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80년대-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

1982년 노동절, 아스날은 하이버리에서 웨스트 햄을 맞았다. 악명 높은 웨스트햄의 광팬들이었던 인터시티 팜(ICF)은 몇 년째 노스 뱅크로 무단침입해 들어왔고, 경기 내내 그곳을 점령하기 위해 애를 썼다. 포병대와 웨스트 햄의 저번 경기 직전에는, ICF가 작정하고 면도날로 속을 채운 감자를 몰래 들여와 대량학살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루머가 퍼져나간 속도로 파악해볼때, 인터넷과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도 경기장 폭력은 훨씬 조직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적은 수의 34,000 관중들이 아수라장을 피해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경기 시작 수 시간 전, 노스 뱅크 단골들은 작전을 짰다. 사이먼 딜라이니가 말했다. "제정신이 박혀있는 아스날 팬들은 경기 중에 어디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지. 몇 년 동안, ICF는 노스 뱅크를 구석 쪽에서, 특히 길레스피 가 입구 쪽에서 들어왔어. 그놈들이 종종 양동작전을 펼치기도 했지. 영화 <줄루>에서 보고 배웠나봐. 어디서 배웠든간에 잘 먹히기는 했지. 이번에는 깃발도 들고오고 다 들고 와서 무슨 군대 행군처럼 하고 온다는 소문을 다들 들었어. 한심하지. 다 큰 남자들이 경기 중에 어디 서있을지 바짝 긴장해있는 모습이라는 게. 하지만 더 이상 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싸워야 했지. 우리는 저항하기로 했고, 평소에는 문제를 피해서 피해다니던 사람들까지 다 하겠다고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문제가 시작되는 근처에 아이들하고 같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 사람들 근처에서 시작되면 부끄러운 일이잖아. 웨스트 햄 전 시작 직전까지 계속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자기 아이를 위험하게 하는 아빠가 무슨 아빠냐?' 그러다가 든 생각이 왜 축구를 보면서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고 무서워하고 그래야 하냔 말이지. ICF 멍청이들 때문에 왜 즐거운 날을 망쳐야 하는가 싶더라구. 그래서 딱 한 번만, 그래 딱 한 번만 불에 불로 맞서기로 한거야. 싸우기로, 그래서 그들 방식대로 그들을 끝장내자고."

  오후 2시 25분, 데이비드 제라드가 아베넬 가 쪽 입구에서 노스 뱅크로 들어왔다. "바로 ICF 무리들이 노스 뱅크 위쪽으로 몰려들어 가지고 사람들 사이로 밀고 들어올 준비로 하였어. 엠블렘을 보라와 파랑으로 그려넣은 커다란 현수막까지 펼쳐놓았지. 영역표시 좀 크게 하는 거지. 입구에 500명 정도 있는걸 봤는데, 질레스피 가 쪽 입구에도 그 정도 있다는 거야. 아스날 팬들은 계단 오르다 말고 그저 지켜보았지. 갑자기 '유나이티드!' 함성이 울리더니, 그 친구들이 뛰어내려올 준비를 하더라. 옆머리를 빡빡 민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런던의 자존심 웨스트 햄'이라 써져있는 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놈들이 계단을 내려오자 곧 아스날 팬들에게 둘러쌓였어. 폴 웰러[각주:1]처럼 생긴 남자가 떡 나오더니 '이번에는 안 당한다, 동런던 떨거지들아'라고 소리를 왁 질렀어. 그리고 그 사람하고 그 사람 친구들하고 같이 웨스트 햄 팬들을 덮쳤지. 사실 노스 뱅크 전역에서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었어. 웨스트 햄 팬들은 내려오는 시간이라도 확실히 맞춰놨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큰 작전이었으니까.

  노스 뱅크에서는 웨스트 햄 팬들이 다들 조금조금씩 무리지어 아스날 팬들에게 둘러쌓여 있었어. 평소라면 결코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을 아스날 팬들이 싸우고 있었지. 내가 노스 뱅크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마치 영화에서 볼 법만 같은 일도 일어나드만. 홀로 떨어진 대머리 아스날 팬이 있었는데, 귀 뚫고 보석 박은 딱 봐도 웨스트햄 팬인 사람이랑 마주친거야. '너 우리 웨스트 햄 팬이지?' 그 남자가 물어봤어. '아니, 아스날이걸랑.' 설렁설렁 답변이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아스날 팬이 그놈 거시기를 걷어 차버렸지. 웨스트 햄 팬은 포대자루처럼 쓰러졌고, 아스날 팬은 그 광경을 보고 도리어 자기가 어안이 벙벙해졌나봐. 경찰들은 손을 쓸 수가 없었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을 하려고 노스 뱅크에서 '뭔 일이에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라고 물어보는데 물론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지. 비밀 결투라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노스 뱅크 입구에서는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중앙과 좌우측에는 패싸움이 벌어졌아. 콜린 필포트가 회상했다. "그날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구석에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헤이젤에서 볼만한 광경이었지요. 수백명의 사람들이 스탠드를 뛰어다니며 비명을 꽥 지르고. 제 아들 리암이 '아빠, 축구장에서 왜 저러는 거에요?'라고 물어보더군요.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경기가 시작하면 조용해지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정반대로 흘렀지만요."

  2시 55분, 노스 뱅크 중심에서 연막탄이 터져 5분 동안 연기가 스탠드를 삼켰다. 그 후 몇 주 동안, 타블로이드에서는 웨스트 햄 팬들의 잘못이라 잘못 보도했다. 사실 아스날 팬들이 터트린 것이었다. 사이몬 딜라이니가 덧붙였다. "누가 연막탄을 터트렸는지는 모르겠다만, 웨스트 햄 팬들에게 노스 뱅크는 아스날 팬들의 것이라고 보여주려는 것이었어. 격렬한 싸움이었고 몇몇은 피치까지 내려가 연기를 피했지만, 대부분은 스탠드에 남아 계속 싸웠지. 연기 사이로 실루엣만 보였어. 한참을 더 싸우다가, 경기가 세 시 좀 넘어 시작했지. 노스 뱅크의 전환점이었어. ICF가 다시는 침입하지는 않았거든. 최소한 대규모 침범은 없었지. 몇 놈이 들어와서 행패부리는 거야 늘 있는 일이니까. 얼마후, 클럽이 펜스를 설치해서 대규모 유입과 난동을 아예 차단해버렸지.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냥 우리 시대의 끝이기도 해. 우리 할 일을 했고, 우리 스스로를 감시하는 거지. 하지만 그날 일어난 다른 사건들은 너무 끔찍했어."

  경기가 끝나고, 아스날 팬 한 명이 아스날 역에서 칼에 찔려 죽은채로 발견되었다. 타블로이드지에서는 이야기를 부풀려, 시체에 '축하한다, 우리가 바로 ICF다.'라는 카드가 남겨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이어진 조사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었다. 그날 하이버리에서 경기장 폭력이 한 단계 더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콜린 필포트가 회상했다. "그날 하이버리에서 경기 중계는 없었는데, 만약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뻔한 사건을 생중계로 보여주었겠지요. 아이랑 같이 보고 있다면 경기장에 이제 가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지 않겠어요? 리암을 한 2년 정도 경기장에 데려가지 않았고, 조지 그레이엄이 아스날 감독이 되기 전까지 노스 뱅크에는 아예 발을 끊었어요. 너무 위험하잖아요. 축구장이 다시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사이먼 딜라이니와 그의 친구들도 한동안 경기장 가는 것을 관두었다. "역겨웠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어. 우리 권리를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람이 하나 죽었잖아. 그렇게 되고 보니까 손 들고 일이 너무 심해졌다고 인정해야겠더라구. 딱 웨스트햄 경기부터, 노스 뱅크가 스스로를 정화한 셈이었지. 축구가 너무 배타적이 되어서, 그 어떤 가식도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어. 진짜 어른이 될 시간이 찾아온 거야."

   하이버리에서 스탠드 충돌의 역사는 길지만, 이 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이버리에서 훌리거니즘의 댓가를 치른 날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날은 노스 뱅크의 몰락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잼(The Jam) 등의 밴드를 이끈 70, 80년대 영국의 록스타.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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