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2000년대-컬트 히어로: 레이 팔러

거의 1990년대 내내, 레이 팔러가 길가에서 얼쩡대는 것을 빼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보기 어려웠다. 그 또래의 아스날 유소년 선수들이 대개 그랬듯이 말이다. 1992년, 이슬링턴 가제트에서는 마크 플래츠, 닐 히니, 폴 딕코프와 팔러를 두고 '앞으로 아스날을 짊어질 미래의 스타'라고 이름붙였다. 딕코프는 하이버리를 떠난 후 좌절을 딛고, 오랫동안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지만, 플래츠와 히니는 축구계에서 잊혀진지 오래다. 조지 그레이엄 감독 시절 팔러는 기복이 심했고, 결국 그가 방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생겼다. 앤더스 림파가 회상했다. "레이가 재간 있는 선수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하이버리 주전이 될 만큼 꾸준하게 활약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웠어요. 한 경기에서는 되게 잘했다가, 다음 경기에서 바로 아무 것도 못하는 일이 많았어요. 게다가 토니 아담스의 술친구이기도 했죠. 그래서 정말 아스날에 이름을 남겨보려면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어야 했습니다."

  다만 팔러는 부적절한 이유로 신문에 이름을 남기고 있었다. 혼처치 피자 헛에서 토니 아담스와 그가 소화기를 뿌려대 식사를 망쳐놓았다. 그리고 보그노 레지스의 부틀린스[각주:1]에서 난투극을 벌여 얼굴에 몇바늘을 꿰메고 말았다. 브루스 리오치가 아스날 감독이 된 직후, 일명 '새우과자 게이트'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홍콩의 택시 기사 라이 팍 얀의 본네트에 새우과자 봉투를 집어던지자, 화가 난 택시 기사가 나무몽둥이를 들고 그를 쫓아다닌 사건이다. 그는 남성잡지 <로디드>가 선정한 플래티넘 수배전단의 고정출연자가 되었고, 이는 데니스 베르캄프의 수도사 같은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아스날 팬 폴 마일즈가 회상했다. "레이 팔러의 별명은 '롬포드 펠려'였는데 사실 놀리는 거였습니다. 그가 데뷔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우리 중원에서 가장 기술이 있는 선수였는데도, 힐리어나 옌센 같이 꾸준하기는 해도 화려하지는 못한 선수들에게 밀리곤 했죠. 팔러는 너무 몸이 얇았고, 열심히 뛰지도 않았어요. 지저분한 금발 곱슬 머리도 있었고, 원정팬들은 그가 공을 받을 때마다 휘파람을 불었죠. 처음에는 TV에 나와서도 맨날 '그게 그러니까'라든가 '아 진짜' 같은 표현을 말할 때마다 썼어요. 관중들은 이제 그가 패스도, 태클도, 슛도 못 하는 단계에 왔다고 생각했죠. 미드필더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잖아요. 관중들은 그가 실수를 할때마다 투덜거렸죠. 팔러는 운이 좋았어요. 돈 주고 샀으면 지금처럼 공간 낭비가 아니라 돈 낭비였을 거니까요! 벵거가 부임했을 때, 솔직히 다들 팔러가 몇 개월도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1996-97 시즌이 끝나고 팔러 스스로도 걱정이 막심했다. "팔릴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제 저는 나가고 폴 머슨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요. 그때 머슨이 미들스브로로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여태까지 제 기록을 차분히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제가 열심히 안 뛰었구나 싶었어요. 데니스 베르캄프나 패트릭 비에이라 같은 선수들에게 배워야 할 때였습니다. 제가 아스날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깨달았어요." 다음 시즌, 마일즈는 팔러의 경기력이 확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처음 몇 달 동안, 더 몸도 좋아보이고 열심히 뛰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옛날에는 제대로 한 적이 없는 태클도 하기 시작했어요. 아담스와 딕슨은 벵거 덕에 선수 생활이 5년은 늘어났다고 말했었는데, 팔러도 벵거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끝장났을 거에요. 골도 넣기 시작했죠. 팔러의 골을 모아둔 DVD를 보면, 영상이 짧긴 짧아도 그럭저럭 봐줄만 하죠! 제가 팔러를 특히 좋아했던 점이 뭐냐면, 그가 실력이 늘었어도 여전히 잉글랜드 선수라는 점이었어요. 마침 벵거가 기술이 더 뛰어난 대륙의 선수들을 사오겠다고 천명한 때였거든요. 사실 여전히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었죠. 팔러가 가진 것은 베르캄프의 레퍼토리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잖아요.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잉글랜드 선수들은 점점 사라져갔고, 팔러가 하이버리에서 잉글랜드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더군요. 관중들은 한동안 이에 난처해했지만, 세월이 지나갈 수록 그를 더 따듯하게 대해줬어요. 사실 우리는 팔러가 있어서 기뻣던 거에요."

  팔러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친절한 피치 위의 장난꾸러기였다. 크리스토퍼 레가 회상했다. "TV에서는 팔러가 좀 느리게 말하는데, 평소에는 말이 되게 빨라요. 우리에게 코크니 라이밍 슬랭[각주:2]를 가르쳐주었죠. 한 번은 경기가 끝나고 제가 '고기 한 그릇'[각주:3]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고, 다른 선수들은 어떤 놈을 '병과 잔'[각주:4]까지 발로 찼다고 말하니 팔러가 웃다 쓰러지더군요. 다 팔러의 영향이었어요. 한 번은 보안 경보가 울려서 우리가 라커룸에서 나가야 했어요. 아르센 벵거는 마침 화장실에 가있던 참이라, 돌아오고 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레이가 말했어요. '포옥탄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오.' 핑크 팬더의 클로조 형사를 흉내내면서요. 그러더니 스스로 막 웃더군요. 벵거를 클로조라고 부르는 선수들이 몇몇 있었거든요. 벵거는 팔러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죠. '레이몬드, 지금 나를 놀리는 거구만.' 레이는 이제 자지러지다가 쓰러지더군요."

  에두는 팔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친절하고 살갑게 대해줬습니다. 우리가 잉글랜드 축구에 잘 적응할 수 있더록 돌봐주었죠. 하지만 그가 가르쳐주는 영어는 결코 배워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욕을 퍼붓게 될지도 몰라요!" 에두는 맨체스터 유나티드의 회장이었던 마틴 에드워즈에게 '꺼져 이 추잡한 노친네야'라고 말한 것이 정말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팔러는 어빈 웰시의 소설인 <쓰레기>와 <접착제>에도 등장했다. 또한 글렌 호들의 신앙 치료사인 아일린 드루리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자, '뒷하고 옆에는 짧게 깎아주세요'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에두가 설명했다. "모든 팀에 장난꾸러기가 한 명은 있어야 하고, 레이의 유머감각은 팀의 사기를 정말 북돋았어요. 그렇다고 그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잊어서는 곤란하죠."

  다른 하이버리의 컬트 히어로처럼, 팔러가 팬들 모두에게 사랑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 부커가 그런 사람이었다. "싫어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제 아들이 늘 레이에게는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죠. 저와 제 아들 간의 경쟁이라고나 할가요. 하지만 팔러를 보고 있으면 마치 10년 전 아스날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요. 나아졌긴 했지만, 크로스는 여전히 못했고, 횡패스만 열심히 날랐죠. 선수들을 제칠 능력도 없었고, 공을 가지고 시간만 낭비했습니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아약스에서 있었더라면 결코 프로선수가 되지 못했을거에요. 게다가 득점력도 문제였어요. 특히 슈팅은 재앙에 가까웠거든요. 대체 뭘 하러 경기장에 나와있는지를 모르겠고, 피레스, 융베리, 레예스 같은 선수들하고 비교해봐요. 팔러보다 훨씬 기술이 낫잖아요. 게다가 관중들이 그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네요. 한 쪽으로는 사랑받아도, 다른 쪽으로는 싫어할 만한 선수였으니까요."

  2004년 5월, 팔러는 타블로이드 1면에 씁쓸하게 복귀하게 된다. 그의 전 부인 캐런이 고등법원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팔러는 위자료로 앞으로의 수익의 반을 그녀에게 지불해야했다. 팔러가 떠오르는 신성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자리를 위협받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는 미들스브로로 4백만 파운드에 이적했다. 폴 마일즈는 모든 정황이 그의 견해와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전부인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적했다는 추측도 있어요. 2004-05 시즌 미들스브로가 하이버리에 왔을 때, 우리는 기립박수를 보내줬습니다만 놀리기도 했죠. '마누라가 당신 여기있는 거 알아?'라고요. 우리 쪽을 바라보더니 애처러운 웃음을 짓더군요. 이제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옛날 축구처럼 서로 놀리는 관계는 남아있던 거에요. 선수들 대부분이 수도사 같은 삶을 사는 오늘날 축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죠. 레이는 그런 사라져가는 부류의 선수였어요."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영국의 부틀린스 사가 만든 휴양지. [본문으로]
  2. 런던 사투리의 일종. 대개 기존의 단어를 은어처럼 사용한다. [본문으로]
  3. 코크니 라이밍 슬랭으로 '발'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4. 코크니 라이밍 슬랭으로 엉덩이.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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