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90년대-초전박살

1996년 9월 정기 주주총회, 아스날 보드진은 아르센 벵거를 새 감독으로 임명한 것을 감추려 했으나 어이없게 들통나고 말았다. 요한 크루이프, 보비 롭슨,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선호햇던 프랭크 클락이 온다는 루머가 있었다. 하지만 몇몇 음모론자들은 당시 1996년 9월까지 일본 클럽 그람푸스 에이트와 계약되어있던 아르센 벵거가 이미 일 년 전에 베르캄프와 플랫이 올 때 손을 썼고, 브루스 리오치는 사실상 감독대행일 뿐이란 것이다. 이 추측은 결국 증며되지 못했지만, 1996-97 시즌 초는 혼란스러운 때였다. 첫 홈 경기를 웨스트 햄과 치렀는데, 새로 온 선수라고는 리즈에서 이적료 없이 방출당한 존 루키치 뿐이었다. 리오치의 사임 이후, 스튜어트 휴스턴과 팻 라이스가 대행을 맡는 등 혼란스러운 공백이 길어졌다.

  스티브 모로우가 회상했다. "그해 초, 첼시하고 홈에서 3-3으로 비긴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나 있을 법한 경기지요. 2-0으로 지다가 이안 라이트가 선취골을 넣고, 결국은 역전하여 놀랍게도 정말 이길 뻔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데니스 와이즈가 뛰어 올라 동점골을 박아넣었죠. 경기장 관중들은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미 끝난 일인걸요. 선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프로라면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 당시 토니 아담스가 알콜중독을 인정했고, 팬들은 벵거가 정말 올까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진에서 그가 새 감독이라는 것을 인정했고, 일본에서 남은 계약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바로 올 수는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랑 비디오로 대화했습니다. 이상한 세월이었어요."

  팬들은 이 이방인이 누군지 궁금해했다. 이사진이 9월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후, 타블로이드에서는 '아르센 뭐시기?' 같은 기사를 쏟아냈고, 벵거는 아스날 팬들은 쉐필드 웬즈데이와의 저녁 홈 경기에서 하이버리의 대형 전광판에서 아스날 팬들에게 처음으로 인사했다.

  아스날 서포터인 케브 블레이크가 회상했다. "이상한 밤이었어. 입구의 문이 고장나서 경기는 늦게 시작했고, 9시까지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거야. 경기장 밖에서 줄을 서있는데, 다들 '아르센 벵거란 놈이 대체 누구야?'라고 말하더라구. 우리는 롭슨과 크루이프를 원했거든. 이름 들어본 사람 말야. 솔직히 나는 그때 포레스트에서 잘하고 있던 프랭크 클락이 왔으면 했지. 그레이엄 끝나고 한 바탕 난리가 일었으니까, 이제 다시 정통 잉글랜드 축구의 기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클락이 딱 알맞아 보였어. 이름도 못 들어본 프랑스 말라깽이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제는 안 그렇지만, 당시 사람들 중에 벵거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걸. 힘든 때였잖아. 5년 동안 타이틀도 없었고, 약정제 사건에다가, 저번 두 감독들은 어떻게 물러났으며. 구단 측에서 이제 한 번이라도 바로잡을 때가 된 것 같은데, 벵거가지고 그게 될 것 같지는 않았어.

  그래서 수요일 경기를 보러 갔고, 아르센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나더니 뭐라 떠들더라고. 음질이 조악해서 '오늘 밤 반드시 이깁시다.'라고 말하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뭐라 하는건지 모르겠더라고. 사람들이 <핑크 팬더>의 클로조 형사와 닮았다고 하던데, 솔직히 내 생각에는 <대부>의 말론 브랜도 목소리랑 비슷했어. 그 스피커의 울리는 소리 때문일 거야. 경기가 시작하고 아스날은 웬즈데이를 4-1로 대파했지. 이안 라이트가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아스날에서 150번째 골도 넣었어. 뭐 근데 거짓말 안 하고, 벵거가 아무 존재감도 없었다는게 그거보다 놀라웠지. 후반전에 아스날은 중원에 굳히기를 시작하려는 것처럼 보였어. 패트릭 비에이라가 레이 팔러와 교체되어 나왔지. 리암 브래디 이후에 그런 존재감은 처음이었어. 경기 결과에 만족한 후 경기장을 나오면서, 모든 일이 비에이라 같다면야, 벵거가 잘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비에이라가 그의 아스날 데뷔전을 회상했다. "관중들의 반응은 좋았어요. 그래도 여전히 '이 키 큰 놈은 대체 누구지?'라고 궁금해하는게 느껴지더군요. AC 밀란에서 실패했으니까, 할 일이 많았습니다. 전 데뷔전 때 그럭저럭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라이트가 해트트릭을 찍을 때 아스날의 열정을 직접 보게 되었구요."

 
새로 부임한 감독은 경기장 입구 계단에서 길을 막고, 사생활에 대한 무수한 추측을 물어보는 기자들 덕에 잉글랜드 언론이 무엇인지 경험했다. 그는 이제 11월 말 노스 런던 더비를 통해 잉글랜드 축구란 무엇인지 경험할 차례가 되었다. 스티브 모로우가 회상했다. "경기의 중요도 때문에, 사실상 벵거가 처음으로 주목받게된 경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토튼햄 전에서나 그렇듯이 그날 오후 하이버리 분위기는  환상적이었습니다. 클럽에 그가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죠. 조지 그레이엄 집권기하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안 라이트가 페널티 골로 선취골을 넣고 셔츠를 들어올리자 안에 '사랑해요'라고 써있는 글자가 써있었다. 그리고 앤디 신턴(Andy Sinton)이 동점골을 넣었다. 모로우가 해설했다. "화가 났어요. 토튼햄 선수 중 하나가 다쳐서 우리가 공을 밖으로 보내줬으니, 다시 공을 돌려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그냥 공격하더군요. 나중에 블랙번 전에서도 크리스 서튼이 공 안 주고 이런 짓을 했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타올랐어요. 조지 그레이엄이라면 귀 따가울 정도로 한소리 했겠지만, 벵거는 사람을 그렇게 다루지 않아요. 아르센 벵거는 굉장히 점잖게 말해요. 경기 전에도 이 경기의 열정에 대해 생각해보고, 스퍼즈의 위협에 잘 대처하라고만 하거든요. 매우 절제되어 있죠. 하프타임에 화가 났어요. 벵거는 몇 분 동안 선수들이 자신들의 경기를 반성할 수 있도록 침묵할 시간을 줘요. 사실 선수들도 그가 잘할 수 있을까 궁금해했는데, 경기가 끝나자 모두들 의문이 풀린 것 같아요."

  신튼의 동점골 이후, 아스날은 몰아붙였다. 모로우가 회상했다. "토니 아담스와 스티브 불드까지 전진하는 광경을 보게되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레이엄 때는 결코 그러지 못했을테니까요." 경기를 10분 남기고, 아담스는 루즈 볼을 하프 발리 슛으로 이안 워커가 지키는 스퍼즈의 골망으로 집어넣었다. 전 '구너' 편집장인 마이크 프랜시스가 회상했다. "제가 하이버리에서 본 것 중 가장 놀라운 순간이었어요. 모두 대체 아담스가 저기서 뭔 짓을 하고있는 건지 몰라 당황했어요. 우리가 이제 공격적인 팀이 되고 있다는 조짐이었지요. 시간이 지나갈 수록 아스날 팬들은 열광했어요.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모두들 이성을 잃었지요. 멋진 순간이었어요." 5분 후, 이안 라이트가 오른쪽 사이드에서 클라이브 윌슨을 제치고 데니스 베르캄프에게 공을 연결했다. 그러자 베르캄프는 그 공을 잡아서 골대 안으로 집어넣었다. 스티브 모로우가 설명했다. '데니스의 세레모니가 다 말해줍니다. 스퍼즈의 구단주인 앨런 슈거가 겨울 이적 시장 때 데니스에게 관심 없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가 여기서 환상적인 골을 넣고, 진흙탕 속에서 쭉 미끄러져 나가면서 빗방울을 얼굴로 튕겨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제 그는 모든 의문에 답한 셈이죠."

  경기장을 떠나는 아스날 팬들은 '우리는 개자식들을 3-1로 이겼다네'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점수는 상징적이었다. 폴 게스코인이 이끈 스퍼즈가 1991년 FA 컵에서 아스날을 꺾은 이후, 토튼햄 팬들은 하이버리에 올 때마다 '우리는 개자식들을 3-1로 이겼다네'라는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중앙선에서 나임(Nayim)이 공을 찼는데 말야'[각주:1]라는 노래도 자주 불렀다. 폴 데이비스가 회상했다. "90년대 중반에는, 스퍼즈가 아스날만큼 잘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경기는 더 재밌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6년 전 사건인데도, 결코 그 FA 경기를 잊지 않더군요. 그래서 1996년 말에 아스날이 스퍼즈를 이긴 것은 복수 같았어요. 그리고 아스날이 스퍼즈를 홈에서 상대할 때 전적이 압도적이 되었구요. 그리고 그 이후 스퍼즈는 우리를 한 번 밖에 꺾지 못했습니다."

  아스날이 보여준 멋진 스타일도 중요하다. 스티브 모로우가 회상했다. "전에는, 최소한 언론들의 눈에는 '지루한 아스날'이 '재밌는 스퍼즈'를 갈아버리고, 점수를 쥐어짜내는 것으로 비쳤거든요. 하지만 그때부터 아스날이 재미없다고는 할 수 없을 거에요. 스퍼즈에게는 안된 일이죠. 아스날은 런던 최고의 팀인데다가 축구까지 재밌죠. 그날 많은 일이 일어난 거에요."

  몰아치는 비를 피해 집으로 달려가면서, 케브 블레이크는 아드레날린이 솟는 것을 느꼈다. "전반전에 아스날 팬들이 '아르센 벵거의 부대와 같이 가자'라는 노래를 불렀어. 그날 북런던 더비가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야. 내 친구 아드리안은 내 옆에서 걷다 말했어. '케브, 벵거가 그럭저럭 괜찮을 수도 있겠어.' 뭐 그렇게 틀린 예측은 아니었지!"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나임은 93년까지 토튼햄의 선수였다. 이후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해 아스날과 컵 위너스 컵에서 맞붙었는데, 이 경기에서 그가 시먼의 키를 넘기는 45야드 로빙 슛을 성공시켰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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