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60년대-런던의 악동들

1960년대 중순 쯤, 축구 팬들은 경기장에 올 때 복장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60년대 초 이전의 사진들은 회색 혹은 갈색의 양복, 그리고 레인코트만 흐리게 보여줄 뿐이었다. 나이가 있는 노동자는 어디서나 그렇듯이 모자와 구두를 갖춘 평상복을 입었다. 하지만 1963년 축구선수들의 주급상한선이 폐지되자, 최고의 선수들은 명품에 부을 돈이 충분해졌고, 스탠드의 패션도 빠르게 변해갔다.

  조 베이커가 회상했다. "홈경기가 끝나고 마블 홀에서 서포터들 몇몇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죠. 1965년 쯤이었을 겁니다. 그들 옷에 눈이 가더군요. 한 친구는 갈색 스웨이드 재킷, 검정 폴로 넥, 그리고 줄무늬가 들어간 바지, 흰 신발을 신고 있더군요. 조지 베스트가 입고 있던 거랑 똑같았어요, 잡지에서 보니까 더 후의 로저 달트리도 입고 있던데요. 처음으로 패션과 축구의 관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모드겠지요. 점점 더 눈에 띄더군요. 이후 관중들이 옷에 많은 돈을 들였지요. 조지 베스트의 영향이겠지요. 사람들이 전과 다르게 외양에 신경 많이 쓰기 시작했어요. 선수들과 팬들까지요."

  1960년대 말, 리치몬드에서 존 사이번의 아이비 샵이 '모드족'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고, 런던 내 다른 지역으로 점포를 늘려갔다. 스킨헤드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언론에서는 최근 축구 경기에서의 폭력 사태가 경기장 내 스킨헤드 수가 늘어가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보도하였다.

  아스날 팬이었던 데이브 스콰이어스는 소위 열혈 '모드족'이었다. 그는 하이버리에서 스킨헤드가 늘어난 것은 경기장 폭력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 패거리 서른 명 정도가 하이버리 역에서 모여서 경기장에 도착하면 두시 반 쯤 돼. 뉴스에서 우리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만 하니까 사람들 시선이 곱지 않아. 하이버리까지 걸어가면서 눈총 받고 뒷담도 들으면서 가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는 것 부정은 안해. 혼자 경기장에 가는 스킨헤드들도 있는데, 무리지어 다니지는 않는 애들이야. 이미지 관리하는 거지. 우리는 경기장에서 옷을 맞춰 입었어. DM 부츠를 신어야 하고, 좀 튀고 싶으면 체리 색 부츠를 신는 애들도 있었어. 레비 진이나 스타프레스트를 입고 브레이스 차고 다녔지. 그리고 보통은 복고풍 티셔츠를 입었지. 그 다음에 아스날 스카프를 손목에 감거나 목에 둘렀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축구장의 골칫덩이로 치부했지만,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우리팀 유니폼에 맞춰 입은 것 밖에 없어. 그것도 잘못된 짓이라고는 하지 않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이 문제였어. 특히 하이버리는 완전히 불변의 성역 같아가지고 영원히 회색지대로 남을 것만 같더라고. 우리가 처음으로 변화를 추구한 셈이야. 문제는 우리가 달랐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경기장에서 뭉쳐다녀서 좀 시끄러웠다는 거야. 경찰은 그래서 일만 터지면 우리만 끄집어내요. 허버트 채프먼 때나 경기 봤을 것 같은 사람들은 아스날 팬들 같게 입고 왔다는 이유 하나로 아무 처벌도 안 받아. 무채색이고 칙칙하다는 이유로!

  그라운드 안에서 우리가 제일 잘한 일은 응원을 독려한 거야. 사람들이 멈칫하면서도 결국 따라 부르거든. 그리고 1960년대
원조 스킨헤드 족 찰리 조지가 드디어 축구계에 등장하여 아스날에서 뛰게되었지. 그 이유 하나로 그는 나와 내 친구들의 아이콘이 되었어."

  찰리 조지의 등장은 클럽의 한 시대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클럽을 어린 팬들에게 세련되게 보이게 한 것은 아마 그의 영향 덕일 것이다. 60년대 아스날의 최고의 스타 두 명, 조지 이스트햄과 조 베이커는 50년대 축구의 틀에서 만들어진 사람들이었다. 하이버리의 관중들은 베이커에게 '웃고있는 기사[각주:1]'라는 별명을 붙여줬지만,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의 앞에 살짝 흘러내린 머리와, 로큰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몇몇 팬이 '엘비스'라고 불러주었다고 한다. 브릴크림을 쫙 바른 이스트햄은 1940년대 말의 데니스 콤프턴 시대를 연상케 했다. 조 베이커가 말했다. "찰리 조지가 나타나기 전에 우리 팀 선수들은 패션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선수들은 머리를 짧게 밀고, 사람들과 만날 일이 있어도 유행이 지난 양복을 입고 나갔어요. 제 앞머리 한 가닥이 내려온 것을 가지고 아스날 이사진 중 한 명이 뭐라 하기도 했어요. 반항적으로 보인다는 거에요. 제가 한창 뛰던 때는, 이정도 가지고는 관중들 사이에서 튀지도 않았는데요!"

  1969년에 데뷔하기 2년 전부터, <이슬링턴 가제트>에 실린 유소년 팀 사진에는 조지가 뒤에 서서 지루한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이미 아스날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는 난봉꾼으로 유명했다. 프랭크 맥린톡이 말했다. "찰리는 나를 '새끼'라든가 '병신'이라고 부르는데 망설임이 전혀 없었어요. 내가 주장이었는데 말이에요. 하이버리에서 그런 행동을 한 18살 선수는 전에 없었죠. 그게 아마, 특히 어린 10대 팬들이 그를 처음부터 사랑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데이브 스콰이어스는 찰리 조지의 스킨헤드 정신에 대해서 말했다. "찰리는 세상에 대고 엿먹으라고 중지를 든 셈이야. 문자 그대로나 은유적으로나.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하고 싶은대로 했지.  내가 홈 경기 끝나고 근처 술집에서 한 잔 드는데, 그가 어슬렁 들어오더라고. 60년대 말이라서 그가 아직 스킨헤드를 하고 있을 때였어. 오만방자하게 걸어오더라고. 그리고 소리를 질렀어. '좋아, 여기 있는 새끼 중 누가 술 살래?'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답했지. '오늘 그딴 식으로 공 찬 놈이 어디다 대고 새끼야?' 라고. 그러자 찰리가 씩 웃더니, 오늘 잘 못했다고 인정하더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돌렸지. 가식이나 점잔 빼는게 전혀 없는 사람이었어. 곤조가 있는 사람이었지. 찰리는 우리 일당들에게 개성을 가지라고 영향을 주었어. 만약 어떤 놈이 그를 친다면, 바로 한 방 되먹이는 그런 사람이었어. 멋질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팀에서 유일하게 튀는 남자였지, 정말로."

  어느 정도까지, 조지는 데이브 스콰이어스의 말에 동의하지만, 그가 스타일을 선도했다는 말에는 아니라고 한다. 도리어 그가 유행을 탄 것이라고 한다. "선수로서 저는 분명 특별했습니다. 조롱을 했지요. 가랑이 사이로 공을 차고, 하고 싶으면, 한 번 또 하고. 게임을 쇼처럼 만들 수 있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 그런 것이잖아요. 즐겁기 위해 입장료를 내는 것이지요, 그렇잖아요? 하지만 스킨헤드의 아이콘이라는 말은, 개소리에요. 제가 트렌드를 정한 것이 아니에요. 다들 하길래 머리를 밀었죠. 제가 어느날 갑자기 최초의 스킨헤드 출신 축구선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체리 색 부츠나 벤 셔먼[각주:2] 셔츠 같은 것은 입은 적도 없어요.

  그리고 제가 뭐 몸소 앞장서서 스킨헤드 족을 선도했다느니 이런 관점도 틀렸어요. 저를 화나게 하면 도로 윽박을 질렀죠. 제가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는 거친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해보려거나 무시하면 화가 날 뿐이죠."

  비록 찰리가 언급하기를 거절했지만, 데이브 스콰이어스는 조지가 데뷔한 그 순간부터, 노스 뱅크에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다고 한다. "처음부터 찰리는 관중들 앞에서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알았던 거야. 그래서 그냥 해야 했던대로, 그냥 하던대로 했던 거지. 자기가 골을 넣거나 동료가 득점하면 찰리는 우리에게 달려와. 처음부터 유대감이 있었어. 그가 아스날을 암흑기에서 구원했어. 중위권에서 헤매며 빌리 라이트의 헛짓거리 때문에 괴로웠던 그 시절, 갑자기 찰리가 나타나서 우리 모두를 흔들어 깨운거야."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웃고있는 기사. 17세기의 그림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본문으로]
  2. 영국의 의류 회사.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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