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야유 받은 친구들: 브라인 존스

명히 1930년대의 하이버리 관중들은 심술궂은 면이 있었다. 늘 환호를 보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아스날 팀과 함께, 계속되는 성공이 팬들의 기대치를 말도 안되게 높은 수준으로 올려버렸다. 조지 메일이 회상했다. "1933년 아스날이 월설에게 졌을때 처음으로 처음으로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그 해, 우리가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긴 했지만, 만약 우리 홈에서 관중들이 기대하는 만큼 하지 못한다면 바로 등을 돌리더군요. 조금 중립적인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허버트 채프먼의 팀이 리빌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따라간다고 볼 수도 있어요. (선수나 팬이나) 우리 모두 타이틀을 따낸다고 할지라도 최고의 한 해라고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더 많이 따낼수록, 원하는 바도 많아집니다."

  1936-37 시즌 내내, 테드 드레이크가 생각한 바가 있다. "…내가 놀란 것은 말야, 관중들이 알렉스 제임스를 대하는 태도였어. 조금 발이 느려지고, 조지 앨리슨하고 투닥거리 한 것도 있었는데, 아니 그렇다고 정말 야유를 퍼부어?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웠어." 기름 바른듯 매끄럽게 잘 돌아가던 아스날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드레이크가 말을 이었다. "
…전쟁 전 마지막 시즌에 특히 심했어. 우린 5위로 마쳤지. 우리 기준으로 보면 잘한 건 아니야. 선더랜드, 프레스턴, 울브스 같은 팀들이 우리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었어. 순풍가도는 끝난 거지. 선수들 몇몇은 사람들이 유럽 정세 때문에 날카로워져 그러는게 아닌가 싶었지. 하지만 내 생각에 아스날 팬들이 점점 요구하는게 많아졌던 것이고, 우리는 경기장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었던게지."

  허버트 채프먼은 관중들이 못하는 선수들에게 눈총을 보낸다는 것을 일찍 눈치챘다. 채프먼의 주요 영입 선수들 모두 처음에는 하이버리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데이비드 잭은 클럽에 막 왔을 때 부찬을 대체한다는 중압감과 엄청난 이적료 때문에 줄담배가 늘었다. 잭의 날카로운 외모 속에는 몇 년을 고민한 남자가 있었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데이비드 잭 자신보다 자기 능력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 그가 관중들 때문에 속을 썩혔어요. 그가 제게 두세번 정도 이런 말을 했었어요. '볼튼이랑 많이 다르네.'" 여러가지 부담을 많이 지고 있었던 알렉스 제임스도 초기에는 관중들에게 욕을 얻어먹었다. 대개 그가 슈팅을 꺼리기 때문이었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때때로, 알렉스는 죽어도 패스만 할 것 같았어요. 관중들은 별로 동참하고 싶지 않았고요."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기고란을 빌려, 채프먼은 야유를 하는 사람들은 경기장 요원들에 의해 주의를 받아야하고, 필요하면 강제로라도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관중들에게 살짝 변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관중들은 돈을 냈고, 그리고 아주 악의적인 것만 아니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선수들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요." 메일과 드레이크 모두 클럽이 웨스트 엔드와 가깝고, 아스날의 부유한 구단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하이버리 관중들이 순전히 노동 계급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드레이크가 말했다. "그때도 플러스포스 쫙 빼 입은 남자들이 관중석에 많이 있었어. 경기장에 오는 건 오랫동안 팬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스날 경기를 보러 오는 것이었지. 한 번은, 나도 쫙 빼 입은 신사분하고 말을 나눈 적이 있었어. 그냥 돈이 엄청 많이 보이는 분이었지. 경기 중에 에디 햅굿이 스로우를 던졌는데, 갑자기 그가 담뱃대를 입에서 빼더니 에디에게 말을 거는거야. '이제 공격을 하게나, 이 경기에서 아직 아무것도 한게 없지 않은가.' 에디가 그를 향해 확 돌아서더니 욕지거리를 퍼부었지. 하지만 어디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축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없을리가 없어. 내고 하고 싶은 말은 아스날 팬들은 늘 무언가 있어야 계속 응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말야. 뉴캐슬 같은 곳하곤 다르지, 좀 심하게 말하면 거기는 쓰레기통에다가 흰색 검은색 줄무니를 칠해놓고 경기장에 세워두어도 응원하는 동네잖아. 아스날 관중들은 인상 깊은 플레이를 봐야 비로소 함성을 지르지."

  아마 그 시절 아스날 선수 중 다른 누구보다 욕을 먹은 선수가 하나 있다. 브라인 존스는 1938년 6월 울브스를 떠나 14,000 파운드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으로 하이버리에 입성했다. 그의 이적료는 축구계에 파장을 멀고와, 하원에서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당시의 권위 있던 기자들이 절대 아무도 저 이적료를 넘길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9월, <옵저버 스포츠 먼슬리>는 '축구 역사상 최악의 돈 낭비 10인' 명단에 존스를 포함시켰다. 현대로 치면 2800만 파운드 정도의 돈이다. 발재간도 좋고 민첩하며 울브스에서는 대활약한 존스는 '제 2의 알렉스 제임스'라 명명되었다. 이제 아스날은 존스같은 새로운 인재를 데려와 다시 기름칠을 하려 한 것이다.

  테드 드레이크가 회상했다. "브라인을 아스날에서 처음 본 순간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 그냥 느낌이었는데, 이적료가 공개된 게 편치 않았나 봐. 게다가 울브스에는 모든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하이버리에서는 반대잖아, 우리에게 맞춰야지. 2주 정도 지나니까 아예 적응 못할 것이 확실해 보이더라고. 아스날은 5등으로 시즌을 마쳤고, 그리고 매우 이르게 우리는 그가 팀이 잘할때나 잘하는 몸값 비싼 선수라는 것을 깨달았지, 제임스처럼 팀을 구덩이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이버리에서 존스가 더비와의 경기에서 아예 지워지다시피 했었을 때, <더비 이브닝 텔레그래프>의 기자가 이렇게 보도했어. '아스날은 큰 문제가 있다. 14,000 파운드를 주고 데려온 브라인 존스가 공격의 활로를 뚫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 몸집 작은 웨일즈 출신 선수는 노출을 부담스러워하며, 매우 근심스러워 하고 있다.…그의 한계가 보인다."

  하이버리의 관중들은 이내 존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조지 메일이 회상했다. "이적 초기에 브라인은 하프타임이나 경기가 끝나면 덜덜 떨면서 말했습니다. '나를 싫어한다니까, 분명 나를 싫어해.' 하이버리 관중들 이야기였죠." <이슬링턴 가제트>는 아예 비수를 꽂았다. "가련한 싸구려 브라인 존스가 홈팬들 대부분에게 비난받다." 조지 메일이 덧붙였다. "브라인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재능있는 선수였어요. 단정하고 재기있었지만 적응을 하지 못했어요. 제가 보기에 그가 빅 클럽에서 뛸 만한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않아 있었습니다. 울브스도 큰 구단입니다만, 아스날과 비할 바는 아니죠. 그가 런던 생활을 영 즐기지 못했기도 했죠. 시절이 안 좋았던지라 아스날 팬들에게 딱 맞는 희생양이 바로 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 하락세였어요."

  축구계 전반에서 존스를 데려온 것이 조지 앨리슨이 여전히 '영란은행' 행세를 지나치게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화난 아스날 팬들은 구단의 큰 씀씀이를 비난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제 돈이 없는데 무얼 할수 있을까? 잠이나 자라지." 1938년, 존스는 결국 아스날 1군에서 탈락했고 더 이상 주목받지도 못했다. 2군 경기장 관중석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한 존스는 33,000명이나 경기장에 나오자 할 말을 잃었다. 그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가 뭐하나 싶어 궁금장에 나온 관중들이었다. "브라인은 너무 비싼 몸이 되어버린 나머지 숨을 곳도 없었답니다." 조지 메일이 평했다.

  존스는 게다가 불운하기도 비할데가 없었다. 1939-40 시즌 초 드디어 1군에 돌아왔고, 그의 활약상은 <데일리 텔레그래프> 같은 신문들을 포함한 유력지에서 찬사를 이끌어냈다. "존스가 마침내 아스날 관중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다." 그런데 이제 그 세 경기는 공식 기록에서 삭제되었다. 전쟁이 터졌고, 리그는 중단되었다. 겨우 27세였던 웨일즈 선수는 축구를 6년 동안 하지 못했고, 그의 선수 생활에 있어 어마어마한 부분이었다. 리그가 1945년 재개되었고, 이제 33세가 된 존스는 아스날을 위해 3년을 더 뛰었다. 더 이상 아무도 그를 압박하지 않았고, 조지 메일이 이에 대해 한 마디 했다. "브라인은 완전히 변했었죠. 빠른 발은 가버렸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관중들은 그를 받아들이고 그의 재간에 감탄했죠. 하지만 그를 생각하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 환상적인 솜씨를 가지고도 아스날의 전설이 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