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40년대-뻥 터져버렸네

1939년 말, 아스날의 시즌 티켓 소유자들은 아스날의 감독 조지 앨리슨이 보낸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경기장이 국가에게 징발당했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레슬리 워터스 씨가 회상했다. "세계2차대전은 이미 한창이었고, 편지 내용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앨리슨의 편지가 이렇게 끝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모든 아스날 서포터들이 으레 그랬듯이 다시 하이버리에 구름같이 모이는 날이 오기만을 고대합니다.' 어떤일이 닥쳐오고 있는지 확실한 증거였지요. 확인 사살 같은 것이었어요, 이제 평범한 나날들은 끝났다고."

  하이버리 징발은 선수들에게도 전쟁의 암운을 끌고 왔다. 테드 드레이크가 말했다. "물론, 전쟁이 닥쳐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 선수들이니까, 우리에게도 이사진이 협의한 사항이 전달 되었어. 사실 몇 년 전에도, 구단 건물을 폭격 시 대피 장소로 사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곤 했었는데 말야. 어떤 사람이 경기장의 외관을 좀 바꾸고 스탠드를 변장 시키는 발상을 꺼냈었지. 어떻게 축구장을 숨길려고 했는지 나야 모를 일이다만."

  팀 전체 42명의 선수 중, 40명이 군대에 들어갔고 전쟁이 끝날 때에는 9명이 죽고 없었다. 아스날 선수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조지 메일은 전시 대부분을 팔레스타인에서 지냈고, 브라인 존스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레슬리 콤프턴은 인도에서 복무했다. 아스날 선수들은 전시 내내 수요가 있었고, 연대 내 축구 대회나, 전시 리그 대회에서 꾸준히 출장했다. 활발한 공격수였던 레지 루이스는 그 시절의 삶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선수로 산다는건 힘든 일이야. 분명 하이버리에서 수만 명 앞에서 환호를 받아야 하는데, 전시 기간 우리 홈구장으로 지정된 화이트 하트 레인 따위에서 공을 차고 있어야 했었어. 나는 슈베리니스에서 복무했는데, 축구를 해야할 때면 휴가를 받고 런던으로 왔지. 혹시나 안좋은 사태가 터질까봐 관중을 25,000명으로 제한했어. 축구 하고 싶었기에 참아야 했지, 그런데 하이버리에서 하고 싶었단 말이야. 화이트 하트 레인이라니!"

  전쟁이 선포된 직후부터, 하이버리는 각종 작전으로 붐볐다. 전쟁이 아직 영국까지 크게 여파를 미치지 않아서, 하이버리가 징발된 후 첫 몇 개월동안은 조용했다. 그래서 가짜 전쟁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이버리는 공습 경보 시 대피소가 되었다. 경기장에서 이슬링턴의 공습 경보 훈련이 하루에 두 번씩 시행되었다. 팔레스타인으로 부임하기 전에, 조지 메일은 지역 공습 감시병들끼리의 경기에 정기적으로 참가했다. 그가 말했다. "초창기에는, 아직 우리들이 구단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컴비네이션 게임[각주:1]을 조금 하고, 친선 경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친선'이라는 말의 의미를 상당히 확장했긴 했습니다. 대부분 병사들이 프로 선수들과 한 판 해보고 싶어서 난리였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그들 대부분이 스퍼즈의 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이버리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참 오묘하더군요. 처음 몇달동안 나라의 분위기가 술렁이고 있었는데요. 먹고 살기 위해 축구를 하는데, 하이버리를 쭉 돌아보고 있자면 스탠드 위에는 방공 기구가 있고, 런드리 엔드 쪽에는 방공호가 있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더군요."

  클락 엔드 쪽의 연습용 경기장은 건축 자재를 쌓아두는데 쓰였고, 웨스트 스탠드는 방공호로, 그리고 이스트 스탠드는 응급치료소와 간부들의 본부가 있었다. 지역 주민인 마크 와츠가 설명했다. "굳이 축구 때문이 아니라도 구장은 지역사회의 일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축구가 아닌 일반적인 기능만 쓰였을 뿐이죠." <워든 포스트>에서 따온 다음 글이 전쟁 때문에 경력이 중단되어버린 선수들에게 하이버리 밤 순찰이 얼마나 허탈한 경험인지 알게 해준다.

  '한밤의 밤 교대조의 아스날 경기장 순찰은, 평시의 관중들이 내는 환호성과 소음에 적응된 우리에게는 너무 이상한 일이다. 톰 휘태커는 감시병들에게 저녁 8시가 뒤쪽 창문에서 빛을 찾아내기 적합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스탠드 위에 우뚝 서서, 거리에 빛이 보이면, 톰이 거리에 있는 다른 동료에게 신호를 보내고, 다른 동료가 그 집에 가서 불을 끄게 한다.

  저번 주에 깨끗한 밤하늘에 달은 둥글게 떠 있었다. 양쪽 골대가 한 곳에서 다 보였고, 우리는 제일 높은 곳에서 뒤돌아 보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기억이 우리 모두에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떤 환상적인 경기가 있었는데, 어떤 위대한 선수들이 지금 달 빛에 아른거리는 쫙 뻗은 잔디 위를 달렸는지…
…. 여러 사건, 골, 경기, 그리고 사람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잭 버틀러, 딘, 블라이스 등. 갑자기 이스트 스탠드 위의 등불이 반짝하고 사라졌다. 우리의 대화도 뚝 끊겼고 석상처럼 서 있었다. 다시 빛이 나왔지만, 훨씬 약한 빛이었다. '거기 누굽니까?'" 우리는 울었다. 순찰을 도는 밤 교대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본부로 돌아와 방화와 고폭탄의 위험성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가짜 전쟁'은 1941년 4월 16일, 550여 기의 독일 폭격기가 런던에 100,000개가 넘는 폭탄을 터뜨려 불바다로 만들자 드디어 지역 주민들에게 진짜가 되고 말았다. 셀 수 없는 폭탄이 하이버리 주변 거리에 떨어졌다.

  지역 주민 해리 스톤이 말했다. "세인트 토마스 가는 먼지더미가 되어버렸어. 블랙스톡 가도 그랬지. 혼돈 그 자체였어. 사람들이 멍하게 걸어다니고 있었지. 우리는 그날 밤 웨스트 스탠드에 숨어있었는데, 귀가 먹을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어. 경기장에서 기어 나왔을때 밖에 있는게 정말 폐허 빼고는 없을것만 같았지. 다음날 아침에 살금 나왔고, 런드리 엔드 쪽을 지나가는데 그 꼴이라고는.

  지붕이 아직 서 있었어, 구멍이 숭숭 뚤리고 금이 쫙쫙 가 있었을 뿐이지. 처음으로 폭격이란 무엇인가 느낀 것이야. 얼마 안 가서 집들이 납작해진 것을 봤을 때는 무덤덤했지만. 하지만 이렇게 된 하이버리를 본다는 것이 참, 아직도 눈에 선하구만. 런드리 엔드쪽 천장에서 폭탄이 5개 떨어졌던거야, 그리고 참호 안으로 떨어졌던 거지. 내가 전문가는 아니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무슨 인화성 물질로 되어 있었대. 터지지는 않았지만, 건드리는 것마다 불을 붙였지. 이불이 모두 불타올랐고, 그 열기 때문에 천장이 녹아 무너졌던거야. 직원들이 조금 더 조사를 해보니까, 천장에 난 구멍이 축구공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데, 참 아이러니하지? 만약 물자들을 테라스에 쌓아두지 않았더라면, 소실될 일도 없었겠지.

  좀 웃겼던 일이 있었는데 노인 분 하나가 감시병 한 명에게 정면으로 대든거야, 지붕을 가리키며 악을 쓰더라고. '저기 불이 붙을 때까지 너희들은 뭘 한거야?' 그러자 그 감시병이 도리어 악을 썼지. '사람들 집 근처에 불 끄느라 그랬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소중한 이런 개뼉따구같은 축구 구장보다 조금 더 중요하거든요!' 그러자 다시 노인이 받아 쳤어. '그러면 그 짓도 똑바로 못 하고 있구만, (그 노인이 벽돌 더미를 가리키더군.) 내 집은 말끔히 불타버렸단 말이다!' 그러자 그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면서 크게 웃더구만. 이 노인은 집을 잃었지만, 아스날이 더 걱정됐던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지만, 전쟁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았을까 싶어. 최악의 상황에서는 온갖 종류의 블랙 유머가 다 나오거든."

  1년 전쯤, 1,000 파운드짜리 폭탄이 사우스 뱅크의 연습용 운동장에 떨어져서, 초소에 앉아있던 공군 파일럿 두 명을 죽였다. 그들의 다른 친구 두 명은 살짝 긁히기만 하였다. 어두운 농담 뒤에는 잔혹한 현실이 숨어있다. 6년 동안의 전쟁은 아스날 구단에게 무수한 문제를 남겼다. 입장 수입이 전혀 없었고, 경기장 수리비는 엄청났기에 전쟁이 끝날 무렵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인 200,000 파운드의 빚이 생겼다. 당연히, 아스날은 보험료를 청구했다. 그러나 나라 내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아스날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다. 영란은행의 위기였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패스 위주의 축구 방식.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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