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가장 가슴쓰린 경기

1934년 1월 6일. 별 다를 것 없는 이슬링턴의 하루다. <이슬링턴 가제트>의 지면에는 지역 주민들이 늘 그렇듯이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당시 4,000파운드 정도 하던) 평균 집값은 아무리 봐도 너무 높았고, 에일린 팔렛 부인이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지역 교통은 혼잡했다. 그녀가 투고한 내용은 이렇다. "저번 화요일에 남편이 세븐 시스터스 로드로 일하러 가는데 30분이 넘게 걸렸어요." 마를렌 디트리히에 대한 비난도 투고란에 쏟아졌다. 폴 클라크씨는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그녀의 저속한 손놀림과 과도한 성적 어필'을 비난했다. 어쨌거나 그는 영화를 끝까지 보기는 했단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작년에 비해 구독자가 늘었다고 홍보했고, 윈스턴 처칠은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을 어기고 공공연하게 독일의 무장을 강화하자 "영국이 이리 무력한 적이 없었습니다."라며 참담한 심정을 내비쳤다.

  아스날 선수들에게도, 정말 별일 없는 아침이었다. 조지 메일이 <데일리 익스프레스>에 "2일 전 버밍엄에게 비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경기력이 평소보다 저조하다"라고 말했다지만, 아스날은 여전히 리그 정상을 질주하고 있었다. 관중들이 (손익분기점인) 40,000 명 이하로 줄어들고 있었기에 그날 오후에 있는 쉐필드 웬즈데이를 맞이하는 홈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했다. 선수들은 허버트 1993년 말, 채프먼이 이미 단장 조지 앨리슨에게 "한 번 싹 물갈이를 할 때입니다."라고 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채프먼에게 그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그날 아침, 경기전 훈련을 위해 훈련장에 들어온 선수들은, "허버트 채프먼 사망"이라고 쓰인 신문 헤드라인을 읽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역 주민들이 모두 안타까워했다. 애버딘 로드에 살던 토미 지저드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내는 밖에 나가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들어오더니 채프먼 씨가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좀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지만, 폐렴에 걸리고 2일후에 죽다니요? 우리 모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모두 그를 존경했습니다. 종종 경기장 주변을 선수들과 같이 돌아다니고는 했는데, 늘 점잖으셨죠. 매번 만나면 모자를 들어올리고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아내가 '끝났네. 아스날이 완전 끝났네.'라고 말하더군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폴 드루리는 그날 오후 쉐필드 웬즈데이전을 보러 갔었다. "관중들은 많았지만 음산하기 짝이 없었지. 아무도 말을 않는거야. 내 근처에 있던 친구 하나가 노래를 부르던데, 아마 채프먼이 죽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나봐.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좀 조용히 하라면서 이유를 말해주니 얼굴이 빨개지더군. 내가 다 부끄럽더라고. 선수들도 싹 가라앉아있었어. 경기를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비겼지. 그리고는 몇 경기를 연속으로 졌고, 마치 여전히 갈피를 못 잡겠다는 듯이. 얼마 있다가 스퍼즈하고 홈경기가 있었는데, 이걸 '채프먼 추모전'이라고 후에 그러더라고. 채프먼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경기에 참가했지.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왔는데도 들어갈수가 없었어. 칠만명 정도가 있었는데, 1시에 문을 닫아버린 거야. 뭐하는 짓이야 그게. 화가 났어, 경기장 안에 들어가서 우리의 마음을 보여줘야하는데 말이야. 참 이상했던 건, 아스날 역 근처에서 '그가 유쾌하고 멋진 남자였기에…'라는 채프먼 응원가를 경기 내내 들을수 있었어. 아마 이만 명 정도는 경기장에 못 들어갔던 것 같은데, 아무도 집에 가지 않았을거야. 경기 내내 그 근처에 있었지. 시간이 깨나 흘렀고 이제 추억하는 노래를 불러도 싶어도 된다 싶은거야. 하지만 쉐필드 웬즈데이 경기 때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

  팬들이 상실감을 느꼈다고 하지만, 선수들이 실감한 절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1월 10일, 허버트 채프먼은 헨던에 묻혔다. 운구를 하던 잭, 햅굿, 램버트, 바스틴, 제임스는 모두 30년대 축구를 풍미한 선수들이었다. 조지 메일이 채프먼이 죽었을때 쯤 일을 말했다. "완전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쉐필드 웬즈데이전을 치렀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그랬을 겁니다. 채프먼은 아스날뿐만이 아니라 축구계 전체에서 존경받던 사람이니까요. 킥오프 직전에, 채프먼을 대신해서 임시로 대행하던 조 쇼가 관중들 앞에서 채프먼이 우리에게 원하던 경기를 하고 오라고 말했죠. 말도 안되는 일이었어요. 관중들도 조용했어요. 문자 그대로 장례식장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몇주동안 정신을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안방에서 스퍼즈를 맞이했죠. 많은 사람들이 이기기를 기대했고, 채프먼을 위한 노래를 불렀지만,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축구 선수 노릇을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그날 이기지 못한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두려움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새 감독은 과연 채프먼이 그랬던 것처럼 날 중요히 여길까?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닙니다.

  스퍼즈 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이버리 밖에 있던 화환은 멀쩡했다는 것이 당시 팬들이 어땠는지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비 매치인데도 채프먼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세지를 남겨두었다는 거잖아요. 우리 선수들은 그 메세지들을 다 읽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이버리에 채프먼의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그후 꽤 많았다. 밥 월과 다른 직원들은 밤만 되면 복도를 거니는 그의 발소리를 들었다고 했으며, 월은 그의 저서 <마음 깊이 아스날>에 그가 정기적으로 채프먼이 복도에서 떠도는지 확인해 보았다고 하였다. 채프먼의 뒤를 이은 조지 앨리슨도 어깨를 짓누르는 채프먼의 무게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트 스탠드의 로비에 있던 그의 흉상만큼 뒤를 이은 감독들의 다양한 반응을 끌어낸 것도 없을 것이다. 아주 잠시동안 채프먼보다 대단해 보였던 조지 그레이엄은 채프먼 흉상 옆에 자신의 흉상이 서있길 원했다고 한다. 유명한 이야기인데, 30년전 채프먼이 만들어 놓은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빌리 라이트가 흉상 앞에서 자주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 아스날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던 것은 채프먼만이 아닌듯 싶다. 1970년, 페어스 컵을 우승하자, 한 선수가 이사진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소문이 있다. "이제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알렉스 제임스하고 허버트 채프먼을 좀 치워버리죠."

  필자가 "채프먼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무엇일까요?"하고 조지 메일에게 묻자, 그는 오랫동안 망설이다 대답했다. "길레스피 로드 역의 이름을 아스날 역으로 바꾼 것이죠." 채프먼은 그의 모든 정치적 수단을 동원하여 표, 신호, 그리고 열차 시간표를 새 이름에 맞게 짜놓게 했다. 그가 공무원을 이렇게 윽박질렀다고 한다. "질레스피 로드, 그딴 이름을 누가 아오? 아스날이라고 하면 딱이지." 메일이 덧붙였다. "당시 아스날 팬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이 그러더군요. '조지, 우리는 경기장도 멋있고, 선수들도 멋지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채프먼이 어떻게 역 이름을 바꾼 건가요?'라고요. 대답해줄 말이 없더군요. 클리프 바스틴이 늘 하던 말인데, 채프먼이 아예 수상이 되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스날 팬들에게는, 아스날 역만큼 멋진 건 없겠죠?"

  조지 메일이 말하길 채프먼의 이루어지지 못한 소원 중 하나는 하이버리에서 야간 경기를 치르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하는 것을 봤나 봅니다. 그러나 대공황 당시에는 연료 부족때문에 할수 없었어요. 아쉬운 게, 하이버리는 불을 켜 놓으면 더 아름다울 수가 없을 정도로 멋진데 말입니다. 가끔 눈을 감고 상상을 하는데, 채프먼이 불빛이 찬란한 스타디움 한 가운데 서 있고, 관중들은 꽉 차있고 그를 향해 모두 환호하는 거에요. 정녕 시대를 20년은 앞서간 사람이었습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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