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태동기-침입자들

리 노리스 경 없이 하이버리 경기장은 그 자리에 결코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아스날은 오늘날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럽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포병대(Gunners)의 팬이 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빚을 지는 것과 같은 일이지만, 그는 사실 초기 잉글랜드 프로 축구에서 가장 논란을 빚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사망한지 어연 7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의 행적은 논쟁거리이다. 그의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치고 엔터키를 누르면 제법 쓸만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 20개의 (아스날을 집시나 '울위치의 불법침입자들'로 비유하는) 토튼햄 핫스퍼즈 관련 사이트가 그들이 아스날을 싫어하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그를 꼽는다. 심지어 어떤 네티즌은 스퍼즈의 팬들이 세븐 시스터즈 로드 반대편의 라이벌 팀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전적으로 노리스의 책임이라고 한다.

  더 이상한 것은, 16세기에 동명의 외교관이 있었는데, 그도 상류계층의 사기꾼이었다. 헨리 8세를 직접 알현할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후에 왕의 어린 왕비인 앤 불린을 유혹했다는 죄로 처형당했다. 성적인 매력이 넘쳐 바람둥이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촌수가 상당히 먼) 후손도 악독한 인물로 유명했다는 것이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결국 두 사람 다 이카루스같이 파멸한다. 너무 높이 날아 오른 죄였다.

  두번째 헨리 노리스 경은 울위치 아스날을 1910년에 사들여서 중세의 영지처럼 다스렸다. 이사들과 회장들이 순전히 지역사회에서 행세하기 위해 이사진 자리를 차지하던 시대를 노리스가 깨버렸다. 그는 여러 '의문이 남는' 분식 회계를 구사했고 깡패들을 동원하기도 하여 축구계에서 적을 쌓아갔다. 축구계의 첫번째 '짜르'는 거의 신화속 존재였다.

  1865, 풀햄 출신의 헨리 경은(아니면 간단하게 헨리 할아버지, 1910년에는 작위가 없었다.)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쌓은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그의 회사 앨런&노리스(Allen & Norris)는 반쯤 시골이었던 풀햄을 현대 도시를 탈바꿈시킨 주역이었다. 집을 짓고, 보수하고 파는 와중에 건축과 은행업쪽에 방대한 인맥을 쌓고 그들의 호감을 얻었다. 이것이 후일, 특히 새 구장을 지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떼로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대인 능력은 따라올 자가 없었다. <후즈 후> 1910년 판을 보면 그는 와인 동호회, 다이닝 클럽, 빈티지 자동차 전시회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주니어 칼튼 클럽의 회원이자 풀햄의 시장이고, 지역 보수당의 선도자이자 열렬한 프리메이슨인 그의 이름은 런던 시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신을 경배하는 토리 당원으로서 지역 사회에 박애 정신을 널리 떨치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믿기도 했다. 수년동안 그는 배터시(Battersea) 제의실과 지역 고아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정계의 적들은 그가 사회적 위치를 순전히 캔터베리의 주교들과 친해지기 위해 쓰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노리스는 늘 억측이라며 반박했지만, 1913년 캔터베리의 주교는 그를 위해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물론 호의에 보답하는 것은 집단을 결속시킨다.

  사진과 기록에 따르면 노리스는 마치 아내를 잔혹하게 죽인 크리픈 박사처럼 섬짓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였다고 한다. 6 피트가 족히 넘는 키에 고집스레 파이프를 물고 있는 사진을 보면, 그는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경쟁자들을 왜소하게 보이게 하였다. 바짝 깃이 선 흰 셔츠와 중산모자, 트렌치 코트를 입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경쟁자들을 코안경으로 음험하게 노려보았다. 안경의 렌즈는 도수가 높아 그의 눈매는 완전히 굴절되어있었다. 이사진 모임에서 특히 위력이 있었다. 아무나 살짝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이사진을 눈에 띌 정도로 불편하게 만들수 있었다. 어딘가 살짝 런던 사투리가 섞인 상류층 사람같은 그의 억양은 그가 태어난 노동자 계급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작은 공립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그는 "학교는 내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다."라며 겨우 14살의 나이에, 변호사의 제자로 들어가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일년 후, 그는 치열한 건축계에 매력을 느끼고 회사를 떠난다. 그는 다소 다혈질이었고, 권위적인 인간과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다. 노리스는 언제나 서둘렀고, 늘 자신의 주도로 일을 처리하고 싶어했다. 그의 고민 중 하나는 늘 잉글랜드 북부가 축구계를 지배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런던 팀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노리스는 상대를 구슬리는데 있어 천재적인 사람이었고 순수한 열정과 신념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 성공한 부동산 중개업자였던 그는 언제 사람을 구슬려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건물 거래에까지 사업을 확장하자, 그의 기술도 더욱 널리 퍼졌다. 런던의 난지대 윔블던에(님비 현상이 심하기로 유명했다.) 건물을 세워야 할때가 있었는데 그는 근방에 살던 친구들을 구슬려 눈 깜짝할 새 대형 주거지역을 지었다. 건물 거래 분야의 경쟁자 중 하나가 노리스가 회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암거래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자 노리스는 그의 변호사들을 떼로 동원한다고 협박해서 고소를 취하시켰다. 울위치 아스날에 발을 담그기도 전에 노리스는 온갖 암수에 능했던 셈이다. 축구의 세계 이외에 어느 곳에서 악의 제왕이 이만큼 더 잘 어울리겠는가?

  지난 세기 초입쯤 헨리 노리스는 이미 풀햄의 단장이었고, 마침 스포츠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시키고 싶어했다. 그는 축구 클럽을 하나 사고 싶어했고, 잉글랜드 남부의 잘 나가는 팀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첼시, 스퍼즈, 레이튼 오리엔트, 그리고 울위치 아스날. 앞의 세 구단은 당시 재정적으로 깨나 안정적인 편이었다. 반대로 울위치의 팀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1부 리그의 팀이었는데도 홈 구장 메이너 그라운드(Manor Ground)의 관중은 평균 만명정도였고 이는 첼시나 스퍼즈에 비해 반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숫자였다. 웃기는 사건이 따라다니는 팀이기도 했다. 울위치 아스날은 1905년 FA컵 준결승전에서 쉐필드 유나이티드에게 1-3으로 패했다. 이 경는 참 우습게도 언덕같이 가운데가 불뚝 솟아있는 경기장에서 펼쳐져서 골키퍼들은 서로 쳐다볼수도 없었고, 부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독재자들이 그렇듯이, 노리스는 상황이 바닥일 때 권력을 잡았다. 울위치 아스날의 실은 그의 득이였고, 20세기 독재자 같은 방식으로 팀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고 그의 신념을 막는 모든 것을 부셔버렸다.

  이사진은 풀햄을 남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믿을 수 없는 승격을 시킨 그의 권모술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겨우 4년만에 이루어진 이 승격은 타 구단 이사진의 의심을 샀다. 그들은 헨리 노리스가 상당량의 검은 돈을 거낸 것 아니냐고 비난했지만 결국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노리스는 부정의 흔적을 지우는데 있어서도 따라올 자가 없었던 셈이다. 그는 울위치 아스날의 대주주가 되자마자 런던 최대의 클럽을 만들기 위해 풀햄과의 합병을 추진했다. 축구 협회에서 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지해서 겨우 막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풀햄의 단장이자 아스날 회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통해 그때는 아직 독과점 방지 위원회가 없었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다.

  두 클럽을 합치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그는 만신창이가 된 울위치 아스날을 쇄신할 계획을 세웠다. 1912년 정기적으로 물이 차는 메이너 그라운드에서 일련의 재해가  벌어지자, 그는 연고를 옮기기로 결심하다. 스퍼즈를 아스날이 3-1로 이긴 경기는 <스포츠맨>에서 '머드 축제'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지역 신문 기사에서 그라운드를 묘사한 부분이 있었다. "…완벽한 수렁이어서, 터치 라인을 따라 수영장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날씨는 지독하여, 어떤 관중들은 푼돈밖에 안되는 입장료를 내기를 거부하고 수도관에 올라가서 경기를 관전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돈을 내고 젖지는 않은 셈이다. 신문에서는 경기장 안의 팬들과 밖의 팬들끼리 난투극을 벌일뻔 했다고 적어두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상대팀 캐러밴이 교통 체증과 낮은 접근성으로 경기장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적은 자주 있었다. 그런 사태들이 노리스의 화를 돋구었고, 그는 놀림당하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클럽은 1913년 1부 리그 역사상 최악의 기록으로 강등당한다. 38경기 3승 12무 23패. 노리스에게 남은 선택권은 하나뿐이었다.

  1913년 초, <켄티쉬 인디펜던트> 독자들은 헤드라인을 읽자마자 꿀먹은 벙어리가 되버렸다. 아스날, 런던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 결정. 공식 석상에서 노리스는 오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이전하는 장점을 말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아스날은 핀스버리, 해크니, 이슬링턴, 그리고 홀본의 수많은 거주자들을 끌어모을수 있게 된 것이다. 교회 쪽의 인맥을 통해 그는 하이버리에 있는 세인트 존스 신학 대학에 6 에이커 정도의 땅을 얻어냈다.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 지하철을 타면 겨우 10분인 곳에 짓는 구장이니 더 좋은 장소가 있을리가 있나? 노리스는 온갖 권력과 정치적 기술을 동원해서 그의 앞을 가로막는 규제와, 지역 단체와, 님비 현상까지 모조리 쓸어버린다.

  그는 울위치의 열혈 팬들의 발악은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노리스는 울위치라는 지역의 단점만 언급했을 뿐이다. 울위치의 관중수는 충분하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노리스가 더러운 속임수를 쓴다고 확신했다. 강등당하던 그 해, 그가 일부로 구장 이동에 관한 뉴스를 흘리고 팀에 투자를 적게 해서 고의적으로 관중수를 줄인 후, 구장 이동의 변명거리를 늘렸다는 소리다. 지역 신문에서 그를 클럽의 영혼을 팔아넘긴 비정한 자본가라고 하는 투고가 쏟아졌다. <켄티쉬 가제트>에 보낸 폴 도날드선 씨의 투고는 오늘날 AFC 윔블던 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것이다. "노리스 씨는 우리 지역 클럽을 보전하는 것보다 경제적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당신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축구 클럽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는 안된다. 울위치 아스날은 울위치 근방에 있어야 한다. 노리스씨는 리버풀이나 맨체스터를 이사 가는 것도 지지하는가? 그런 사람은 축구계에 있어서는 안된다."

  <켄티쉬 인디펜던트>에 투고된 월터 베일리씨의 편지는 더 날카롭다. "팀 운영이 어느정도 원활하게 될만큼의 지지는 충분히 있었다…현재 세계 대부분의 클럽이 그정도 서포터면 충분할 것이다. 울위치는 완전히 무시당한 셈이다…토튼햄이나 첼시가 가지고 있는 만큼 관중수를 채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예정 대로 런던 반대편으로 이전한다면 클럽을 만드는데 공헌한 자들이자 동시에 도덕적으로 타고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들이 클럽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내 말이 틀린가?"

  지역 언론은 만평을 실었는데, 그 중 울위치 가제트에 실린 하나는 노리스가 켄트의 유일한 자식을 납치해간다고 주장했다. 노리스는 반론을 하며 사태에 불을 지피는데, 그는 켄트가 아니라 울위치는 어쨌거나 런던의 일부일 뿐이고 클럽이 이제 런던에서 호강을 누려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일설로는 그가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고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밀어붙였다. 울위치 사람들이 반박이 얼마나 거셌는지는 모르겠지만, 북런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옆집 골리기(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H 범스-이건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구-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통치의 종말-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노스뱅크여 안녕-옆집 골리기(2)-개불알?-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 특급-심장 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옆집 골리기(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옆집 골리기(4)-고백:변호사, 암표 장수, 관리인, 수위-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재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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