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90년대-아름다운 날

축구 전문 기고가인 데이비드 위너는 내게 책을 쓰면서 잘못된 기억 신드롬에 빠지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많은 팬들이 그들 경기장의 역사를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걸리게 되는 함정이다. 자기 팀은 언제나 잘했고, 햇빛은 언제나 환히 비쳤으며, 늘 환호가 넘치는 아름다운 장소였다는 둥…. 그러나 아스날의 역사가 종종 흔들렸다 하더라도, 1998년 5월 3일 하이버리에 있던 모든 아스날 팬들은 그날 오후 만큼은 완벽한 날이었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당시 넉넉잡아도 58살은 되어야, 아스날이 자기 팬들 앞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다. 1953년 아스날이 번리를 잡고 1부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 아스날이 에버튼을 4-0으로 대파한 것은, 크리스토퍼 레의 의견에 따르면 "아름다운 날에, 아름다운 팀플레이의 힘으로, 아름다운 경기를 치렀고, 사람들은 아스날이 아름다운 팀이 되어가고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강등이 확정된 하워드 켄달의 에버튼을 이기면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왕좌에 오를 수 잇었다. 봄부터 아넬카와 프티가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며 아스날은 치고올라오기 시작했다. 마크 오베르마스의 한 골로 올드 트래포드에서 귀중한 승리를 챙기자(1990-91 시즌 타이틀을 차지했던 이후 처음이었다.) 마침내 맨유를 왕좌에서 내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엠마누엘 프티가 회상했다. "제가 팀에 들어와서 녹아드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 온 선수들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저와 패트릭, 마크 오베르마스가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하지만 3월 쯤 되니까 정말 호흡이 잘맞더라구요. 3월에 뉴캐슬을 상대로 멋지게 승리한 후 아스날 팬 몇 명이 제게 와서 '마누, 이제 하이버리에서 아름다운 축구를 볼 수 있어요. 전에는 결코 이런 말을 못했지만, 이제는 맨유 경기보다 재밌어요.' 팀동료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칭찬도 트로피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죠. 아까 말한 뉴캐슬 전에서 비에이라는 30야드 중거리를 꽂아넣었고, 아넬카는 두 골을 넣어썽요. 그때 쯤 든 생각인데, 이제 여기서 뭔가 특별한 것을 이룰 수 있겠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 윔블던 전에서는 5-0으로 이겼고, 전 여기서 데뷔골을 넣었어요. 팬들이 잘해줬습니다. 제게도 의미 깊었구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승에 가까워졌다는 것이죠. 토니 아담스의 눈을 보고 확신이 들었어요. 야망이 어려있더군요. 맨체스터의 도박사들이 맨유가 우승한다고 돈을 건 이후부터 계속 그런 눈빛이었어요. 아스날 선수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틀렸다고 입증하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반드시 우리가 타이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구요."

  이제 아스날이 우승할 확률이 높아졌음에도, 아스날 팬들을 그걸 당연히 여기지 못햇다. 조지 타이슨이 회상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라져 가는 부류의 팬이야. 60년대 아주 못할 때부터 경기장에 다녔으니까. 70년대와 80년대에 우승 못 할 때도 있었고. 종종 우승을 해도 '지루한' 이라는 꼬리표는 절대 안 떨어지거든. 1989년 안필드에서 우승할 때도, 아스날은 늘 어렵게 우승했어. 극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그리고 하이버리 밖에서 했지. 1971년 화이트 하트 레인, 1979년 웸블리. 아스날은 늘 힘들게 우승했어. 1997-98 시즌 우승할 때 경기장에 갔던 관중들은 사실 그런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이야. 늘 아스날은 어려운 길만 골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시즌 말에 너무 잘 나가서 믿기지가 않았어. 1988-89 시즌하고도 비슷한 구석이 있지. 그해 더비 전이 있었는데, 그날 이기면 사실상 우승을 확정 짓는 거였어. 그래서 경기장 밖에서 잡상인에게 89' 챔피언 아스날이라는 뱃지를 하나 사고 경기장에 들어왔지. 그런데 더비한테 지더라. 완전 심사가 뒤틀려가지고 우리 선수들을 욕했지. 1998년 에버튼 전? 그 전에 더비와의 홈경기가 있었어. 그냥 불쾌한 경기였어. 또 타이틀 날려먹을줄 알았지. 끔찍한 경기였지. 근데 갑자기 프티가 결승골을 집어넣었어. 내가 골 넣고 그렇게 좋아해본 적이 없었어. 시즌 말에 1-0으로 겨우 이기는 경기들이 몇 개 있었어. 그리고 일요일에 에버튼 경기가 있었지. 이제 남은 3경기에서 3점만 따내면 됐어. 남은 두 경기 장소인 안필드나 빌라 파크보다는 하이버리에서 하는 것이 더 좋았지."

  아스날에서 중요한 골을 몇 번 넣었던 크리스토퍼 레는 그날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드레싱 룸에서 아르센 벵거는 우리가 이제 위대한 업적을 이룰 것이며, 하이버리에서 우승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벵거는 늘 그랬듯이 침착해고, 나가서 긴장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경기를 하라고 했어요. 전 라커룸을 둘러보면서 다른 선수들은 무얼하고 있나 살펴보았죠. 잉글랜드 선수들은 벵거 덕에 선수 경력 5년은 더 늘어났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다시는 구경도 못해볼 줄만 알았던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토니 아담스는 아스날 정신이 밴 사람이었어요. 주먹을 꽉 쥐고, 우리를 독려했죠. '우리 안의 호랑이' 같다고 할까. 어느 면으로 보나 놀라운 사람이었어요. 패트릭과 마뉴는 둘이 딱 붙어서, 경기 나가기 전에 하이파이브를 하더군요. 오베르마스는 조용히 사색이 잠겨있었어요. 라커룸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레이 팔러는 이번에도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더군요. 그리고 팀에 우연히 들어오게된 어린 선수엿던 저는, 경기도 꽤 잘했고, 우승하게 되어 정말기뻤습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어요. 이제 경기장으로 나갈 때였습니다. 스터드를 하자 아드레날린이 치솟더군요. 손바닥 맞부딛히는 소리가 더 들렸습니다. '자, 나가보자.'라면서요. 모두 조마조마하면서 경기장으로 걸어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관중들이 환호했습니다. 하늘은 맑았습니다. 많은 팬들이 깃발을 흔들고 있었어요. 마치 축제 같았습니다. 이 관중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되겠더라구요."

  경기가 진행될수록, 아스날이 큰 경기라고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전반 10분, 레가 멋진 크로스를 올려 레이 팔러가 머리를 댔지만, 에버튼 키퍼 토마스 마이어가 옆으로 쳐냈다. 하지만 슬라벤 빌리치가 자살골을 넣고, 마크 오베르마스의 슈팅이 마이어의 가랑이로 들어가며 아스날은 전반전이 끝날 무렵 2-0으로 앞서있었다. 벵거는 침착했다. 레는 회상했다. "늘 그랬듯이, 하프 타임에 라커룸으로 들어가서 몇 분 동안 전반전 경기에 대해 점검했습니다. 벵거와 토니 아담스가 몇 가지를 지적했고, 후반전에도 비슷하게 경기를 치러야 한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2-0은 전반 끝나고 한 숨 돌릴 수 있는 괜찮은 점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틈은 없죠. 후반전은 놀라왔습니다. 사진처럼 기억나요. 마크 오베르마스가 쇄도하더니 미끄러지면서 세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이안 라이트가 교체로 들어오자 관중들은 열광했구요. 그리고 스티브 불드의 패스를 받아 토니 아담스가 골을 넣었습니다. 잉글랜드 선수 두 명이 대륙 축구스러운 골을 넣었어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습니다. 관중들은 점수가 4-0이 되자 '경기장에서 결코 안 나갈거다'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심판이 휘슬을 불자 다들 기뻐했습니다. 라이트는 거의 미쳤고, 아담스, 딕슨, 불드, 윈터번은 쉬지않고 낄낄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잉글랜드에서 첫 시즌을 잘 보낸 것을 기뻐했습니다. 토니가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햇빛이 트로피에 반사되고, 관중들은 우리에게 환호했습니다. 환상적인 경험이었어요."

  조지 타이슨이 아스날의 4번째 골과 경기 후반부를 회상했다. "이안 라이트가 교체로 나왔을 때, 이렇게 열광하는 하이버리 관중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다들 하이버리에서 아스날 선수로 그를 보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작별인사를 했다고 생각해. 그날 만약 누가 나한테 와서 토니 아담스가 스티브 불드의 패스를 하프발리로 때려넣어 아스날이 4-0 승리를 거두고 우승할 것이라고 했으면,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아담스가 박스로 쇄도할 때, 대부분 그냥 어이가 없어서 웃었지. 아 물론 한 건 할 타이밍이긴 하다만, 그래도 웃기잖아. 내 옆에 서있던 놈 하나는 아담스가 박스 안까지 들어가니까 나를 보고 "아니 씨발 아담스가 저기서 뭐 하는거야?"라대. 그리고, 어이구야. 내가 축구를 보면서 꿈꾸던 모든 것이 바로 그 골이었어. 아담스는 전형적인 조지 그레이엄 시절 잉글랜드 선수였잖아. 그 시절에 그렇게 앞에 나가있었다간 대가리에 총맞았을 걸? 나중에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는데, 마틴 타일러가 '상징적인 골입니다.'라더군. 벵거가 이끄는 우리 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아름다운 팀 말야. 아담스는 팔을 쭉 뻗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어.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목 뒤의 털이 쭈뼛 서곤 해. 거의 성스러운 순간이었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어. 고마워요 토니."

  패트릭 비에이라는 그 경기 직후가 그가 아스날에서 보낸 세월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피치를 돌아다니며 추억을 만들었어요. 라이트는 특히 좋아하더라구요. 경기장에서 'We Are the Champions'를 틀었고 관중들이 따라부르는데 고음 부분인 'We'하고 'Fighting'에서 안 올라가는 거에요. 라이트하고 리 딕슨이 그걸 듣고 웃더라구요. 클럽의 정신이었던 토니 아담스 덕에 특히 기뻤고, 저 자신에게도 만족했어요.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보는 순간은 언제나 제일 소중한 추억일겁니다."

  우승을 확정지은지 1주일 후, 아스날은 웸블리에서 FA컵마저 거머쥐고 더블을 확정지었다. 그 후 몇년 간, 하이버리에서는 더 멋진 경기들도 있었다만, 그래도 에버튼 전이 단연코 제일 중요한 경기였다. 팬들의 기대치도 경기를 치를 때마다 높아졌고, 티켓에 대한 수요도 그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팀이 성공할 수록 하이버리는 초라해졌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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