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컬트 히어로: 페리 그루브스

페리 그루브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얼마나 많은 팬들이 내 앞에 서가지고 얼마나 나를 좋아했는지 말하는데 참 웃겨. 매주마다 관중 40,000명이 있으면, 그 중 반절 정도는 나를 '개새끼'라고 불렀을 텐데 말야." 필자가 '컬트 히어로'라는 단어를 잘못 쓴건지 물어본 후, 그는 그의 하이버리에서의 6년간의 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루브스는 조지 그레이엄이 처음으로 영입한 선수였다. 1986년 9월에 영입되었다.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5,000 파운드로 사왔는데, 그는 가면 갈 수록 하이버리에서 존재감이 희박해졌다. "콜체스터에서는 내가 최고였지만 하이버리에서는 그냥 빨간머리 이상한 놈이었어."

  그가 하이버리에 온 과정이 초창기 조지 그레이엄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해준다. 극도의 절약과 모든 것을 그의 방식대로 해야한다는 독단적인 시각. 그루브스가 회상했다. "사실 크리스탈 팰리스도 나를 노리고 있었어. 많이들 내가 셀허스트 파크로 가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아스날 같은 클럽이 다가오면 외면하기 너무 아깝잖아. 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고 하이버리에 갔을 때, 조지 그레이엄의 사무실로 데려가더라구. 교장선생님 말 듣는 학생이 된 기분이더라. 일단 의자만 해도 그 사람 것이 더 컸으니까. 계약 조건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계약서 여기있으니까, 서명해라.' 같은 분위기였지. 하라면 해야지. 조지는 늘 일을 그런 식으로 했어. 돈은 별 문제가 아니었어. 뭐 그렇다고 많이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게 바로 선수들을 대하는 조지의 방식이었고, 굉장히 성공적이었지! 스티브 불드나 리 딕슨 같이 하부리그에서 새로 들어온 선수들이 모두 조지에게 감사했고,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할 거야. 요즘은 그런 식으로 강팀을 만들 수가 없지."

  처음에 팀메이트들은 그루브스의 배경에 대해 무지했지만, 그는 금새 클럽에서 유명해졌다. "첫 번째 훈련을 잊을 수가 없어. M25 도로를 달려내려와서 스팀을 쫙 뿜어내는 빨간색 MGBGT를 타고 왔어. BMW나 메르세데스를 모는 비브 앤더슨이나 케니 샌섬 같은 사람들이 나를 슥 쳐다보더라고. 표정이 딱 '이 자식은 또 누구야?'였다니까. 당시 아스날은 정말 좋았어. 조지 그레이엄은 트레이닝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이거든. 그레이엄이 내정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야. 진짜 정체는 카다피라고 하는 선수들도 있었거든. 하지만 훈련 하나는 그 시대에서 10년은 앞서 있었어. 슈팅과 패스를 알려줄 때 늘 완벽했지. 헤딩은 선수단 누구보다도 잘했고. 걸어가면서 미친 닭 흉내를 내면서 쪼는 시늉을 하기도 했어.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고 지금, 너희들이 하는 꼴이 이 모양이야.'라면서. 가끔은 미니 경기에 직접 참가해서, 그의 팀이 질 때까지 훈련을 했지. 스티브 불드, 토니 아담스, 리 딕슨, 나이젤 윈터번을 데리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만드는 연습을 할 때 진짜 로프를 사용했다는 소문이 있어. 사실 개소리야. 그냥 '로프가 있다고 상상해봐'라고 말을 했을 뿐이지. 그냥 '재미 없는 아스날'이라는 꼬리표를 영원히 떼고 싶지 않았던 신문기자들이 지어낸 이야기야."

  1986년 10월 왓포드를 상대로 처음으로 홈경기 전체를 치르고 데뷔골을 넣은 후("난 오른쪽 윙어였는데 조지는 왼쪽에서 뛰라고 했지. 난 따지지 않았어."), 그루브스는 조금 더 자주 출장하게 되었고 종종 중요한 골을 넣었다. 그가 하이버리에서 가장 사랑 받았다고 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폴 머슨(Paul Merson)이나 데이비드 로캐슬 같은 선수에 비하면 그는 '블루 칼라'였다. 빨간 곱슬 머리와, 쫙 달라붙는 바지 때문에 여러 별명이 생겼다. '틴틴'
[각주:1]이라든가, '킨녹', '빨간머리 얼간이', '당근 대가리'같은 것도 있었다. 그는 인정했다. "내가 아스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는 아니잖아. 내 대접을 가지고 뭐하 할 수는 없지. 그리고 애초에 내 삼촌 빅이 뛴 적이 있으니까, 그것도 좀 도움이 되었고. 하지만 관중들은 내가 똥줄 빠지게 뛴다는 것과 얼마나 구린 경기를 해도 결코 숨지는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경기장에서 공 안 받을려고 이상한 곳에 서는 애들도 있거든. 난 그런 적 없어, 종종 멍청한 짓이기도 했지만."

  아스날에서 그루브스 최고의 순간(1987년 리틀우즈 컵 결승에서 찰리 니콜라스의 결승골을 만들어준 것)은, 니콜라스가 같은 자리를 두고 다투던 라이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그루브스가 말했다. "나랑 찰리랑 딱히 투닥거리를 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 긴장감 같은 것은 좀 있었지. 그의 눈으로 보면 나는 대체자잖아, 그리고 기술만 놓고 보면 내가 한 수 아래고. 다 그런 거야. 직장동료랑 다 친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하지만 마치 윌리 영처럼, 피치 안보다는 밖에서의 행동이 그의 모습을 굳혔다. "아니 꼭 이상한 일만 겪더라구. 쉐필드 웬즈데이랑 할 때 나이젤 윈터번이 결승골을 넣은 적이 있었는데, 아스날 벤치에서 모두 뛰쳐 나와서 앞으로 달려가서 축하를 했는데, 나 혼자만 위로 뛰어 머리를 부딛혔지. 거의 기절해가지고 교체선수로 나오지 못했어. 조지는 얹짢아했고. 1989년에 리버풀하고 한 홈경기에서는 세인트 존 병원 응급팀에서 나를 미는 의자에 앉혀서 끌고 가는데, 터치라인 쯤에서 너머져가지고 리버풀 애들 쪽으로 그냥 얼굴로 떨어진거야. 그냥 완전 불쌍하게 쳐다보더라! 그래서 나는 '아 씨발 들것이나 가져와요.'라고 했지. 아스날 벤치 쪽으로 왔더니 모두 식은땀을 흘리더라. 얼굴에 긁힌 자국이 잔뜩이었으니까. 그리고 드레싱 룸까지 가서도 결국 나를 또 떨구더라. 아스날 팬들이 그걸 어찌어찌해서 들었는지,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에 가사를 바꾸어 페리 그루브스 월드라는 응원가를 만들었어. 반쯤은 칭찬이고 반쯤은 놀리는 거 같아. 누가 생각해낸지는 몰라도 꽤 괜찮지. 아직도 경기가 소강상태면 그 노래를 부르더라고. 내 아들이랑 같이 경기장에 같는데, 관중들이 그 노래를 불러주니 어찌 기분이 좋던지. 내가 뛰던 때 나보다 잘난 선수가 얼마나 많았는데, 정말 영광이지."

  아스날 팬인 닉 제임스가 말했다. "1992년까지, 그러니까 비교적 최근까지 뛰었던 선수였지만 완전 다른 시대에서 온 사람 같았어. 발은 빨랐지만 기술은 많이 모자랐지. 그레이엄 때 선수들이 대개 그랬지만. 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선수들은 다 개성이 확연했어. 요즘은 모두 똑같고 준비된 운동 선수들이잖아. 페리 그루브스는 땅딸막하고, 축 늘어진 허벅지에다가, 술도 잘만 마셨지. 다들 알고 있었어. 요즘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을 가지고 '컬트 히어로'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이유야. 요즘 선수들은 돈도 너무 잘 벌고, 몸도 너무 좋고, 완전 수도승처럼 살잖아. 개성이 살아남을 여지가 없지. 괴짜스러운 면모들이 없어. 80년대 말만 해도, 그런 선수들을 팬진에서 까고, 경기 끝나면 술집에서 만날 수도 있었거든. 이젠 아니야. 페리 그루브스는 그런 사라져가는 부류였지."

  그루브스는 아직도 클럽을 깊이 사랑한다. "빨간색 유니폼, 전통, 마블 홀, 그리고 프로페셔널리즘. 이 모든 곳이 다 놀라워. 내가 뭘 하든간에, 내가 아스날을 뛰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다른 선수들이 그렇듯이, 한 번 구너면 영원히 구너야. 아까 말했다시피 내 아들이 나랑 같이 경기보러 오거든. 내 아들의 아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내가 하이버리에 올 수 있다는 것을 특권처럼 자랑스러워 해."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영국 TV 시리즈 '썬더버드'에 등장한 캐릭터. 인간 배우가 아닌 마리오네트로 표현하였다. 빨간 곱슬 머리의 소유자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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