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태동기-첫번째 경기

스터 포스와의 경기는 1913년 9월 6일 오후 2시 30분 시작했다. 울위치에서 온 침입자들이 마침내 런던에서 첫 경기를 가진다는 소식에 20,000여의 관중이 몰려왔다. 경기 전날, 이슬링턴 가제트에 지역 주민 한 분이 인터뷰를 했다. "제 친구들 대부분은 토튼햄이 경기하는 것 밖에 본 적이 없습니다.[각주:1] 울위치에서 이사 온 친구들이 얼마나 멋진 경기를 펼쳐줄지 정말 기대됩니다." 지역 언론의 기자들이 이후 몇 주 동안 쓴 기사들을 보면 구장 건립 초기의 관중들은 대개 흥분한 지역 주민이나 울위치에서 온 열성팬들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경기장에 걸어 왔지만, 레스터 포스 전 프로그램에서 언급했다시피 하이버리의 '접근성'은 드레이튼 파크, 길레스피 로드, 핀스버리 파크 역을 통해 쉽게 찾아올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열차를 운영하는 회사들은 이로 인해 열차 수요가 늘어날 것을 계산하여 수십대를 추가 운행했다.

  거의 재앙에 가까운 하루였다. A.G. 커니는 일꾼중 하나가 출구를 열어놓는 바람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돈도 안내고 몰려들어올뻔 했다고 한다. "시꺼멓게 몰린 사람들이 아베넬 가쪽 문 앞에서 몇 겹으로 줄을 서 있었습니다…그 사람들이 막 들어 오지 않은 것은 그 시절의 스포츠맨십 같은 거였죠." 건축과정에서 힘쓴 댓가로 데이비드 예이츠 씨도 개막전의 무료 티켓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증언만이 그날 상황을 알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그날 오후, 하이버리는 마치 우주의 중심 같았어. 모두 경기장으로 향하는 것 같았어. 대부분 걸어왔고, 자전거 탄 사람도 종종 보였지. 그러니까 반대 운동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축구장이 집 앞에 열려 있으면 기쁘기도 한거야. 오픈탑 버스[각주:2]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날도 화창하고 좋아서, 내가 아까 말했듯이 대부분 걸어왔어. 광고가 잘 된 셈이지. 이스트 엔드, 첼시, 뭐 하여간 런던의 온군데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새 팀을 보러 온거지. 그런데 레스터 팬은 없었던거 같아. 당시에는 장거리 여행이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때 입장료가 6펜스짜리 동전 하나였어. 좌석에 앉고 싶으면 조금 더 냈어야 했지. 이스트 스탠드에는 천장이 있었어. 이스트 스탠드 위쪽에는 방수천을 설치해가지고 어느정도 비를 피할수 있었지. 하지만 다른 쪽에는 아무것도 없었지. 관중석 공사가 다 끝난 것이 아니라서 그냥 나무 판자를 바닥에 깔고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어. 막 여기저기서 기대에 부푼 것 같아 보였어. 완전 새 팀 아니야, 원래 새로운 것을 지켜보는 것은 즐겁잖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또 모르는 사람들하고도 섞일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울위치에서 먼길 온 사람들이 많더만. 점점 그쪽에서 관중은 줄었던 것 같긴 해. 뭐 다같이 구호라든지, 노래를 부르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스카프 같은 것도 없었지. 그냥 모두 딱 제자리에 우두커니 있었어. 그래도 아스날이 골을 넣으면 박수를 치고 고함을 지르고 했었지. 그때 사람들은 감정을 잘 안드러내요, 그러니까 누가 골을 넣었다고 모자를 던지고 좋아하면 옆자리 앉은 사람이 '여보게, 조용히 좀 하게!' 이런 식인거지. 요즘은 안 그러잖아.

  스탠드에서 참 많이 마셔댔어.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검사를 안해서 맥주나 독한 술을 들여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 누가 한 병 들여오면 이곳저곳 돌아가면서 마셨어, 그렇게 다들 친해지는거야. 우리 아버지는 나중에 종종 경기장에 오셨는데, 술은 겨울에 추울 때 몸을 덥혀주기 때문에 약도 된다고 하셨지. 전반전이 끝나면, 잡상인들이 땅콩이랑 군밤을 팔았어. 과자따위는 있지도 않은 시절이야. 아, 그러고보니 그 첫경기에서 놀랐던게 그때까지도 구단 이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거야. 아스날을 반대한다며 현수막을 걸어놓았더라고. 동네 아저씨 몇몇이 쯧쯧 혀를 찼었어. 아스날이 2-1로 이겼었던것 같아, 조지 자비가 하이버리 첫 골을 넣었었고. 그 경기가 역사적인 경기라는 점을 빼면, 김빠지는 경기였어."

  데이비드 예이츠가 옳았다. 다음은 <아슬레틱 뉴스>의 다음날 월요일 경기 분석란에 실린 내용이다. "가슴 깊이 울위치 아스날의 추억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 이 승리로는 만족하기 힘들 것이다. 울위치 아스날의 승리보다 레스터의 파상 공세가 훨씬 인상 깊었다. 경험 있는 공격수가 없는 상황에서 아스날은 뉴캐슬 유나이트드에서 수비진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조지 자비를 위로 끌어올렸다…후반전에 그는 예기치 못한 부상을 당해 몇 주 동안 경기장에서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그에 앞서 자비는 침착한 헤딩으
로 공을 굴절시켜 레스터 골대의 브렙너(Brebner) 골키퍼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곧 데바인(Devine)이 브렙너 옆으로 살짝 공을 흘려넣어 아스날의 쇄기골을 박았다. 아스날이 계속 승리를 이어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 절대로 기분 좋은 첫 걸음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고, 하이버리의 애송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했다.

  경기장 시설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조지 자비가 경기장에서 쓰러진 이후 아스날의 코치였던 조지 하디는 자비를 숙소까지 데려와 치료하기 위해 '루이스의 우유가게'라는 곳에서 우유 수레를 빌려올 수 밖에 없었다. 데일리 가제트에 온 투고를 보면 '마실 것이 하나도 없는 경기장'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상황은 점차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경기장에는 매점이 없다는 불평보다 훨씬 큰 문제가 있었다. 이슬링턴 구청의 세무 조사회가 경기장에 무지막지한 임대료를 매겨버린 것이다. 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토튼햄이 화이트 하트 레인 내는 돈의 두 배, 그리고 첼시가 스탬포드 때문에 내는 돈의 세 배에 가깝다고 추산하고 있다. 아스날은 경기장 휘슬이 울리는 순간 엄청난 경제적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길레스피 로드쪽 입구 통해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공짜로 경기를 관전했다는 투고가 지역 신문사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쪽 문은 일꾼들이 자재를 들여오는 곳이라 아직 열어두었던 것이다.

  노리스는 구단이 이런 사태에 적극 대응할 것이며, 공식 프로그램을 통해 '미완성된 구장의 몇몇 불편함'을 참아주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경기 당일 혼잡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사과 편지를 써 보냈다. 그러나 2부 리그 팀 아스날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했다. 1915년 4월, 아직도 팀은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안보였고, 환상적인 구장 입지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선수를 데려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퍼시 샌즈와 작 러더포드는 열혈 팬들 사이에서만 유명했지 나라 전체에서 알아주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지역 신문에 실어 놓은 이사진의 광고도 비참하게 짝이 없었다. '경기장 입장을 보장하는 시즌 티켓을 21 실링에 구입 하는 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담당자 이름은 조지 모렐(George Morrell)입니다. 그의 주소는 해링게이(Harringay), 펨버튼 로드(Pemberton Road) 32번지입니다. 그가 티켓을 팔 것 입니다. 그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그 조지 모렐이라는 인물은 1910년 당시 어린 찰리 부찬에게 요즘 물가로 겨우 55펜스 하는 열차 값을 대주기를 거절하면서 팀에서 떠나보낸 구두쇠였다. 나중에 클럽이 찰리 부찬을 다시 사왔는데, 그때는 그 기찻값의 5000배를 더 주어야 했다. 경영 담당자의 주소를 신문에 게제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노리스가 시즌 티켓 판매를 담당할 전임 담당자를 고용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팀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재정 상황은 점점 절망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노리스와 아스날은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옆집 골리기(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H 범스-이건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구-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통치의 종말-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노스뱅크여 안녕-옆집 골리기(2)-개불알?-컬트 히어로:앤더스림파-환상 특급-심장 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옆집 골리기(3)-이상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옆집 골리기(4)-고백:변호사, 암표 장수, 관리인, 수위-타이틀 냄새가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재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삶의 비극. [본문으로]
  2. 2층이 개방되어 있는 형태의 버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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