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하이버리의 전투

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1930년대 초, 잉글랜드 축구 관계자들은 국가 대표 선수단을 선발하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조지 메일이 축구 협회 관계자에게 왜 잉글랜드 국가 대표가 1930년 1회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한다는 말이 "우리가 라틴계 촌놈들을 상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였단다. 그런 인종차별적인 답에도 말문이 막히지 않은 메일은 브라질이나 우루과이 같은 나라들과 경기를 하면, 잉글랜드 팀은 대륙의 전술에 대해 배울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그 관계자가 응수했다. "아니, 메일 씨, 당신같은 사람을 어찌 저 검둥이들과의 대결에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런 오지에 갔다오면 당신은 바나나를 먹고, 사람들은 구경하면서 박수를 쳐댈 것입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해외 팀과 경기 하는 것에 대해 잉글랜드 정부의 입장은 일관성이 없었다. 1933년, 당시 외무부 대변인이었던 네빌 헨더슨이 축구 협회에 경고했다. "대영제국과 해외 팀의 경기는 늘 경계하라. 그들 대부분은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경기를 치르기를 원한다." 같은 해, <데일리 메일>의 기자가 그에게 입장을 명확히 해줄것을 요구하자, 그가 말했다. "대영제국이 상대하는 팀의 국가가 독재 국가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1934년 여름, 파시즘이 지배하고 있는 이탈리아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자 영국 정부는 입장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공을 잘 차는 것이 좋은 정치다."라는 말을 남겼고, 축구협회와 정부가 모두 국가 대표 경기에서 얼마나 잘해줄지 벌벌 떠는 가운데, 잉글랜드가 '아주리' 군단과 하이버리에서 경기를 가지기로 결정됐다. 당시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의 확고한 주전이었던 테드 드레이크가 기억하는 바로는 이렇다. "월드컵이라는 확실한 물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 영국 기자들은 아직도 우리가 "도덕적인" 세계 제일의 축구팀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경기를 전혀 하지 않았기에,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것이었죠. 사실 웃기지도 않는 일이죠."

  잉글랜드 대표팀의 골격이 갖춰져갔다. 코핑, 보던, 메일, 모스, 드레이크, 햅굿, 그리고 바스틴[각주:1].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하이버리 일전'이라 명명했고, <데일리 미러>는 '아스날 무적함대'라 일컬었다. 사실 이 경기는 다음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이버리의 전투'. 무솔리니의 "삶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것은 전쟁 뿐"이라는 철학을 대입해보면, 꽤 적절한 이름이다. 무솔리니가 이미 윌프 코핑의 명성을 듣고 떨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스날의 오른쪽 수비수의 존재 자체가 상대 가슴 깊이 공포가 되는 것이다. 사실 굳이 그런 악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테드 드레이크는 코핑의 성격을 이리 묘사했다. "…화산 같은 남자였어. 이탈리아를 상대하기에 그저 완벽했지." 윌프는 미들웨이트 급의 권투 선수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1933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기에서 그는 빌 섕클리와 대판 싸웠는데, 섕클리가 그에 대해 말한 바가 있다. "
…코핑이 내 다리를 잡고는 엎어트렸어. 무릎 패드는 이미 떨어져 나갔었고, 양말이 찢어지면서 내 다리 살이 같이 찢어졌지. 아마 우리집 안방이었어도 날 죽이려 들었을거야."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잉글랜드 선수들은 이탈리아 선수들이 하이버리에서 이기고 나면 받을 보상에 대해 알고 말았다. 언론에 흘러 들어온 바로는 이탈리아 선수들은 이길 경우 선수 당 150 파운드를 지급받고, 알파 로메오 사의 신형 자동차를 받으며,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군역을 면제해준다는 것이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우리의 가슴 속에 불을 붙이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넘볼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부였거든요." 이탈리아 선수들은 아마 아마추어 선수들로 추측되는데, 중요한 점은 프로 선수였던 잉글랜드 선수들이 출전료로 겨우 2 파운드를 받았다는 것이다. 코핑은 그러나 늘 셔츠 위의 삼사자 문장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데일리 미러 지에서는 "10골 차로 이겨야 체면이 선다."라고 주장했다만 54,000명의 관중들은 우뚝 서 있는 이탈리아 선수진을 보고 경기가 아주 치열할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빅토리아 역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을 찍은 사진이 남아있는데, 사진 속의 그들은 듬직하게 차려입고 당당하여 마치 "제군들의 모든 기운과 의지를 다 써서 지구상의 모든 싸움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무솔리니의 말이 귓가에 계속 울리는 사람들 같았다. 테드 드레이크가 이탈리아 선수들을 처음 본 감상을 말했다.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 같았어. 부유해 보였고, 건강해 보였고, 뭐랄까 전형적인 라틴족 같았지. 다들 잘생긴 친구들이였어. 잉글랜드 선수들을 보니, 이빨은 깨지고, 귀는 못생겼지. 미남 대회를 했다면 절대 이기지 못할 면면들이야." 경기는 시작부터 강렬했다. 시계가 채 1분을 가리키기도 전, 맨체스터 시티의 에릭 브룩이 골망을 갈라 잉글랜드가 1-0으로 앞서나가고, 2분 후에 그가 또다시 득점을 추가했다. 15분이 지나고, 테드 드레이크가 잉글랜드의 3번째 득점을 성공시켰다. 아마 미러의 예측이 영 틀려먹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경기장 위의 문제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브룩이 잉글랜드의 선취골을 성공시킨지 일 분 정도 지났을까, 이탈리아의 센터 하프이자 주장인 몬티가 윌프 코핑과 '우연히' 부딪혀 발이 부러진 것이다. 떠도는 말로는 윌프가 고의적으로 그를 처리했다고 하지만, 이를 증명할 사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라디오 캐스터는 우연찮게도 윌프와 아스날의 감독인 조지 앨리슨이었는데, 사고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조지 메일이 덧붙였다. "윌프가 무슨 짓을 저지르던가 사실 놀라지 않았습니다. 경기 내내 훨훨 타오르고 있더군요. 하지만 정말 그가 몬티의 발을 부러트렸다면, 아마 정말 아무도 모르게 일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 일격이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즉각 분노했고, 잉글랜드 주장인 에디 햅굿은 그 분노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오른쪽 수비수가 그를 덥쳤고, 그의 얼굴을 때려 코를 부러트렸다. 햅굿은 계속 경기장 위에 있었지만, 후에 그의 자서전인 <축구 대사>에 이리 기록한다. "마피아의 열정적인 행동대장으로 봐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사람이 축구화로 내 발을 갈겨대는 상황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사실 너무 힘들었다." 햅굿의 책이 유럽 국가들간에 돌던 적대감을 그대로 반영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충분히 옳은 말이다. 이탈리아는 몬티 없이도 계속 싸웠다. 문자 그대로 읽거나, 혹은 은유적으로 읽거나 옳은 말이다. 메아치의 활약으로 60분에는 2-3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나 윌프 코핑은 조 페시 같은 방법으로 이탈리아인들의 의지를 꺾었다.

 전반전이 끝날때쯤 그는 이탈리아 공격수랑 충돌했고, 코핑은 의사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의사가 말하길 그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고, 코핑은 "환상적이군요. 어쨌거나 라커룸으로는 돌아올 수 있겠네요."라고 대답했다. 후반전에는 어깨로 상대랑 부딛혀, 이탈리아 선수 두 명이 결국 절룩거리는 채로 경기를 끝내고 말았고, 그리함으로 다른 모든 선수들을 겁주었다. 그의 몸짓으로 잉글랜드의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설명해준 셈이다. 잉글랜드는 어쨌거나 3-2로 신승했고,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가장 지저분한 경기로 꼽을만하게 되었다. 희생자 숫자가 엄청났다. 에릭 브룩은 팔꿈치에 실금이 갔고, 햅굿은 코를 세우기 위해 병원에 실려갔으며, 드레이크, 바스틴, 그리고 보우덴은 모두 팀 휘태커에게 진단을 받아야 했다.

  경기가 끝나고 코핑까지 포함하여 위에 언급한 선수가 모두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유명한 사진이 남아있다. 테드 드레이크가 회상했다. "톰 휘태커의 의무실은 당시 스포츠계 기준으로는 굉장히 선진적이고 놀라웠어. 일단 찜질 램프가 있었고, 마사지 도구, 스폰지, 하여간 모든 것이 있었거든. 복싱 선수, 경마 선수, 크리켓 선수까지 수 마일 먼 길을 와 톰에게 치료를 받으려고 했어. 뭐든 다 낫게 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하나 예를 들자면, 클리프 바스틴의 연골이 경기중에 자주 탈골이 되곤 했거든. 하지만 톰이 손으로 쓱쓱 몇 번 만지면 제자리를 찾아가. 클리프가 나중에 그 뼈를 아예 제거해서 진열을 해두었다고 하더라. 완전 변형이 되어있어서 그랬대." 코핑은 감정표현은 모나리자 같았다. 무표정과 웃음 사이의, 정의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상황을 완벽히 정리하듯이. 그는 멍들고 피에 젖은 채로 의무실로 들어왔고 상당히 아파 보였으나, 축구계의 철인이라는 명성을,월드컵 우승팀을 상대로 입증하였다. 비록 팀 동료들과 지켜보던 이탈리아 대사까지 모두 그가 '규칙 안에서' 경기를 치렀다고 변호했지만, 축구 협회의 임원들은 경기를 보고 충격을 먹어, 이후 모든 국가대표 경기를 금지하려 한다. 축구협회가 늘 그랬듯이, 그들은 곧 굴욕적인 나락을 경험하게 된다.

  언론은 해오던 대로 이탈리아 팀을 조롱했다. <미러>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여기 이탈리아 인들이 이름만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반박할수 없는 증거가 있노라." <타임스>는 한 술 더 뜬다. "이탈리아 팀이 과연 이 패배 이후에도 허세를 부릴수 있을까?" 조지 메일이 말했다. "사실 경기력으로만 보자면 이탈리아가 당연히 이겼어야 할 경기인데도 당시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 들더군요. 잉글랜드가 그 후 오랜기간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시발점이나 마찬가지였죠. 말은 이리 했다만, 그 경기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하이버리에서 이런 경기를 하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죠."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모두 아스날 선수들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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