀이나 맨유에 가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팀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어? 그들에게 타이틀을 품에 안겨주는 것을 넘어, 매해 리암의 천재성을 하이버리에서 구경하게 냅둘 수는 없잖아. 솔직히 어느 쪽이든 불쾌했지. 테리 닐도 참 갑갑했을 거야." 1979-80 시즌 내내, 타블로이드에서는 아스날이 시즌 안에 타이틀을 한둘 정도 더 얻어낸다면, 브래디가 남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닐에 따르면, 타블로이드들은 '장난 치는데 몰두했다'고 한다.

  어느 시점에서 브래디를 향한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스티브 브레넌 씨가 회상했다. "사실 좌석 관중석에서 먼저였어요. 한 때는 리암이 공을 잡으면 아드레날린이 솟아올랐는데, 이제는 환호성이 적어졌죠. 경기가 조금 소강상태에 접어들 때, 리암이 공을 몰고 나오면, '힘내 브래디, 돈 벌어야지.'라든가 '아직 우리를 떠나지 않았잖아.' 같은 함성이 쏟아졌어요. 제 근처에 앉았던 사내 하나가 '브래디, 지금 당장 꺼지는 게 어때?'라고 고함을 질렀죠. 사실 당시 브래디의 활약이 좋지 못 했지만, 그 남자가 그 말을 했을 때, 관중석에서 거의 싸움이 일어날 뻔 했어요. 신성 모독이죠. 하지만 클럽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팬들과의 관계는 계속될 수 없어요. 브래디와 찰리 조지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찰리는 버티 미에게 쫓겨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미가 감독이 아니었다면 찰리가 남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반면 리암은 직접 '할 만큼 했다'고 말 했고, 노스 뱅크의 분위기가 싹 바뀌어 버렸습니다. 환호성이 점점 사그러드는 것이 느껴졌어요. 보통 사람들이 입석 관중들의 분위기만 중시하고 좌석에서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브래디는 관중 반응의 변화에 대해 솔직했다. "제가 있던 때의 아스날은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팀이었습니다. 3년동안 3번이나 FA 컵 결승전에 올랐지만, 성공의 상징인 리그 타이틀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생과 축구를 더 넓게 확장시키고 싶은 때였구요. 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테리는 재계약을 논의한 적이 없었어요. 팀이 제게 정당한 댓가를 주고, 타이틀에 도전할 만한 팀을 만들겠다고 약속을 했다면 다른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테리는 제가 떠날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클럽이 재계약을 논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사실 엉망진창인 때였지요, 제가 시즌 시작할 때 떠나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제 입장을 깔끔히 밝힌 것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떠나간다는 말에 심술난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요. 솔직히 예상하던 것이었어요. 소수였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아스날 팬들은 정말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도요. 유감입니다."

  그의 이적이 임박하자, 프랭크 스테이플턴과 데이비드 오리어리가 새로운 무대를 향해 똑같은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이어졌다. 브래디는 이제 몇몇 사람들에게는 앞잡이 비슷하게 보였다. 폴 베센이 말했다. "아스날 팬들은 걱정이 태산이었어요. 클럽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 보였고, 늘 활기 넘치는 테리 닐도 앞일에 짓누려 보였습니다. 사실 시즌 말미 일주일에 다섯 경기나 하는 것처럼 보여서일 수도 있지요. 유벤투스와의 4강전은 선수단 중 대부분이 처음으로 맞는 큰 경기였거든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닐은 아스날이 유벤투스의 '빠르고, 빠른, 매우 느린' 축구를 막아야 한다고 주지했다. 유벤투스는 1982년 월드컵을 우승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역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 골키퍼 디노 조프가 젠틸레, 카브리니, 브리오가 있는 수비를 지휘하고 있었다. 시레아, 카우시오, 타르델리가 중원에서 뛰고 있었고 모두 경기의 양상을 조절할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팀의 스타는 2년 전 로마에서 잉글랜드를 홀로 무찌른 은발의 남자 로베르토 베테가였다. 이탈리아 축구의 총아는 이탈리아의 TV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기까지 했다.

  1차전의 처음 20분은 한산하기 짝이 없엇다. 타르델리와 카우시오가 아스날 수비진을 몇 번 시험하는 와중 베테가는 부지런히 공을 찾아 다녔다. 경기는 20분 경, 문자 그대로 폭발했다. 보라색 연기를 내뿜는 폭죽에 윌리 영이 맞아 쓰러졌다. (테리 닐이 웃으며 말했다. "윌리가 딱이지 않소!") 그리고 불꽃이 사그라든지 얼마 되지 않아 베테가가 양발로 덮쳐 양말을 찢고 정강이 보호대를 박살내어 데이비드 오리어리의 정강이가 찢어졌다. 닐이 회상했다. "내가 살면서 본 태클 중 최악이었소. 데이비드의 선수생활이 끝장날 뻔 했고. 데려가서 사을 꿰메야 했지. 갑자기 경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소. 우리 서포터들은 화가 났고, 유벤투스 선수들은 약은 짓을 했소. 계속 유벤투스 선수들은 아픈 척하며 바닥에서 굴렀지. 얼굴을 부여잡고, 심판을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윌리 영이 말했다. "이탈리아 팀들은 당시 그런 짓으로 악명이 높았어. 그 시대 잉글랜드 선수들은 그런 행동을 잘 하지 않았고. 내 손에 시레아이 셔츠에 스치더니만 아주 트럭에 치인 것처럼 굴러다니더만. 심판은 당장 카드를 꺼내밀었지. 5초 지나니까, 씩 웃으면서 지 발로 일어나. 난 2차전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경기는 빠르고 거칠었다. 전반전, 브라이언 탈봇이 베테가를 박스에서 엎어트렸다. 페널티 킥이 주어졌다. 팻 제닝스가 막아냈지만 카브리니가 튕긴 공을 때려넣었다. 곧 마르코 타르델리가 그레이엄 릭스의 발을 걸다가 퇴장당했다. 5분 남기고, 윌리 영이 브래디의 크로스를 받아 머리로 연결하였다. 그러자 베테가가 스테이플턴에게서터 공을 뺏어내려다, 그만 자기 쪽의 네트로 집어넣고 만다. 하이버리의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후에, 닐은 인터뷰에서 베테가를 '축구계의 수치'라 하면서 '오리어리의 정강이 보호대를 갈아야 했다'라며 비난했다. 언론끼리 싸워대기 시작했다. 유벤투스 선수들은 닐이 이탈리아를 모욕했다고 주장하면서, 2주 후에 그를 응징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였다.

  대세는 아스날의 늦은 동점골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타임스>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동점골은 낙관론자에게 희망을 조금 줄 뿐이다…" 윌리 영이 회상했다. "아스날의 진정한 선수들이 맞서야하는 주장이었어. 모두들 우리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모든 역경을 딛고 싸우는 것이 바로 아스날 식이잖아. 또 아스날은 홈에서는 비실비실 하다가, 원정에서 사고를 친 적도 많으니까. 기자 나부랭이 하나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 '외국팀이 토리노에서 승리를 거둔 적은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난 그런 도발이 너무 좋아. 2주 후 폴 베센이 결승골을 넣어서 결국 내 직감이 옳은 것이 됐잖아!"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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