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태동기-자리 잡기

<데
일리 가제트>에 따르면, 울위치 아스날이 1913년 2월 20일에 '아베넬 가, 하이버리 힐, 길레스피 가(Gillespie Road)와 접한 런던 신학 대학 남쪽의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헌데 <아슬레틱 뉴스>는 3월의 어느날이라고 적어두었다. 저런 차이야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노리스가 1913-14 시즌 첫 경기까지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지역 건축인을 재촉하고 설계자를 위촉하는데 6개월여를 날렸다는 것이다. 2월 27일자 <데일리 가제트>는 '런던의 여러 명망있는 건축가들이 노리스의 제안을 거절했다.'라고 떡하니 적어두기까지 했다. 연고지 이전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스날을 경멸했던 헨리 월러가 펜촉을 날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사의 논조가 왜 저런지 알만하다. 다시 한번, 노리스는 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한다. '후즈 후' 1912년 판을 보면 그의 관심사 여럿 중 하나가 '건축 디자인'이라고 적혀있다. 부동산 중개인이자 부유한 정치인인 그는 1913년 초 바삐 움직인다.

  엔지니어이자 건축가였던 아키발드 레이치(Archibald Leitch)는 1900년대 초 작업장을 글래스고에서 리버풀로 옮겼다. 레이치는 대칭 구조로 지어진 몇 안되는 구장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올드 트래포트 건설을 총지휘한 사람이기도 했다. 참 노리스답게도, 그는 맨체스터의 시장이었던 제임스 휘팅과 친한 사이었다. 그들은 둘 다 프리메이슨이었는데, 마침 휘팅은 레이치와 친한 사이여서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 아마 1월 초에 레이치가 울위치 아스날의 새 경기장 건축 담당자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아스날 관련 서적들은 거의 A.G. 커니(A.G. Kearney)가 새 경기장 건축 6달 동안은 완전히 혼란이었다고 한 기록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커니는 레이치의 제 2조수로 선택되었는데, 1963년 레스터 시티전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노리스의 수완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했다. 커니는 <데일리 가제트>에 끊임없이 이전을 '저속한 계획'이라며 녹음기를 틀어놓은 헨리 월러의 가차없는 공세를 슬쩍 언급했다. 월러가 기어이 공사를 막기 한 발 직전까지 왔다고 한다. "노리스 씨가 온갖 애를 쓰셨기에 제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의문스럽게도, 그때부터 지역 신문에 월러의 기사가 자취를 감추었다. '신학 대학 쪽 운동장에 높은 벽돌 장벽'이 건축된다고 문제가 일자, 노리스는 커니에게 한물 간 할러웨이 로드의 교구회 사람들은 무시하라고 하였다. 커니는 교회 직원들이 '옹벽(retaining wall)'과 '착수금(retaining fee)'의 차이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에 그가 한 짓을 보면 낡은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은 노리스에게 있어 아무런 제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노리스는 또한 길레스피 로드 지하철 역 반대편에 있는 집 두채를 구입해 커니에게 부셔버리고 그 자리에 경기장 입구를 지으라고 지시했다. 커니는 "저를 제외한 모두 경기장이 어느 세월에 완성될지 회의적이었고 우울해 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클럽은 여러 신문사에 광고를 게제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경기장 이름을 공모했다. 아마 이것이 기록상으로는 최초로 서포터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눈 순간이었을 것이다. 캠든 타운(Camden Town)에 살던 W.다익스(W. Dykes)씨는 (아베넬 가와 하이버리의 합성어인) 아베스버리 파크(Avesbury Park)가 딱이라고 하셨다. 이슬링턴에서 온 H.W. 쿠퍼(H.W. Cooper)씨는 총잡이(The Gunners)들이 뛰는 곳이라면 '포트리스'(The Fortress)가 딱이라고 했다. 익명의 한 서포터는 '건 파크'(The Gun Park)가 적절하지 않겠냐고 했다. 마치 전통처럼 늘 그래왔듯이 구단은 팬들의 의견을 깡그리 묵살하고 '하이버리 스타디움'(Highbury Stadium)이라고 명명한다.

  93년이 지나서 이 혼잡한 건설 과정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제시된다. 1990년에 필자는 이슬링턴 가제트에 경기장 건축에 관한 자료를 찾는 광고를 싣고, 얼마 후 데이비드 예이츠(David Yates) 씨를 소개받는다. 그의 시력과 청력은 많이 떨어졌지만 아드님인 다니엘 예이츠(Daniel Yates)씨의 도움으로 아직 날카롭게 살아있는 기억의 자락을 얻을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아스날의 첫 경기를 앞둔 몇 달동안 모든 건축가들이 하이버리에 모여 시간 안에 완공하기 위에 최선을 다했어. 노리스 씨는 원한다면 밖에서 충분히 사람들을 끌어올수 있었지만, 최대한 지역 주민들을 참여시키려고 애쓰셨지. 우리가 많이 참가할수록, 팀에 대한 자부심이 커질거라 보신 거야. 나는 학교를 막 나온 애송이여서 몸을 굴리는 일밖에 없었어. 땅이 완전 풀숲과 나무와 웅덩이밖에 없는 곳이라서 평평히 다져야 했지.

  당시에는 굴삭기를 끌어올 수가 없어서, 손으로 줍고 삽으로 파고 수레로 나르고 하는 수밖에 없었어. 아마 한쪽 끝이 다른 쪽보다 높았었던것 같았는데(대학 쪽 땅이 길레스피 로드 쪽보다 6 피트 높았다고 한다.), 반대편에 방죽을 깔아가면서 높이 맞추는게 난제였던거 같아. 우리는 다들 동지였어. 우리 함께 모여가지고, 노래를 부르면서 노동의 고통을 덜었지. 일이 오래 걸려서 윗분들이 시간을 못 맞출까봐 애를 태웠지. 그래도 아침에 오면 늘 죽하고 따뜻한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점심에는 스프와 빵을 챙겨온 도시락과 같이 먹었지. 노동 조건은 되게 좋았던 거 같아, 당시 다른 노가다에 비하면 퍽 좋았지. 휴식 시간에는 전쟁의 위험이라든가, 그리고 투표하고 싶어하는 여자들…그래 여성 참정권론자들같은, 하여간 그런 세상사에 대해 떠들곤 했지. 나 같이 어린 놈들은 그 여자들이 왜 그랬는지 잘 몰랐었어!

  선수들도 우리를 좀 도와주었어. 작 러더포드와 친구 한 명이 나무 다듬는 일을 도와주었지. 다른 선수들은 스탠드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어. 세상 참 많이 변했지! 목수들이 입출구를 만들고, 스피온 콥까지 올라가는 길이랑 통로 세우는데 바로 착수했어. 경기날이 다가오자 수레와 트럭들이 더 자주 와서 재료를 쏟아부었어. 피치를 평평하게 하는 작업이 끝났고 스피온 콥을 올릴 차례였지. 거기가 나중에 웨스트 스탠드가 된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콘크리트나 뭐 비스무리한 것으로 덮은 것이 아니야. 그냥 피카델리 역 만드려고 땅을 팠을때 흙이랑 섞은 진흙을 굳혀가지고 만들었지. 그것을 압축시키려고 우리 모두가 계속 밟아댔어. 경기장이 완성된게 첫경기 아침날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선수들이 물 마실 때 필요한 상수도 설치를 못한거야. 음료같은 게 하나도 없었어. 락커룸도 허했고. '완전 프레드 카노 쇼 같아.'하면서 우리 모두 수군거렸지. 프레드 카노는 찰리 채플린이 있었던 극단 주인이었어. 우리는 모두 결과물이 얼마나 급조됐고 우스운지 깔깔댔어. 노리스는 그런데 오후에 기필코 경기를 치르더라고. 어떻게 했는지야 모르는 일이지."

  경기 며칠전쯤 레이치는 거의 확실히 제 시간에 경기장을 완성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노리스의 문책을 두려워해 도주했다. 커니 혼자 남겨져 독박을 쓸 지경이었는데, 마지막 며칠 간의 건축팀의 초인적인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노리스는 경기시작 2시간 전에 스타디움 근처의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대접했다. 지역 인쇄소에는 경기에 맞춰 만 권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인쇄기를 쉼없이 돌렸다. 이 첫번째 공식 프로그램에서, 편집자가 아직 덜 완성된 이 구장을 '대런던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이라고 묘사한다. 웨스트 엔드에서 15분 거리, 마치 순례자들처럼 구장을 찾아올 1시간 거리의 울위치의 극성팬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허풍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면한 과제는 1913-14 시즌 2부리그 첫 경기인 레스터 포스(Leicester Fosse)[각주:1]전, 과연 아스날은 기대에 부합할 수 있을까?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현재 리그 1에 있는 레스터 시티(Leicester City)의 전신.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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