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이 친구들 만날때가 됐군"

"나는 그저 사우스햄튼에서 온 애송이었지. 세인츠에서 뛰면서 몇 골 넣긴 했지만, 그래도 봉급이 시원찮아 가스 기구 수리공으로 따로 일해야 했어. 그때, 아스날이 나랑 계약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은 거고, 순식간에 다른 세계 사람이 되고 말았지. 꿈 같은 일이야. 그 대리석 로비에 발을 디디니,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세상에, 내가 여기에 있다니.' 아직 팀 동료들을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하이버리에서의 첫 날을 회상하는 테드 드레이크의 말은, 많은 이들이 경기장에 처음 들어갔을때 느끼는 경외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록 채프먼이 몇 달 동안 주시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드레이크는 새 감독 조지 앨리슨의 첫 영입이었다. 그가 말했다. "부풀려서 말하는 게 전혀 아니야, 처음 하이버리에 온 그 순간부터 놀래 자빠지는 일들만 있었어. 내가 사우스햄튼에서 올라온 날, 그러니까 워털루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이미 차를 한 대 대령해 두었더라고. 그가 날 어찌어찌 알아봤는지 내게 말을 걸었어. '드레이크 씨 되시죠? 경기장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당시 축구팀이 선수들을 차까지 대동해서 모시지는 않는다고. 날 이렇게 띄어주니까,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였지. 기사가 하이버리 밖에서 멈춰섰고, 그러자 갑자기 직원이 차문을 열었어. '좋은 아침입니다, 드레이크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했다시피, 난 별로 유명하지도 않았는데, 축구 선수가 '드레이크'가 아니라 '드레이크 씨'라고 불리는 건 정말 드문 일이였지. 몇 분 지나니까 조지 앨리슨이 나타나서 말하더라고. '좋은 아침일세, 테드. 만나서 반갑구만.' 테드? 테드라니? 사우스햄튼의 내 옛 감독은 나를 이름으로 부르자니 차라리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을거야!

  그 때, 이스트 스탠드는 낡은 목조 건물이었거든. 당시에는 마블 홀이니 그런게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하이버리는 다른 유명 장소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는 놀라운 곳이었거든. 조지가 나를 데리고 처음으로 한 일이 나를 끌고 경기장 근처를 한 바퀴 쭉 돈 거야. 조지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특유의 뭉게는 발음으로 말했어. 구두는 완전 깔끔하게 광을 냈었고, 솔직히 말하면 은행원이 더 어울리겠더라. 하지만 그는 하이버리의 마법을 부릴 줄 알았지. 같이 선수 입장용 터널을 걸어나와 피치로 나왔어. 그 찬란한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어. 관중석은 저 먼 곳에 있었고, 새로 만든 웨스트 스탠드는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지. 스스로 생각을 해봤지, 대체 내가 과연 이 광경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그때 그가 내게 말하기를 5년 후에 새 이스트 스탠드가 만들어질 거라는거야, 난 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못했어. 한 치의 의심도 없었지. 조지가 잠시 나랑 말상대를 하다가, 그리고 그 특유의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빛으로 날 보더니, 이렇게 말했어. '좋아, 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

  테드 드레이크는 드레싱 룸으로 데려가졌고, '친구들'이 훈련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말 그대로 채프먼이 이끌던 때 그대로였다. 그리고 (후에 채프먼 시대의 종막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드레이크는 '완전 공짜 탑승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클럽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선수들의 가식 없는 친목이 있다고 증명했고, 굳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단체로 부둥켜안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사실 그런 껴안기는 30년대에는 안 하는 편이 좋다. 어려운 경제 상황도 분명히 영향을 끼쳤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우리 마음 속 깊이 단순히 아스날의 선발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히 축구 선수로 태어났고, 그리 자라왔기에, 축구를 못 한다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요. 다른 친구들도, 예를 들어 광부로 일했던 윌프 코핑 같은 경우는 노동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고 있었구요. 허버트 채프먼과 조지 앨리슨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질을 한 적은 없지만, 만약 1군 자리를 잃는다면 미래가 불확실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하면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할지 알고 있었고, 조지와 허버트는 우리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아스날 특유의 팀워크는 금새 발동했다. 드레이크가 회상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처음 만난 사람은 데이비드 잭과 잭 램버트였어. 조금 무서웠지. 따지고보면 난 그들을 대체하기 위해 영입된 거잖아. 데이비드 잭은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지. 예술가처럼 보이기도 했어. 스모킹 재킷을 입고 셰즈 롱그에 드러누워 있으면 잘 어울렸을텐데 말야. 헤어 스타일 때문에 완전 귀족처럼 보였지. 날 반겨주었지. 잭 램버트도 그랬고. 나를 보고 이런 농담도 했어. '자넨 아스날이 날 대체하기 위해 데려 온 겨우 다섯 번째 선수일 뿐이네.' 그리고 그 4번의 선수가 지나가는 동안 자리를 지켰다는 소리니, 그게 그의 실력을 충분히 증명하는 거겠지. 알렉스 제임스도 멋진 남자였어. 내 팔을 툭 치고, 그 특유의 지독한 사투리로 말했지. '이 남자를 사려고 8,000 파운드를 들였는데, 머리에 빗질도 제대로 못하는 친구구만.'

  결코 파장이 맞지 않았던 선수는 클리프 바스틴이었어. 아스날의 젊은 보물이었지만, 아스날이 날 계약할 때에는 완전 속이 뒤집힌 표정이었지. 그가 자서전을 써냈는데, 내가 A급 공격수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적어놓아서 나는 꽤 열불이 터졌지. 완전 무뚝뚝한 사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그가 청력 장애가 있었잖아. 어쩌면 그게 내가 그를 쌀쌀맞다고 생각한 까닭일지도 몰라. 하지만 경기 중에는, 그럭저럭 지냈지. 경기장에서 패스 하나 주고 받기 위해서 가장 친한 친구일 필요는 없잖아. 연봉 상한선이 있었기 때문에, 요즘 세상처럼 누가 더 돈을 많이 받느니 하고 잡음 낼 필요가 없었어.

  팀이 그리 강했던 건 당연했어. 사우스햄튼의 형편없는 시설보다 훨씬 좋았지. 클락 엔드 뒷쪽에는 머리로만 공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코트가 만들어져 있었어, 당시에는 없던 거야. 그곳에서 퍼스트 터치를 많이 늘렸지. 게다가 당시로서는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던 체육관이 있었고, 다리 근육을 단련할수 있는 신축성있는 튜브도 있었지. 우리 선수들 모두가 훈련이 잘 되어있었어. 조지 앨리슨은 축구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선수들이 잘 알았어. 알렉스 제임스가 앞에서 전술을 설명하게 냅두었거든. 그것도 놀랍도록 단순했지. 알렉스가 중원에서 공을 재빨리 클리프 바스틴이나 조 흄에게 주면, 그러면 그들이 나나 잭 램버트에게 재빨리 공을 보내는 거야.

  그 어떤 팀도 여기에 맞설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그럴 만한 선수가 없었 거든. 간결하고 간단하지. 아스날이 '지겨운 아스날'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다른 팀들이 우리를 따라하다가 결국 공만 뻥뻥 차대는 하품 나오는 축구로 바꾸고 말아서 그래. 우리가 하는 것을 흉내낼 수는 없지, 우리 선수들이 훨씬 실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분명 간단하기에, 나, 잭 크레이스턴, 코핑 같은 신참들이 쉽게 적응했던거야."

  30년대 많은 원정팀 감독들이 포병대를 비난했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에버튼은 하이버리에 올 때마다 고생이었죠. 딕시 딘은 결코 우리를 상대로 득점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 감독은 우리가 지루하고 선수들은 파괴적인 축구를 한다고 툴툴거렸습니다. 그냥 질투에요." 테드 드레이크가 덧붙였다. "하루는 그림스비를 홈에서 맞은 적이 있었어. 그네들 감독이 자신들이 경기 내내 70% 정도는 공을 점유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5-0으로 졌지. 완전 이성을 잃어갖지고 우리보고 전략이 답답하다느니 하면서 성을 냈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우리만한 공격수가 없었다는 거지. 허비 로버츠가 후방에서 공을 따내서 알렉스에게 보내면, 다시 그는 공격수에게 공을 줄 뿐이야. 어느 신문 기자 하나가 계산을 해 보았더니, 우리가 우리 쪽 페널티 박스에서 공을 따내면 15초 안에 득점을 할 수 있다고 계산이 나오더라고. 그건 지루한게 아니야.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거지.

  허버트 채프먼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 '공격만 하고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전적으로 옳은 거야. 어떤 클럽에서는 멋만 내잖아. 그러나 하이버리의 아스날 팬들은 훨씬 솔직했지. 결과를 원한 거잖아. 선수들은 관중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돈을 받는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동시에 이기라고 고용된 것도 맞거든. 30년대에는 스타일과 트로피 따내는 것 사이에서 좀 타협을 봤어야 했어. 아스날 팬들도 이해해 주었고. 우리가 성공적이었던 건 그래서였지."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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