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은막 위에서

1931년, BBC의 텔레비전 관계자 하나가 허버트 채프먼에게 런던의 영화관에서 방영될 일반적으로 지루한 뉴스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그의 선수들을 카메라 앞에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게 시킬 생각이 없냐고 전화를 걸어 떠보았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제안이었지만, 그 시대에는 축구 선수가 영상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인지라 TV 관계자들을 수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어느날 아침 훈련이 끝나고, 채프먼이 우리를 한 쪽에 모아두고 묻더군요. '여들보게나, 텔레비전 관계자들이 와서 자네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 웃기는 노래 같은 것을 불러달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이상했던건, 알렉스 제임스는 상류사회 사람들과 곳잘 어울리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그 발상에는 기겁을 하더군요. '안 되죠, 안 됩니다. 제가 무슨 동물원 돌고래입니까?' 그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 외에는 그의 반응를 설명할 길이 없네요. 그를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재미있을것  같아서 하기로 했거든요."

  2주 뒤, <하이버리에서의 삶>이라는 1분짜리 단편이 런던 전역에 뉴스 영화를 타고 방송되었다. 그의 '멋진 남자들'을 설명하려다가 채프먼은 목이 쉬었고, 결국 톰 휘태커가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하나 둘, 휘태커는 선수들을 소개했고, 그리고 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 단편은 아직도 공식 <아스날의 역사> DVD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지 메일이 증언한대로, 딱 한 명 노래를 부르지 않은 사람은 평소 행실과 전혀 다르게 부끄러워하던 알렉스 제임스였다. 사실 이때가 아스날이 처음으로 대중 방송 역사에 얼굴을 내민 것은 아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치른 1927년 홈 경기는 BBC 라디오가 처음으로 중계한 축구 경기였고, 찰리 부찬의 골은 BBC 라디오가 처음으로 전한 골이었다.

  채프먼 본인은 이미 미디어의 영향력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수년동안, 그는 <선데이 익스프레스>에 칼럼을 기고하여 그의 명성이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 1934년, 그의 사후 발간된 자서전 <허버트 채프먼이 축구를 말하다>는 파장을 몰고 왔다. 축구계의 많은 인사들은 이것이 업계의 비밀을 다 드러냈다고 불쾌해했다. 사실 이 책이 기본적으로 그가 <선데이 익스프레스>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황당한 반응이다.

  1932년, 채프먼은 아스날 선수들에게 개인 번호를 할당해 주었다. 축구 협회는 이것이 선수들에게 허영심과 자기 중심적 사고를 심어줄 것이라며 제지했다. 그래도 하이버리에 텔레비전 카메라를 들여오고, 톰 휘태커에게 아스날 선수들을 하나 하나 따로 소개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채프먼은 이미 대중의 눈에 선수들 각자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 조지 메일이 설명했다. "채프먼은 선수들은 똑같이 대하는 것은 나쁜 관리법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비록 그가 우리가 경기를 치를 때는 단합해야 한다고 주장했어도,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때에 따라서는 훈련법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예를 들어, 알렉스 제임스는 조금 특별 대우를 받았지만, 그가 팀의 중심이었고 늘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럭저럭 차별을 인정했습니다." 당황스럽게도, 1931년 6월, 채프먼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텔레비전 중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스날 이사진의 제안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는 궂은 날씨와 텔레비전 중계는 관중 숫자를 줄이는 직행길이라고 주장했다. 흥미롭게도, 이 회의는 아스날 단장이었던 조지 앨리슨 없이 치러졌다.

  앨리슨은 수년동안 BBC 라디오 해설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전성기 때 특유의 혀 짧은 발음과 <라디오 타임스>의 축구 격자의 활용에 힘입어 천만이 넘는 청취자를 모을 수 있었다. 앨리슨은 이사진과 감독의 결정에 분개했다. 조지 메일이 주장했다. "아마 채프먼이 선지안을 발휘하지 못한 유일한 결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가 진정한 축구인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죠." 조지 앨리슨은 조금 다른 존재였다. 테드 드레이크가 설명했다. "솔직히, 조지가 축구에 대해 뭘 알았겠어. 그래도 신문 업계와 다른 매체에 연줄이 있어서 그런지, 아스날을 계속 주목받게 하는 법은 정확히 알았지." 쇼 비지니스의 세계가 아스날을 몇 년이나 따라다녔다. 1930년대 내내, 알렉스 제임스는 여러 스포츠 유명인사와 사진을 찍는데 능숙해졌다. 무성 영화 배우였던 버스터 키튼이 하이버리를 30년대 초에 방문했고, 플래나건 앤 앨런이라는 음악 듀오도 찾아왔다. 앨리슨은 헐리우드에서 선이 닿아 있었는데, 진 할로우와 매리 픽포드도 당시 선수들을 만났다. 테드 드레이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 맞아, 매리 픽포드. 정말 죽였지, 그녀가 하이버리에 와서 선수들하고 사진을 찍었어. 아마 내 기억으로는 에디 햅굿에게 푹 빠진것 같던데."

  햅굿의 외모가 귀족적이고 멋지다고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조지 메일이 잉글랜드 팀이 1934년 이탈리아를 방문했었을 때 일을 회상했다. "베니토 무솔리니 표정을 봤어야 했어요, 완전 에디에 대한 질투로 가득찬 눈빛이었지요. 무솔리니 총통하고 사진을 좀 찍었는데, 자꾸 에디의 날카로운 턱선을 쳐다보던데요. 무솔리니가 자꾸 자신의 고개를 들어가지고 겹친 턱을 어떻게든 감추어보려 들더군요, 에디보다 좀 잘나 보이려던거죠. 어쨌거나 결국, 에디의 턱선이 은막 위에서 반짝 거리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1938년, G & S 영화사가 앨리슨에게 접근하여, 하이버리에서 레너드 그리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스날 스타디움의 미스터리>를 촬영할 수 있냐고 물었다. 앨리슨은 마침내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인 슬레이드 형사를 그의 오랜 친구 레슬리 뱅크스가 열연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때 기뻐했다. 선수들 대부분은 돈에 더 관심이 많았고, 특히 헐리우드의 대표 미녀 그레타 진트와 함께 일할수도 있다는 말에 흥분했다. 팀 내에 균열이 약간 생겼다.

  테드 드레이크가 말했다. "어느 날 조지가 우리를 모두 라커룸으로 모았어. 늘 그랬듯이 애정이 넘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지. '이보게나, <아스날 스타디움의 미스터리>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제의를 받았어. 괜찮은 스릴러가 될 거야, 그리고 여름에 돈 좀 벌어보고 싶어하는 자네들을 위한 배우 자리도 좀 있지.' 그 당시에, 여름에는 경기를 하지 않으니까 돈을 다른 때만큼 받지 못했거든. 그래서 우리가 말했지. '얼마입니까, 감독님?' 일주일에 50 파운드라는거야. 세상에, 라커룸에 거의 폭동이 몰아닥쳤지. 우리중 대다수는 일주일에 8 파운드도 벌지 못했어. 엄청나게 큰 돈이고, 노후 대비를 하거나, 아예 집을 한 채 살 수도 있는 돈이잖아! 그런데 조건이 붙어있더라고. 조지가 계속 이어 말했지. '그런데 자네들 중 일곱명만이 할 수 있다네.' 바로 몇몇 선수들은 눈을 번뜩이더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정말 하난건 조지가 한 마디 더 했을 때야. '알렉스 제임스에게 참여해달라고 이미 말을 했네.' 그게 정말 화 났던게, 알렉스는 이미 2년전에 팀을 떠났거든. 더 이상 우리 팀 선수가 아니였다구. 조지는 알렉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당연한듯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된다고 했지. 하지만 우리는 계속 고집을 피웠고, 결과적으로 그가 물러섰지. 알렉스가 끼지 않게 되었고, 우리는 브렌트포드를 상대로 진짜 경기 장면도 찍어야 했어. 몇 가지 세세한 일들이 정리되고, 영화를 촬영했어. 정말 즐거웠지,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정말 돈도 잘 벌었고."

  영화는 아스날과 더 트로잔스라는 팀의 가상의 친선 경기에 관한 이야기다. 트로잔스의 선수 중 한 명이 하프 타임에 중독되고, 경기장에서 쓰러져 죽고 만다. 범인은 결국 트로잔스의 감독으로 밝혀진다. 극 전개 과정 중 산재되어 있는 축구 장면 들은 '진짜' 축구 경기다. 원정팀 브렌트포드는 1939년 5월 6일 하이버리에서 리그 경기를 치렀는데, 트로잔스를 연기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낯선 흑백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알프 커천(Alf Kirchen)과 테드 트레이크의 골로 아스날이 2 : 0으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모두 영화 안에 보존되어있다. 193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장면이 하이버리의 대리석 전당과 라커룸에서 촬영되었고, 나머지는 엘스트리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조지 앨리슨의 연기는 딱딱한 편이었지만, 불쌍한 브라인 존스는 여기서마저도 이적료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거의 전쟁 대금 만큼이나 많은 돈이 들었다.' 영화에서 아스날 선수들을 소개할 때 그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다. 조지 메일이 회상했다. '우리는 가운데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왼쪽 스튜디오에서는 서부극을 찍고 있었던 것 같고, 반대편에는 이집트 영화를 찍고 있었나봅니다. 카우보이가 지나가고, 인디언들이 지나가더니 클레오파트라 같은 사람이 또 앞을 지나갑디다. 가장 웃겼던 때는 경기장에서 촬영을 했었을 땝니다. 레슬리 콤프튼이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었던 그레타 진트하고 광고용 사진을 찍었지요. 레슬리는 당시 겨우 열아홉이었지만, 그의 무릎에 그레타가 앉자 완전 말을 잃더군요. 얼굴이 완전 빨개졌습니다. 몇몇 선수들은 그닥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다 돈 때문이죠. 우리팀 전체가 돈을 나눠 가져야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여름 내내 일한 사람들은 우리 7명이잖아요. 결국, 다른 일들도 생기고, 그 문제는 잊혀졌습니다."

  조지 앨리슨은 늘 스스로를 띄우는데 열성이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자서전 표지 뒷부분에는, 스스로를 '왕과 관리들의 친구이자 선수들의 동료'라고 칭하고 있다. 아예 허풍은 아니었다. 앨리슨은 1936년 FA 컵 결승전 때, 조지 5세와 전술에 관해 논했고, 이 필름을 통해 그의 선수들을 찬양했다. 앨리슨은
스스로를 영화의 기술 고문으로 정했지만 선수들 만큼 경제적으로 잘 처신을 하지는 못했다. 겨우 몇 주면 촬영이 완료될 줄 알았던 그는 한 달 짜리 계약만 맺었을 뿐이다. 선수들은 5주 동안 50 파운드를 받고, 그 다음부터는 하루에 10 기니씩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테드 드레이크가 회상했다. "매번 촬영이 제대로 안 될때마다, 촬영 기간이 길어져 돈을 더 챙겼으면 했죠."

  <아스날 스타디움의 미스터리>는 런던에서 그럭저럭 흥행했다. 중요한 문제는, 지역 주민들이 극장에 오는 것 보다 다른 걱정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은막 위의 영상들을 넘어서, 우리는 좋은 때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갑자기 전쟁이 터진것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했구요. 우리의 축구 경력도 중단될 것 같았습니다. 가족이 먹고 살 문제가 걱정되었고, 우리 애들이 다칠까봐 전전긍긍 안절부절 못했지요. 신문마다 전쟁이 오래 갈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만약 그랬다면, 우리 선수 경력이 끝장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합니까? 아니 그걸 떠나서 다시 돌아올수나 있을까요? 아스날 팀에게는 슬프고 어려운 시절이었고, 나라 안의 모든 사람에게 그러했습니다."

  이제 낡은 필름에 박혀 있는 추억이 된 아스날이 브렌트포드를 상대로 거둔 2-0 승리는 6년간 아스날이 보여준 최고 수준 경기력의 마지막이 되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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