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40년대-내 축구는 어디 있지?

나긴 대립의 시기를 지나 1946-47 시즌, 마침내 돌아온 아스날 선수들은 충격을 받았다. 전시 경기에서 척추에 부상을 입고, 선수 경력 자체가 위기에 처해있던 테드 드레이크가 회상했다. "1946년 8월부터 다시 리그가 시작할 것이라는 편지를 받았지. 그러나 동시에 구단이 1939년에 주던 일주일의 8 파운드 주급이 아닌, 일주일에 7 파운드만 지급한다는 통보도 받았어. 일단 세상이 평화로워졌다는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일주일에 7 파운드라니? 아니, 이건 말도 안되잖아!" 아스날 선수들이 그런 변변찮은 급료를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미국의 야구 영웅 베이브 루스는 그들을 '멍청한 놈들'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제 다시 새 시즌이 시작하니, 미국 야구 선수의 급료를 50% 올려야 한다고 앞장선 인물이니. 조지 메일이 그에 대해 설명했다.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미국은 우리만큼 물질적인 피해를 심하게 입지 않았으니까 그랬겠지요. 우리 대부분에게는, 축구를 한다는 것이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찍 하이버리로 돌아올수록 좋은 일이죠."

  군인이 되어 오랫동안 올 수 없었던 아스날 팬들에게 1부 리그 하이버리에서 축구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스탠 촐리가 말했다. "저와 제 친구 몇몇은 전쟁 동안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아스날 경기를 봤습니다. 휴가때마다 경기를 챙겨 봤죠. 끔찍했습니다, 그 소굴로 들어간다는 것이. 하지만 별 수 없지요. 최소한 아스날 소속으로 찬조 출연하던 스탠 매튜스를 보기 위해서라도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는 어떻게든 아스날 관중들을 끌어모아야 했을겁니다. 몇몇 사람들은 하이버리에 7년 동안이나 한 발자국 근처도 못 가봤답니다. 그때는, 요즘처럼 축구가 시작한다고 서서히 준비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히 신문에 몇 줄 나왔죠. 예를 들자면 '전체 리그 일정이 토요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오늘날에는 리그가 시작한다 하면 죽어라 떠들어대죠. 끝이 나지를 않아요. 어쨌거나, 그래도 당시에 술집에서는 축구 얘기를 했어요. 고된 날들이었습니다. 고기와 옷은 아직도 배급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제 형제 둘이 죽었고, 폭격에 많은 친구가 집을 일었어요.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아스날을 하이버리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한 줌의 희망이었죠."

  데이비드 베인스는 당시 하이버리 주민들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를 기억한다. "노스 뱅크 지붕이 무너져 내린 후 치우는 것을 도왔고, 전쟁 중에 한 방 맞은 클락 엔드쪽 작업도 도왔어. 하이버리에 다시 우리의 팀을 데려오는 일이야. 별로 생각할 것도 없었지." 논조가 극히 차분했던 이슬링턴 가제트 마저도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하며 잡아냈다. "몇주동안, 이런저런 일들은 더 이상 논의거리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경기를 치렀을떄하고는 다른 선수들이 포진한 아스날이 이제 집으로 돌아올 날이 멀지 않았다."

  8월 18일, 총잡이들은 새 시즌 개막전에서 울버햄튼을 맞아들인다. 하이버리에서 처음으로 데뷔하는 레지 루이스에게는,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조지 앨리슨이 내가 울브스 전에서 뛰게 된다고 넌지시 말을 했을때, 한 이틀밤은 못잔것 같아. 중요한 경기였지, 전시 경기는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잖아. 울브스 전 때문에, 우리는 계속 라커룸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정신도 없었지. 기합이 확 들어있었다고 할까. 조지가 나 보고 그만 좀 하라고, 그러다가는 게임도 시작하기 전에 기가 다 빠질 것이라고 했지. 우리는 경기장으로 달려나갔어, 아름다운 날이었지. 하이버리는 만원이었고. 정말 즐거웠고 나는 골까지 넣었거든. 그런데 우리 수비수들한테는 아름다운 날이 아니었어, 울브스가 우리를 6-1로 대파했으니."

  울브스 전 대패는, 아스날이 새 팀을 융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비록 이후에 몇 번 더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지만, 아스날의 전성시대는 끝난 것이다. 그래도 두 가지 요소가 아직 클럽을 잉글랜드 최고의 구단으로 남게 하였다. 첫번째, 메일과 바스틴이라는 30년대의 영웅들이 계속 뛰고 있다는 사실에 힘입어 아스날이라는 이름 자체가 건재했다. 두번째, 제대하여 즐거운 관중들이 매주 하이버리로 몰려들었다. 전쟁 전에 비하여 아스날의 평균 관중 수가 5,000여명이 늘었고, 40년대 대부분 하이버리의 관중 숫자는 보통 45,000명을 넘겼다. 철도 교통이 더욱 좋아져, 수도 밖에서도 축구 보러 오기가 쉬워졌다. 몇몇 아스날 역사 기록자들은 원정 팬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음 증언들에 따르면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선 데이비드 존스가 전후 하이버리 분위기에 말했다.

  "30년대에는, 아스날 팬들은 아스날은 물론 축구 전반에 따분해 했지요. 전쟁이 끝나자 변했습니다. 전쟁 전에는, 예를들어 그림즈비가 하이버리에 원정온다 하면 안 보고말지 하고 넘어갔을 사람들이, 이제는 그냥 가는 겁니다. 1940년대에는 돈을 장작으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도 그저 생계 유지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해야 했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딱히 팀 유니폼에 맞춰 입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애정이 없었다는 게 아니에요. 지금처럼 딱 짜여진 응원가는 없었도, 그때에도 응원은 있었고, 박수도 치고, 호루라기도 불었죠. 아마 변한것은 관중의 구성일 겁니다. 악센트가 변하고 있었습니다. 양복 마름질만 봐도 어느 계층인지 알 수 있었죠. 그리고 허트포드셔나 버킹험셔, 뭐 하여간 그런 부자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 옆에 서있곤 했어요. 런던의 다른 경기장에 비해, 하이버리에는 중산층 비율이 높았죠. 늘 그랬던 것처럼 노동 계급이 지배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원정 팬도 굉장히 늘었습니다. 당시에는 홈 원정 관중을 따로 구별하지 않아서, 빌라 팬들이 무수히 내려왔습니다. 붉은색과 파란색이 섞인 바지를 입고 있었죠. 포츠머스가 오면 정말 팬이 몰려왔습니다. 가끔은 냄새가 지독한 선원들까지요. 대부분은 매너를 잘 지켰습니다. 가끔, 원정 팬들이 하프 타임에 경기장 바깥을 쭉 돌아 반대쪽 골대로 이동을 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들을 격려하며 박수를 쳤구요. 싸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들 그저 다시 축구를 보게 된 것만 해도 반가웠거든요."

  데이비드 스펜서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마냥 즐거웠는데, 힐스보로 생각을 해보면 아찔한 일이었지. 런드리 엔드 쪽이 꽉 차서 팔을 허리에 꼭 붙이고 있어야 할 정도였어. 좀 똑똑하면, 경기장에 일찍 와서 철책 쪽에 바짝 붙어있기만 하면 됐지. 그렇게 하면, 아무도 밀 수 없거든. 가끔 리버풀이 하이버리에 오면, 리버풀 팬들이 그냥 앞으로 우리를 보내줘. 리버풀 것들끼리는 서로 문대는 것을 좋아하거든. 하이버리에서 아무도 안 죽었던 것은 생각해보면 기적이야. 정말 안전 시설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어. 아마 클럽이 어느정도 위기 의식을 가지고, 프로그램이나 가제트에 아이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적어놨기 때문이겠지. 지금 생각해봐, 경기장에 애를 데리고 오지 말라니!

  하지만 정말 위험했어. 책임감 없는 군중들이 떼로 몰려 있는 곳이잖아. 1940년대에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응원하고 소리 지르고, 게다가 자기들이 술집에서 대충 만든 노래를 부르는 일당들도 있었고. 요즘도 하이버리에 가고, 그 때에 비해서 경기장 전체적으로 군중들이 정형화 되어 있지. 그래도 경기 내내 시끄러운 것은 역시 40년대였어. 경기 내내 응원하고 소리지르고."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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