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딱 봐도, 1989년 4월 15일 토요일은 조지 그레이엄 시대의 하이버리 경기의 전형이었다. 리그 후반부에 박차를 가한 포병대는 뉴캐슬의 견고한 수비벽을 뚫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강등권에서 헤매고 있을 정도로 부진하고 있던 뉴캐슬은, 전 아스날 선수였던 케니 샌섬이 후반전에 포스트를 맞추며 깜짝 선취골을 넣을 뻔 했다. 하이버리의 끔찍한 잔디 상태가 문제였는데, 페리 그르부스는 '진흙탕'이라고 지칭하였다.

  폴 데이비스가 회상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젊은 팀이었고, 3월 쯤에는 많은 선수들이 진이 다 빠졌습니다. 자기 경기장 때문에 다리힘이 풀리는 건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요. 상대편 선수가 12명인 것만 같다니까요. 요즘은 피치가 완전 금잔디 같다만 그때는 모래하고 진흙이 널려있었어요. 끔찍했습니다. 일을 너무 힘들게 했고, 밀월이나 루턴 같이 비기는 것이 목표인 팀들은 경기장 바닥 때문에 우리가 흐름을 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해 결국 타이틀을 따내기는 했지만, 하이버리에서보다는 원정에서 더 잘했습니다. 경기장 상태가 그런 행보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그 해 홈에서 제일 잘 한 경기는 5-0으로 승리한 놀위치 전이었습니다. 정말 더운 날이어서 경기장이 말라있었습니다."

  그 뉴캐슬 전에서 브라이언 마우드가 늦은 결승골을 집어넣었다. 안도감이 뚜렷히 보였다. 특히 포병대가 그날 FA컵 4강전, 힐스보로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를 상대하고 있는 리버풀과의 승점 차를 좁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우드는 그날 오후의 일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경기가 막 시작했을 때 전 기분이 좋았습니다. 잔부상 몇 번 겪고 나서 마침내 다시 뛰게 되는 것이니까요. 관중들도 농담을 하더군요. 저는 존 루키치를 상대로 공을 차는 마스코트와 함께 있었고, 차는 족족 골대 안에 꽂히더군요. 관중들이 소리를 질렀어요. '마스코트가 마우드보다 낫다'라며 노래를 불렀어요. 관중들이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고 노래를 불렀어요. 제게는 '마우드, 마우드, 트위스트 좀 춰봐.'였는데요, 이때 엉덩이 안 흔들면 야유 먹어요. 달리 방편이 없었어요. 그날 제 골은 화룡점정이었고 관중들은 모두 미쳤죠. 우승할만한 팀은 비길 경기도 억지로 1-0으로 이기게 해야하잖아요. 그런데 경기 끝나기 몇 분 전부터 관중들이 경기에 집중을 안 하대요. 이상한 소음이 나고,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아스날 팬 프랭크 선더스가 회상했다. "핸드폰이 있던 시절은 아니어서 라디오를 귀에 딱 붙이지 않는 이상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되는 셈이었어요. 하지만 분명히, 몇몇 친구들이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고, 힐스보로에서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자가 몇몇 팬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끔찍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우리들 대부분은 눈 한 번 끔쩍 안 했습니다. 80년대에서는 흔한 일이라서요. 그런데 브라이언 마우드가 골을 넣고 나서, 무언가 정말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몇몇이 죽었다는 거에요. 그 다음부터 관중들은 축 가라앉았습니다. 경기 끝나고 늘 하던대로 맥주 마시러 가는데, 하이버리 반 술집의 문을 쓱 열고 들어가니, 참혹하대요. 스스로 생각했지요. 젠장, 사람들이 맥주도 안 마시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겠구나."

  브라이언 마우드가 뉴캐슬 전 직후에 대해 말했다. "라커룸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터널에서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웠어요. 조지 그레이엄이 경기에 대해 평가를했고, 늘 그랬듯이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라커룸을 뜨고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알 수 있었어요. 사태를 객관적으로 봐야한다는 것은 좀 삼가야 할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에 공헌한 아스날의 멤버 중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어떻게 느꼈는지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어요. 이렇게 말해야겠네요. 그냥 너무 슬펐고, 축구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다른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러나 기자들이 '더 이상 리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썼음에도 축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주일 수는 없겠죠. 그분들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안다만, 프로로서 우리도 해야할 일이 있는 걸요. 타이틀을 따내고 싶었으니까요.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를 보기 위해 돈을 내는 팬들에게 빚진 거니까요. 하지만 힐스보로 이후, 축구의 핵심적인 무언가가 변해야된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뉴캐슬 전을 본 아스날 팬들은 이미 지난 불편한 일들을 회상해야만 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1930년대의 매주마다 있던 장내 충돌과, 경기장이 꽉 차면 피치 근처까지 사람들이 나오던 것을 회상했다. 그 근래에도 끔찍하게 흐를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1981년 웨스트햄전과 그 전해 노스 뱅크에서의 충돌, 그리고 리틀우즈 컵 4강, 50,000명이 관람한 웨스트햄 전처럼. 헤드라인에 오르지 못한 사건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서포터들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스티브 애쉬포드 씨가 회상했다. "1973년 FA컵 첼시전이 있었어요. 60,000명이 보러 왔어요. 경기장에 들어가려고 길가에까지 줄을 섰습니다. 노스 뱅크에서는 다들 쫙 달라붙었지요. 경기 내내 팔을 들 수가 없었고, 서로 몸이 너무 쫙 달라붙어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코트가 벗겨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을 들 수 없었기 때문에 옷을 다시 찾아올 수는 없었어요. 첼시전에서, 저는 사람들하고 부딛혔고 신발이 벗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에 믿기나요? 하지만 다시 가져올 방도는 없어서 집까지 맨발로 가야했습니다."

  앤디 니콜스는 1970년대 말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컵 경기에 대해 말했다. "관중들은 노스 뱅크에 몰려있었어. 따뜻한 4월의 밤이었는데,  찌는 듯이 덥고 위험할 정도로 달라붙어있었지. 몇몇은 대놓고 짜증을 내더라. 피치로 뛰어내려가서 사람들 사이에서 나가보려고 했지. 아 그날 아스날이 계속 공격을 해서 노스 뱅크 쪽으로 공을 안 몰고 오길 정말 잘했어. 안 그러면 폭동 일어났을 거야. 몇몇은 그냥 대놓고 '깔려 죽겠다!'라고 소리를 지르더만. 꽥꽥 소리를 지르는데 모두 그냥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겼지. 물론 다들 축구가 안전하다는데 한치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에 그랫던거야.

  힐스보로 참사 때, 모두들 하이버리의 보호 철망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입석이라는 것이 정말 위험한 것이 되었으니. 그런데 가장 소름끼치는게 뭔지 알아? 하이버리에는 보호 철망이 있지도 않았어. 그냥 있는 줄 알았던 거지."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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