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위이 알렉"

약 찰리 부찬을 아스날의 첫번째 슈퍼 스타라고 한다면, 알렉스 제임스야말로 진정으로 하이버리의 첫번째 아이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선수 생활을 마감한지도 어연 7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아스날을 거쳐갔던 수많은 선수 중 가장 영향력 있었던 선수로 꼽힌다. 아스날 팬 조지 프레이가 회상했다. "그때는 사람들을 확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있었지. 영화를 보러 가면 그레타 가보나 채플린을 보러 가는 것이고, 발레를 보러간다면 루돌프 누레예프 때문인 것이고, 축구 경기장에 간다면 역시 알렉스 제임스 때문이었지. 아마 예술하는 사람들하고 비교된 축구 선수는 그가 처음일거야. 그만큼 영향력이 있었어." 1929년에 하이버리에 오기 전에도,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는 이미 스타플레이어였다. 1928년 스코틀랜드의 '웸블리의 마법사' 중 한명이었고, 1920년대 프레스턴의 승승장구를 이끌었다. 채프먼은 하이버리에 스타플레이어를 잔뜩 끌어모으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그를 남쪽으로 유혹했다.

  아스날 시절 그의 동료였던 테드 드레이크가 말했다. "그 시절 아스날을 돋보이게 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어. 그러니까 아스날을 수놓던 그 수많은 위대한 선수들 사이에서 말이야. 하지만 마법같은 드리블과, 영리한 몸동작을 보고 있으면, 문자 그대로 경기의 지배자였지. 내가 어떻게 그를 표현하겠어? 영국 역사 상 처음으로 나온 진정한 중원의 지휘자였지. 요즘은 아무대나 자주 쓰던 표현이긴 하다만, 알렉스는 말 그대로 경기를 지배할수 있었던 남자였거든." 조지 프레이가 덧붙였다. "나는 정말 알렉스 제임스를 환장하게 좋아했어. 사람들은 이안 라이트나 찰리 조지가 전설이라고 하지. 하지만 제임스가 뛰던 시절에는 아스날은 매번 우승을 하거나, 그 턱밑까지 왔어. 키가 땅딸막했고, 퉁퉁하고, 경기를 안 뛰면 담배를 한 대 피고, 또 맥주를 한 두 잔 하곤 했지. 경기장에 나오면 완전 의욕이 없어보였고, 소매는 축 쳐져 있었고, 포댓자루같은 바지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지. 완전 넝마장수 스텝토 같았지. 뭐 그냥 너저분했다고. 하지만 천재였어. 내가 본 선수 중 최고였지."

  알렉스 제임스는 그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조지 프레이가 묘사한 '그냥 너저분한' 그 남자는 사실 수제양복을 즐겨 입었고, 다른 선수들이 광을 낸 신발을 신을때 샌들을 신었다. 화려한 치장을 하고 다니는 그 남자는 변덕이 죽끓듯 했다. 채프먼은 다른 아스날 선수들과 달리 그에게만 훨씬 인내를 갖고 대했다. 알렉스 제임스가 막 포병대의 일원이 됐을 무렵, 체력 문제와 컨디션 문제로 시달리고 있었는데, 채프먼은 그에게 그냥 침대로 들어가서 푹 쉬라고 말했다. 며칠 후, 버밍엄과의 중요한 FA컵 경기 아침, 감독은 직접 제임스를 찾아와 지금 팀이 너를 필요로 하니 침대에 나와 하이버리로 오라고 했다.

  조지 메일이 회상했다. "때때로, 우리 선수들은 제임스의 특권을 보면서 화가 났어요. 알렉스는 스스럼없이 채프먼의 면전에서 상대 선수를 쫓아다니지 않겠다고 했어요. 제가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 구장 밖으로 쫓겨났겠죠. 채프먼이 그를 제어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참 한참 후의 일이였죠. 모든 선수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그 버밍엄과의 FA컵 경기 전에, 라커룸의 많은 선수들이 과연 알렉스가 하이버리에서 잘해낼 수 있을까 의심했어요. 사실 관중들도 그랬죠. 하지만 그 경기에서, 하이버리에서 과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하였습니다. 그는 버밍엄을 완전히 박살내버리고, 아스날은 그 해 사상 처음으로 컵을 거머쥐었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주요 대회를 우승한 거에요. 모두 알렉스 제임스 덕이죠."

  천부적인 축구 재능 뿐만이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의 삶도 그를 더욱 인기있게 만들어줬다. 그는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제임스는 다른 30년대 축구 선수들이 꿈도 꿀수 없었던 무리와 어울렸다. 셀프릿지 백화점의 '스포츠 모델'이라는 직업 덕에 윔블던 대회 우승자인 테니스 선수 수잔 랑글랑과 프레드 페리같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해주었다. 그는 대서양을 횡단한 비행사인 에이미 존슨과도 친한 친구였다. 제임스는 노동 계급의 구속에서 벗어난 첫번째 축구 선수였다. 그는 이러한 경력 덕에 런던의 수많은 사교클럽과 파티에 초대된다. 그가 유명해질수록 사회 생활도 늘어만갔다.

  조지 프레이는 피커딜리에 있는 킬리퍼스 바에서 제임스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거기 있더라고, 새벽 한시쯤에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술을 마시고 있었어. 그런데 금요일 밤이었거든. 12시간이 지나면 아스날 경기를 뛰어야 했어. 그때는 축구 선수들을 만나면, 그냥 친구처럼 대해주던 때야.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내가 당신 팬이라고 했지. 우리 둘 다 꽤 취해 있어서, 그가 내 손을 잡고 웃으면서 수다를 떨더라고. 처음에는 스코틀랜드 억양이 너무 강해서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먹었어. 새벽 3시쯤 되자 내가 그에게 언제쯤 집에 갈 거냐고 물었지. 그러자 갑자기 그가 나를 꽉 잡고 아주 정색하고 말하더구만. '해가 뜰 때까지 달려야 하지 않겠나, 친구.' 허풍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매 주말마다, 그가 파티나 행사에 참여 한다고 하더라고. 그때는 축구 선수들이 공 안 찰 때는 뭐 하는지 신문들이 신경 안 쓰던 시절이니 제임스는 정말 운도 좋았지. 그리고 그 날 아스날이 빌라를 맞이했어. 터널 밖으로 나오는데 꼬라지를 보니 완전 일주일은 잠을 안 잔 사람처럼 초췌했어. 눈뜬 장님이 따로 없었지. 빌어먹을 알렉스 제임스."

  제임스의 팬들은 그를 보기 위해 피커딜리까지 먼 길을 갈 필요는 없었다. 테드 드레이크가 회상했다. "경기가 끝나면, 경기장 밖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지고 사인 받으려고 난리를 쳤어. 에디 햅굿 사인 받기는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만약 일요일에 그를 만나면, '지금 교회에 갈 시간 아닙니까.'하고 뿌리쳤대. 하지만 팬의 80%는 알렉스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인을 해줄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거든. 특히 아이들을 잘 대해줬어." 지역 주민 조지 리들리가 회상했다. "30년대 아스날 선수들은 정말 만나기 쉬웠습니다. 경기 전 훈련으로 하이버리 주변 도로를  뛰어다니기도 해서 그 길로 따라다니면 그들을 볼 수 있었구요. 대부분 점심에 근처 샌드위치 가게를 들리곤 했었고, 알렉스는 경기가 끝나면 꼭 술집을 찾아왔습니다. 순전히 그 때문에 사람들은 우뚝 서서 멍하니 쳐다보았죠. 허버트 채프먼은 클럽이 지역 사회에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지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의 행사에 참여하고, 크리스마스 캐롤 콘서트에 참여하고, 이래저래 바빴지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렉스가 사람들 눈에는 그저 전설처럼 보였겠지만, 놀랄만큼 만나기 쉬웠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제임스는 아스날에서 보내는 첫번째 시즌의 막바지에 FA컵 결승 허더스필드전에서 골을 넣었고, 결국 아스날은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다. 처음으로, 이슬링턴에서 축구 팀이 트로피를 팬들에게 자랑하며 퍼레이드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10살이었던 래리 해리스가 말했다. "컵 대회 결승이 끝난 다음 주 월요일 아스날은 선더랜드와 리그 경기를 치러야 했어.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으로 경기장에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넘실거렸고, 스카프와 장미 매듭이 지천에 널렸지. 또한 클럽은 빨간색, 흰색으로만 된 폭죽을 잔뜩 준비했어. 마을 전체의 축제였지. 아스날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오자 선더랜드 선수들도 예를 표했어. 경기가 끝나고, 모든 관중들이 '우리에게 알렉스를 달라.'고 노래를 불렀지. 그하고 다른 선수들이 피치를 돌면서 감사인사를 하였고, 알렉스는 관중들하고 일일히 악수를 했지. 내 앞의 어른 하나는 거의 울먹이면서 '알렉스 제임스랑 악수했어. 절대 다시는 손을 씻지 않을거야.'라며 좋아하셨지. 그 어떤 아스날 선수도 알렉스만큼 팬들에게 존경받지는 못한 것 같아, 나는 그 시절에 그걸 본 셈이고."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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