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기업정체성

통찰력있는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밥 월의 <마음 깊이 아스날>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1969년 출판된 이제는 고인이 된 전 아스날 단장의 자서전이다. 클럽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필독서다. 30년대 채프먼이 팀을 이끌던 시절을 회상하고, 세계축구에서 아스날의 위상을 논하면서, 월은 대담하게도 하이버리를 재개발 가능성을 고려한다. 당시 천장이 없던 클락 엔드에 천장을 덮을 가능성과, 점차적으로 입석을 폐지해가면서 좌석제로 전환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월은 또한 부유한 팬들이 돈을 더 내고 더 좋은 시야와 높은 수준의 음식과 음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슈퍼 시즌 티켓'을 도입하여 '멋진 신세계'를 만들자고 한다. 한 마디로, 우량 고객 우대다.

  1930년대로 돌아가서, 아스날이 잉글랜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으로 발돋움하면서 부유한 팬들이 이미 '아스콧 클럽'을 이루고 있었다. 테드 드레이크가 회상했다. "어느날 하이버리에서 경기를 마쳤는데, 조지 앨리슨이 저를 따로 불러서 누군가 저와 한담 좀 나누고 싶다고 하더군요. 선수인 저는 늘 팬들하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번에는 어느 이상하게 보이는 남자를 소개받았어요. 말투부터 다르더군요, <지브스와 우스터>에서 나오는 남자들처럼요. 고급 넓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우뚝 솟은 모자에, 외알안경,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다녔어요. 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꽤 놀랐습니다. 그리고 다른 돈 많은 팬들과 달리 하대를 하지 않았어요. 15분 정도 대화를 했는데, 그 사람은 계속 샴페인을 마셨어요! '늙은이'와 '매우 멋지군'과 같은 말을 썼어요. 솔직히 맞출 수가 없었어요. 조지 앨리슨은 그가 그레빌 경이니 뭐니라고 했고, 아스날 아스콧 클럽의 회원이라고 했어요. 돈을 저금 더 내고 식사와 음료 대접을 받는 거래요. 멋지죠. 하지만 선수들은 그런 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30년대에 그런 기업적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일이 시작되긴 너무 이른 시절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스타디움 위에 돔을 만들자고 주장한 것이나, 경기장 뒷편에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조성하자고 한 데서 월의 식견을 확인할 수 있다. 보비 굴드가 회상했다. "밥 월하고 대화하면 즐거웠습니다. 멋진 사람이었고, 정말 선수들을 아꼈지요. 하이버리 개발에 대한 생각을 늘 열정적으로 토로하면서 카지노나 볼링장, 가게 같은 것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솔직히 그땐 뜬 그룸 잡는 소리처럼 들렸어요. H.G. 웰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것들이요. 모두 흥미롭지만, 이건 축구니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 것이라곤 전혀 생각치 못했습니다. 우량 고객 우대 정책 같은 것은, 우리 중 아무도 정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을 걸요. 이건 노동계급의 스포츠니까요. 밥 월이 지금 살아있지 않다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랬다면 손을 꽉 잡고 당신은 정말 시대를 앞선 사람이라고 말해줬을텐데. 그가 예측한 모든 일이 현실화가 되었어요. 밥 월이 40년 전 주장했던 것을 이제 다들 당연시하죠. 그러니까 밥, 만약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다면, 비웃어서 미안해요! 당신이 옳았어요."

  1988년 2월, 클럽은 마침내 클락 엔드 재개발을 선언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경기 프로그램에서, 클럽은 밝혔다. "우리의 계획은 매우 현대적인 스탠드를 새로 건설하는 것입니다. 최첨단 관리 위락 시설을 지닌 48개의 박스석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21세기를 향해가는 힘찬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클락엔드 단골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박스석을 설치한다는 것은 클락 엔드의 팬들도 천장이 생긴다는 것이니까요."

  당시 막 창간된 팬진인 <아스날 에코 에코>에서는 클럽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조명했다. 편집장 가이 하보드가 회상했다. "클럽이 클락 엔드에 대한 입장을 유리창만큼 명확히 하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팬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스탠드가 챙 없는 모자 같은 건지, 챙 있는 모자 같은 건지 물어보았습니다. 클락 엔드 관중들이 스탠드 전체를 덮는 천장을 원했지, 조금 덮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니거든요. 우량 고객 우대 정책이 클럽에게 중요한 수익이 될 것이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문제는 남쪽 스탠드가 적합해 보인 적은 없었어요. 당시 클럽은 우왕좌왕 흐릿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클락 엔드를 빌라 파크의 위튼 레인 엔드처럼 만드는데 무슨 허가 같은게 안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기서 기회를 놓친 거에요."

  축구 전문 컨설턴드인 알렉스 핀은 더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했고, 클럽이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아스날에게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경기장 남쪽 스탠드에 개인 박스를 만들거나, 개인 좌석을 만들고, 스탠드를 2층 구조로 만드는 거에요. 다른 클럽들이 그 당시 이렇게 한 곳도 있어서, 아스날 이사진이 이걸 생각해볼 여지가 없던 것도 아니거든요. 물론 그들은 중요한 수익원이 될 것이라 믿고 개인 박스석을 만들었지요. 잘했습니다만 조금만 더 생각을 했으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지요. 스탠드를 2층 구조로 만들었으면 박스까지 합쳐서 5천 석의 추가 좌석이 생길 것이고, 사실 추가비용은 거의 안 들었을 겁니다. 여기에 대해 더 말해보자면, 그 좌석으로 얻는 추가 수익이 있었다면 지난 16년간 아스날이 지금 처해있는 경제적 상황보다 훨씬 편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즉 지금 경기장을 만들려고 지금 같은 무리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단 말입니다. 미국식 표현 중에 '종과 호루라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원래 사치스러운 부속물을 말하는 것이죠. 아스날은 새 경기장을 결국은 지어야 했겠지만, '스타드 드 프랑스' 같이 최첨단 경기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파르크 데 프랭스' 같은 효율적인 경기장을 지을 수도 있었겠지요. 만약 아스날이 클락 엔드에 오천석을 추가로 만들었었더라면, 새 경기장은 천문학적 돈을 들인 '종과 호루라기'가 없어도 됐을 수 있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새 경기장을 짓는데 든 비용은 이사진이 뭐라 하든간에 지난 2년 간 벵거의 이적시장 행보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물론 소 잃은 다음에 외양간 고치는 거야 쉽지만, 아스톤 빌라도 좌석 확장할 혜안이 있었는데, 아스날은 무얼 한 겁니까? 제 소견은 클락 엔드 재개발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컸습니다."

  아스날 팬 짐 놀스에게는 클락 엔드 재개발은 아스날의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었다. "공식 개장식이 또렷히 기억나는데, 1989년 초 스퍼즈 전 시작 직전에 했으니까. 조지 그레이엄과 테리 베타블스가 테이프커팅을 했거든. 그리고 스탠드를 덮어둔 시트지가 떨어지면서 그 유명한 시계가 모습을 드러냈지. 경기는, <빅 매치>에서 라이브로 중계했는데, ITV 쪽에서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제때 방영해야겠다고 해서 한 시간 미루어졌어. 축구가 TV에 지배당할 수 있다는 조짐이었지. 하이버리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확했고. 화가 났던 건 클락 엔드 재개발 계획을 처음으로 알게 된 이유 때문이었어. 미러 지에서 기사로 처음 냈거든. 클럽이 서포터들에게 알리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 거 아냐. 뭔 일이 일어나는지 제일 늦게 아는게 팬이더라구. '민권 박탈'이라는 말이 딱이겠구만. 우리 모두 클럽이 추가 수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했어, 하지만 우리에게 알리지 않으니 문제인거야."

  <마음 깊이 아스날>에서 밥 월은 가장 큰 문제를 다루었다. "그라운드 주변의 빽빽히 찬 주택가 때문에…스탠드를 개발할 유일한 방법은 위로 짓는 것 뿐이다. 이것이 꽤 큰 문제다." 더 높이 쌓아 올릴 수는 없었고, 결국 이것이 하이버리의 종말을 맞게 한 셈이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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