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50년대-구사일생

스날은 스스로 힘든 길만 골라 가는 습관이 있다. 리그 타이틀을 거의 따 낸 것처럼 보이고, FA 컵에 빨간색과 흰색 리본을 달 참이 되면, 갑자기 팀이 우당탕 무너진다. 반대로, 승리의 문턱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면, 다시 기어코 기어올라와 팬들이 90분동안 딸꾹질과 심장 박동에 괴로워하게 만든다. 물론 늘 그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 1952-53 시즌 막바지에는 알라모 요새 전투와 맞먹었다. 실은 날아가버린 2관왕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홈 관중들의 응원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 따위로 시즌 내내 오르내림이 심했다.

  이전 시즌, 아스날은 뉴캐슬에게 FA컵을 내주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6-1로 박살나며
마지막 난관을 못 넘기고 리그 타이틀과 FA컵을 모두 내주었다. 1952-53 시즌은 시작도 좋지 못했다. 총잡이들은 공격진에 로지, 리시먼, 고링, 홀튼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팀은 크리스마스 때까지 헤매기 일수였다. 1월에 선더랜드가 하이버리로 와 3-1로 이겼을 때는, 관중들이 불평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터 고링이 그 경기가 끝나고 하이버리 밖으로 나서다가 화가 난 팬하고 마주치고 말았다. "그 아저씨는 완전히 술에 취해가지고 자기가 30년대 아스날을 봤느니 어쩌느니, 우리는 그 발가락의 때보다 못하다니 하는거야. 그런 소리를 들은 선수가 나 혼자는 아니었지. 다른 동료 선수들도 팬들에게 구박을 당했는데, 기분 좋을리가 있나. 참 묘한것은 그래도 내가 그 사람 말에 동의를 했다는 거지. 우리는 30년대의 유산과 비견될만한 팀이 아니라, 한참 싸우는 팀이었단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1952-53 시즌 내내 3위 아래로 내려가 본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팬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 같아. 축복받은 것을 모르는 거지."

  고링의 동료 중 하나는 익명으로 <데일리 메일>의 기자에게 '팬들에게 화가 나며 그들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비스포츠적인 집단'이라고 말했다. 고링은 그가 누군지는 알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익명으로 남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아스날은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경쟁자였던 프레스턴과 울브스도 마찬가지였다. 2경기가 남았고 아스날이 프레스턴을 이기면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아스날은 마흔 경기에서 승점 52점을 얻었는데, 잠재적으로 우승할 가능성이 있는 팀이 시즌의 그 무렵에서 얻은 승점 중 가장 적은 승점이었다. 긴장한 아스날은 톰 피니의 활약에 농락당하며 딥데일에서 2-0으로 패배했고, 프레스턴을 누르고 우승컵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안방에서 6위 번리를 이겨야만 했다.

  돈 로퍼가 말하듯이, 이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즌 말에 우리는 모두 지쳐있었습니다. 경기장 상태는 심각했구요. 울브스와 프레스턴의 경기장은 진창이 따로 없을 정도였고, 한 발 디디는게 철근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번리 전 얘기를 하자면, 하이버리 경기장의 상태가 역대 최악 수준이었습니다. 잔디 한 포기 있었던 것 같지가 않고, 우리가 그 날 아침 그라운드 상태를 살피러 나갔을 때, 경기장 주변부에서 공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공이 멈추거나, 사람이 넘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죠. 끔찍했어요. 어깨가 무겁더군요. 하이버리의 우리 팬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리그를 우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보통은 우리들의 활력소인 조 머서조차도 킹스 크로스 역에서 토스트를 먹을 때 말이 없더군요. 장소야 늘 가는 장소였지만 날은 우리들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좀 황당했던건 다음날 FA컵 결승전이 열리는지라, 주변에 블랙풀과 볼튼의 팬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더군요. 프레스턴이 그들 지역 라이벌이거든요. 그렇다고 번리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경기는 5월 1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했다. 하이버리에 야간 조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스날 팬인 해리 라이트는 그가 경기장에 일찍 들어왔다고 확신했다. "사람들은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부터 경기장으로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어. 대단한 사건이라고 감지한 거지. 날씨는, 참 이상한 날이었지. 계속 소나기가 내렸고, 내 기억으로는 모두 우비를 챙긴 것 같아. 하지만 비 맞고 서 있어도 상관 없어 보이는 면면이었어. 사람들이 다들 경기가 매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문만 열리면 달려들 기세였지. 6시가 되자, 분위기가 달아올랐어. 정말 오래간만에 아스날 팬들은 하나로 뭉쳤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오만 명쯤 되었을 거야. 그래도 비는 자리가 있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깜짝 놀랐지.

  많은 팬들이 색깔을 맞춰 입고 장식을 달고 왔는데, 그 당시에는 드문 일이었어. 정말 관중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함께' 노력했지. 우리 모두 한 목소리로 '아스날, 아스날'을 외쳤어. 북쪽 스탠드와 남쪽 스탠드에서 말이야. 좌우 스탠드도 결국 따라했지. 놀라운 풍경이었어." 덕 리쉬먼이 동의했다. "그날 밤 관중들은 최고였습니다. 믿을 수 없는 함성이 귀를 뻥 뚫는 기분이더군요. 목 뒤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시즌에 얼마나 팬과 선수들이 반목했던 간에, 그날 밤의 환상적인 광경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죠."

 경기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경기 시작 6분, 번리의 데스 톰슨이 득점에 성공한다. 전반전이 반쯤 흐르고, 아스날이 드디어 공격의 흐름을 이어나갔다. 알렉스 포브스의 굴절된 슈팅 덕에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고, 2분 후 덕 리쉬먼 앞에 서 있던 지미 로지가 잽싸게 몸을 빼고, 덕 리쉬먼이 강력한 슈팅을 작렬시키며
아스날이 2-1로 앞서나간다. ("그저 루즈볼을 되는대로 쎄게 찼을 뿐입니다. 들어가는 순간은 정말 제 생애 가장 활홀한 순간이었죠.") 하프 타임 직전에, 지미 로지가 5 야드 밖에서 줏어 넣었다. 하프 타임에 대해서 해리 라이트가 회상했다. "억수같이 비가 내렸어. 그라운드를 물바다로 만들었지. 팬들의 활기가 잦아들었어. 얼마나 많은 골을 넣을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경기가 과연 취소될지 아닐지가 화제가 되버렸지. 물 웅덩이가 여기저기 생기고 있었어."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번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들이 이겼다면, 시즌을 4위로 끝냈을 것이다. 3월까지 리그 테이블 중간쯤에서 헤매던 팀에게 썩 나쁜 성적표는 아닐 것이다. 후반전이 5분 흘렀을 때, 번리의 빌리 엘리엇이 한 골 만회하여 점수는 3-2가 된다.

  그 시점에서 아스날 선수들은 잠그기를 시도했다. 40분 남았을 때는 정말 위험한 전술이다. 돈 로퍼가 말했다. "저는 조 머서의 다리가 완전히 풀린 것을 눈치챘습니다. 나중에 조는 그날 밤에 영원히 다리를 제대로 못 쓰게 되버렸다고 말했죠. 그가 일류 선수였던 마지막 경기라고 하더군요. 팀의 절반 정도는 젖은 경기장 때문에 경기 시작 때보다 무게가 두배는 나가보이는 공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매번 공을 찰때마다, 몸이 고통에 떨렸습니다. 저는 무릎을 다쳤고, 어느 순간 공을 경기장 모서리 부분에서 받아내면 완전 무너져 버릴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때 인대가 찢어졌더군요. 그러나 그 시절에는 아직 선수 교체 제도가 없어서, 그저 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미 로지와 피트 고링은 그 시점에서 유령 같은 존재였습니다. 걷는 것도 힘들어서 그저 공이 닿지 않는 곳에 방치해두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선택권도 없었고 그저 남은 30분 동안은 쓰러지지 않도록 있는게 고작이었습니다.

  톰 휘태커는 그 긴장상태를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걸어 나가서 브랜디를 연거푸 입에 부었죠. 아스날 팬들이 말하길 도저히 눈뜨고 못볼 광경이었다죠. 번리가 한 골만 넣었으면 우리는 끝장났을겁니다. 더 이상 반격할 힘이 없었거든요. 그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수비를 하고 있었고, 태클이라도 한 번 잘못 날리면 끝장인 상황이었습니다. 한 1분 정도 남았을 때, 제가 빌리 엘리엇을 박스에서 밀었습니다. 그 시절 규칙대로라면, 그가 그대로 그라운드에 넘어졌으면 페널티를 따낼 수 있었을 겁니다. 다행히도 그는 그냥 절 벗겨내고 계속 전진했죠. 그가 '돈, 그것 말고도 타이틀 날려 먹는 좋은 방법이 많을텐데.'라고 말하더군요. 그 생각만 하면 그의 스포츠맨쉽에 아직도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그리고 경기 종료 직전에 그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했고, 우리는 오줌을 지릴 뻔 했습니다. 엘리엇이 씩 웃더군요. '아이구, 아까 그냥 발라당 넘어질걸.'"

  결국, 오후 8시 1분에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아스날은 0.099의 평균 득점차로 우승한다. 해리 라이트가 회상했다. "비는 거의 그치고, 태양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었어. 하늘에는 노을이 환했는데, 상징적인 것만 같았어. 스카프와 리본 장식이 하늘을 수놓았어. 우리 대부분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어가 아스날 선수들을 덮쳤지. 내 친구는 경기장 밖까지 조 머서를 무등 태웠어. 지미 로지같은 선수들은 아예 경기장에서 나갈 수가 없었고 그냥 멀뚱히 서서 팬들하고 떠들었지. 환상적이었어." 돈 로퍼가 말했다. "제가 1989년 리버풀과 아스날 경기, 혹은 1993년의 스퍼즈와 아스날 경기의 재방송을 볼때마다, 우리의 업적도 저것만큼 극적이라는 생각을 져버릴 수가 없더군요. TV 중계가 없던 시절이라서 그래요. 아직도 그날 밤 일을 추억합니다. 그 결사대의 일원이었던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게 아스날에서 뛰었던 것이 어땠는지 묻는다면 그 한 경기로 답하겠습니다. 그리서포터들 앞에서 우승하는 것이 어떤지도요. 그저 놀라운 일이죠!"

  선수들과 팬들이 경기장을 돌며 축제를 벌였던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톰 휘태커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해, 전임자인 채프먼과 앨리슨을 따라가고 말았다. 아스날을 최고의 팀으로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 하이버리의 밤 같은 나날은 17년 동안 다시 오지 않았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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