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70년대-부활

1970년, 아스날이 마지막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린지 어연 17년이 되었다. 프랭크 맥린톡이 말했다. "경기에 뛰면 30년대와 40년대 사람들이 모두 경기장에 와 있습니다. 알잖아요, 머서 가족, 드레이크 가족, 콤프튼 가족까지. 모두 아스날의 전설들이죠. 정말 비교됩니다. 그들은 우승을 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죠. 그리고 세상에, 정말 부담스럽잖아요. 경기장 온군데 30년대 사진이 걸려있어서,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지요.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내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지만, 돈 하위는 늘 우리가 그들의 발자취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하고 같은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요."

  1969-70 시즌 3월, 아스날은 무관행진의 끝을 낼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팀이 페어스 컵(UEFA컵의 전신) 4강에 오른 것이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끝없이 확장하는 챔피언스리그 때문에 힘을 잃은 대회가 아니었다. 4강에 오른 팀은 아스날, 인터 밀란, 안더레흐트, 그리고 모두의 우승후보 아약스였다. 존 새멀스가 말했다. "그 남은 네 팀중 가장 피하고 싶은 팀은 단연 아약스였지. 젊은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고 있었고, 네덜란드가 당시에 무척 강했거든. 존 래드포드는 사실 아약스랑 만나고 싶어하긴 했어. 아내 엥겔이 네덜란드 사람이었거든. 그저 역병처럼 피하고 싶은 존재였지. 그런데 결과는? 아약스랑 붙게되었지. 한 술 더 떠서, 1차전을 홈에서 치르게 되었어, 이것도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불가피하게 아스날 대 아약스 대결의 가장 큰 화제는 크루이프였다. 조지 암스트롱이 회상했다. "아름다울 정도로 균형잡힌 선수였습니다. 선수들은 그가 유럽의 떠오르는 별이고 경기를 지배하는 마법사라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 수비는 신속히 대처해야 했습니다. 아약스는 뤼트 크롤, 피트 케이저, 게리 뮈렌 등의 선수가 있어서 무척 위협적으로 보였습니다.
깊이 내려 수비하고, 역습으로 치고 올라오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하이버리에서의 그날 밤, 그들은 너무 물러서 있었고, 우리의 축구는 환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찰리 조지가 주인공 자리를 훔쳤다. 종종 아웃사이드로 감아차는 그의 패스와 첫번째 골로 이어진 낮게 깔린 슈팅은 크루이프 본인에게서 존경이 가득 찬 발언을 이끌어냈다. "조지는 디 스테파뇨 만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새멀스와 그레이엄이 한 골씩을 추가하여 아스날이 3-0으로 승리하였다. 2차전에서 아약스가 1-0으로 신승했다. 이로써 포병대는 20년만에 처음으로 결승전에 올라섰다.

 
4강에서 인테르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 벨기에 팀 안더레흐트가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스날 선수들이 공을 잡을때마다 야유하고 고함을 치는 적대적인 벨기에 관중들 앞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스타 얀 뮐더가 포병대를 말 그대로 박살냈다. 조지 암스트롱이 말했다. "그가 완전히 새로운 축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선수에게 너무 많은 공간을 준다면 박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기는 레이 케네디의 늦은 헤딩 추격골로 3-1로 끝났다. <데일리 미러>의 말을 빌면 그 골이 2차전의 '한 가닥 희망'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실현되었다.

  1주일 후, 57,000명의 관중들이 하이버리에 군집했다. 아스날 팬인 피터 스위프트가 말했다. "내 생각에 그 날이 하이버리 사상 최고의 밤이었을 거야. 관중들은 지난 몇 년과는 다르게 모두 흥분해있었어. 노스 뱅크가 들썩거렸지. 경기 내내 클락 엔드와 노스 뱅크 모두에서 '아스날, 아스날' 함성을 질렀어. 1987년 스퍼즈 전때와 똑같지, 그때도 선수와 팀이 다같이 뭉쳤거든. 한 세대에 한 번 정도만 일어날 수 있을거야, 게임이 시작하면 그 압도적인 힘을 느낄 수 있지. 그날 밤이 바로 그 순간이었어.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것 같지. 그날 밤, 날것의 느낌은 아스날 선수들과 많은 관중들이 몇 년 동안 우승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겠지?"

  단순히 팬들이 장및빛 관점으로 경기를 보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프랭크 맥린톡이 말했다. "그날 밤 관중들은 12번째 전사였습니다. 그들의 바람이 공기를 타고 전해집니다. 이것이 선수들에게 전해져서 더욱 힘이 나지요. 기자회견에서 아스날의 모든 선수들이 안더레흐트가 홈팬들에서 받았던 것 같은 응원을 바랐습니다. 그게, 좀 거칠고 무섭게요. 진정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함성이었어요." 존 새멀스가 첨언했다. "하이버리 안에 있던 그 어떤 사람도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맥린톡이 1차전이 끝나고, 샤워를 마치고 나와 모두를 고무했다. "우승할 수 있다니까." 그리고 UEFA가 2차전 시작 불과 몇 시간 전에 원정골 승리제를 도입하였다. 아스날은 2-0으로 이기면 충분하였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경기 시작부터 25분 동안 안더레흐트가 몰아 붙였다. 얀 뮐더와 폴 반 힘스트가 앞으로 치고나왔다. 맥린톡이 회상했다. "뮐더는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잉글랜드에서 봤던 그 누구와도 다르죠. 쉬지 않고 그를 막아야 했고,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눈 깜빡일 새 수비를 벗겨내고 깊게 공을 주죠. 한 순간에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주거나, 환상적인 슈팅을 때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크루이프가 최고의 선수라고 하지만, 뮐더가 부상을 당하지 않아 일찍 커리어를 마치지 않았더라면, 그만큼 유명해졌을 것입니다." 아스날은 30분이 되서야 활력을 찾았다. 새멀스의 패스를 받아, 에디 켈리가 수비수를 벗겨내고, 안더레흐트 키퍼 장-마리 트라페니어스가 막을 수 없는 강한 슛을 때려넣었다. 맥린톡이 말했다. "이제 한 고개 넘었지만, 전반전이 끝나고 저는 선수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라고 했죠. 안더레흐트 선수들을 계속 쫓고 다니라고." 아스날 선수들이 후반전 시작에 맞춰 경기장으로 돌아오자, 주장 맥린톡은 그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 "나는 노스 뱅크로 달려가서, 이렇게 했지요. (인터뷰를 하던 맥린톡은 갑자기 의자에서 뛰어 일어나, 그의 꽉 쥔 두 주먹을 서로 부딛혔다. 마치 35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모두 함성을 질러요, 어서!' 이렇게 관중들에게 소리쳤습니다."

  피터 스위프트는 그날 맥린톡의 행동이 하이버리에서 역대 주장이 한 모든 행동 중 가장 중요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맥린톡의 제스쳐는 놀라왔지. 하프타임이 지나면 원래 김이 빠져서 원래대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잖아. 하지만 아스날은 정말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그리고 팀에게 집중하고 있으라고 외친거야. 바로 관중들의 소리가 전반전만큼 커졌지." 후반 17분, 조지 암스트롱의 크로스를 존 래드포드가 진흙탕에서 머리로 받아 넣음으로써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가 보답을 받았다. 2분 후, 존 새멀스가 3번째 골을 꽂아넣었다. "멋진 순간이었어, 생각이 휭 하고 날아가버렸다니까." 새멀스가 말했다. 아스날은 이제 트로피를 향해 한 걸음 앞두고 있었다.

  맥린톡이 말했다. "마지막 순간은 중국식 물고문 같았어요. 수비진에서 해야할 일이 무척 많았죠. 반 힘스트와 뮐더를 막기 위해서는 뒤통수에도 눈이 있어야 했어요. 끝나기 직전에 뮐더가 하프 발리 슛을 찼는데 골포스트를 때렸어요. 다행히 빗겨나갔지만 여전히 위기였습니다. 만약 집어넣었다면, 합산 점수가 4-4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추가시간 4분이 끝나자 마침내 심판이 종료 휘슬을 불었다. 아스날이 1950년대 이래 처음으로 트로피를 들게 되었다. 장관이었다. 피터 스위프트가 회상했다. "노스 뱅크 앞쪽에 있었는데, 휘슬이 불자마자 본능적으로 경기장으로 튀어갔지. 난 밥 윌슨에게 달려들었어. 나보고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우승 퍼레이드를 해야겠다고 하더군. 환상적인 밤이었어. 이후에 팬들이 아베넬 가에 모여서 아스날 선수들 이름으로 노래를 불렀지. 마침내 선수들이 입장하고, 영웅 대접을 받았어. 그날 밤 내내 난 스퍼즈 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지, 요 몇년동안 우리보고 2류라고 떵떵거렸거든. 아스날이 돌아온 거야!"

  밥 윌슨에게 그날 밤의 추억은 언제나 생생할 것이다. "휘슬이 부는 순간 진이 쫙 빠졌어요. 그간 팬들과 선수들 사이의 응어리는 순식간에 날아갔습니다. 나이 많은 관중들은 30년대와 40년대의 위대한 팀을 본 사람들인데, 마침내 잠을 자고 있던 거인이 깨어난 것이죠. 모든 관중들이 휘슬이 우릴는 순간 담을 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경찰은 굳이 제지를 하지 않고 눈감아 주었습니다. 꼭 퍼레이드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2위에는 질렸습니다. 이제 마침내 정말 타이틀을 따낸 것이잖아요. 골키퍼로서 경기장 양쪽 골대에서 모두 즐거웠습니다. 양쪽 골대에서 45분씩 보내는 동안, 두 쪽 스탠드에서 똑같이 응원을 해주었으니까요. 자신감은 골키퍼에게 중요한 것이기에 전 반드시 해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스날 선수들의 안도감을 느꼈고, 그들의 주장에 대해 매우 기뻐하였다. 존 새멀스가 말했다. "하이버리는 특별한 곳이야, 서포터들 앞에서 트로피를 따낸다는 것은 환상적인 일이지. 다 떠나서, 프랭크 때문에 너무 기뻤어, 여러차례 좌절했었잖아. 정말 강인한 주장이었어. 1차전이 끝나고 그가 한 연설을 무시해서는 안 돼. 그는 정말 모든 주장의 귀감이야." 그렇다면 맥린톡은 승리 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제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죠. 저와 제 동료들 모두. 이제 조 머서 같은 사람들을 똑똑히 쳐다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마침내 아스날이 다시 깨어났다고 느꼈습니다. 족쇄에서 해방되었다구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진취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제 아스날에게 위대한 시대가 온다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침내 증명되었다. 잉글랜드가 1970년 월드컵을 대비하는 사이, 하이버리에서 마침내 긍정적인 약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두 "이제 리그를 따러 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970-71 시즌은 아스날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인상 깊은 나날이 되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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