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90년대-사요나라 노스 뱅크

1991년 9월,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이적해 온 이안 라이트의 영향력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안부차 한 전화에서 아스날의 데이비드 데인은 팰리스의 회장인 론 노즈에게 공격스 마크 브라이트를 영입할 수 있는지 물었다. 노즈는 그는 안 된다고 했지만, 2분쯤 지나 대화는 방향을 틀어 기분이 좋아진 노즈 회장은 브라이트의 파트너인 이안 라이트를 팔기로 하였다. 아스날은 2백 5십만 파운드에 그를 영입하면서 클럽 최다이적료지출 기록을 갱신하였다. 그가 처음 왔을 때 회의론이 있었다. 몇몇은 그가 불필요하며 주전자리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른 '전술 전문가'들은 그를 최전방에 세우는 대신 중원이나 윙에 배치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심각하게 그른 판단이었다.

  라이트가 팰리스를 떠나고 싶어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노즈가 TV 다큐멘터리에 나와 흑인 선수들은 기백이 부족하고 냉대에 약하다고 말하였다. 라이트는 이 폭언 때문에 마음을 굳혔을 것이지만, 라이트는 이미 이전부터 더 넓은 무대로 나가고 싶어했다. 이안 라이트는 팰리스에게 너무 거대한 존재였다. 노즈가 자신들이 빅클럽이 될 것이가고 반박해봤자, 팰리스는 팬층이 적은 팀이었기에 셀허스트 파크는 반쯤 비어 있었다. 따라서 조지 그레이엄이 그를 데려왔고,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큰 무대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아스날이 제게 기회를 주었구요."

  라이트가 하이버리에 도착했을 때 어떤 불타는 야망을 품고 있었는지 알려면, 그의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는 프로가 되기에는 저체중에 얇은 몸이라 몸 뉠 곳이 없어보이는 선수였다. 자동차 벌금을 안 낸 죄로 쉘름스포드에 7일간 구류되기도 하였고, 자동차는 차량 조사도, 세금도, 보험도 들지 않은 불량배나 마찬가지였다. 21살의 그는 과보호나 포장된 축구 스타가 아니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린위치 구청에서 주는 일을 했다.
쓰레기를 헤집으며 터널을 수리하거나 짓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린위치나 흑인 팀인 텐 엠 비 같은 아마추어 팀을 전전하였다. 마침내 22살에 팰리스와 계약하여 프로 선수가 되었고, 컬트 히어로가 되었다. 그가 하이버리에 왔을 때 28살이었고, 놓친 시간을 메꿀만한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스날 팬인 조지 타우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바로 이안 라이트의 마법에 빠졌어요. 우리의 이상적인 아스날 선수상 그 이상이었으니까요. 열정, 강렬함, 그리고 분노. 제가 만약에 아스날 셔츠를 입으면 하고 싶은 그런 것들이요."

  라이트는 아스날이 당시 가졌던 모든 선수 중 슈퍼스타에 가장 가까운 선수였다. 종종 '라이트 효과'의 피해자로 거론되는 알란 스미스가 그 효과를 설명했다. "이안은 도착하자마자 라커룸의 영혼이 되었습니다. 경기장에서도 개성 넘치는 정말 유쾌한 남자였습니다. 늘 공을 달라고 했고, 솔직히 우리도 그의 장점에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늘 그에게 공을 주었고, 이때문에 팀이 그에게 치중되고 일차원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제 경기력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원래 말을 넣었지만, 그 이후 골이 말라버렸습니다. 제 강점은 공을 지키면서 다른 선수들이 전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지만, 이안은 늘 공을 당장 달라고 했기에 저는 점점 공을 가지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아마 몇몇 선수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안에게만 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런 발상은 팀에게 좋지 않습니다. 이안 효과는 다음 시즌까지는 크게 발휘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시즌 말엽에는 팀이 제가 봤던 것 중 가장 공격적인 축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2년 후, 아스날을 보는 것이 곧 이안을 보는 일이 되버렸습니다."

  동료들은 라이트가 골을 넣기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앤더스 림파가 회상했다. "피치 밖에서 이안은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피치 안에서 그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팀보다 거대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그에게 너무 의존했기 때문이죠.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스티브 모로우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걸어다니면서, 말도 하고, 욕도 하는 득점 기계. 그게 바로 이안 라이트입니다." 1991-92 시즌 3월, 포병대는 팬들에게 골폭풍을 선사했다. 쉐필드 웬즈데이를 7-1로 박살낸 것이 개중 최고였다. "전반전까지 1-1로 비기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기가 막힌 결과였죠."라고 림파는 말했다. 알란 스미스는 라이트의 친정인 크리스탈 팰리스를 4-1로 박살낸 것이 그 시즌 가장 완벽한 팀플레이라고 말한다. 아스날 팬 해리 존스에게는, 리버풀을 4-0으로 박살낸 것은 문자 그대로 눈이 휘둥그래지는 점수였다고 한다.

  "라이트가 림파의 멋진 패스를 받아가지고, 마이크 후퍼 옆으로 살짝 차넣어 선취골을 넣었어. 나는 20여년간 노스 뱅크 단골이어서 시즌 말엽의 홈경기들은 특별했지. 구단 돌아가는 일이 못마땅했거든. 다행히도, 팀은 왼쪽 골망, 가운데 골망, 오른쪽 골망을 다 흔들었어. 라이티가 특히 많이 했구. 그가 골을 넣으면 우리는 모두 미쳐버리는 거야. 잠시 눈을 돌리고 있어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영문을 모르다가, 경기장 쪽을 돌아보니 라이트가 관중들 쪽에 안기려 달려들더라고. '좋아!'라고 그가 함성을 지르며 우리에게 안기다가 내 한쪽 눈을 찔렀어. 모두들 그 몇 초를 즐기며 그를 껴안는 순간, 나는 한 쪽 눈을 감고 얼간이처럼 서있었어. 부끄러운 노릇이야. 하이버리에 그런 남자는 없었어. 터치라인과 입석의 거리가 바로 선수들과 팬들의 거리였으니까. 그 선을 넘으면 칸토나처럼 위험을 초래하거나, 지나치게 격렬한 축하가 되곤 하지. 라이티는 늘 후회할 일 없이 적당히 라인을 넘어왔어. 이것이 왜 특히 더 특별하냐면, 이 모든 일은 노스 뱅크의 마지막 나날에 일어난 거니까."

  라이트가 아스날 이적 초기에 이룬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 하이버리에서 열린 사우스햄튼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기록한 해트트릭일 것이다. 감회가 교차하는 가운데, 팬들은 한 시대에 종막에 경의를 표하러 몰려들었고, 노스 뱅크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팬들은 드라마가 필요했고, 이안 라이트는 득점왕을 노리고 있었다. 경기는 그 요구에 부응했다.

  "노스 뱅크를 결코 가져갈 수 없어"라는 노래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이안 라이트, 라이트, 라이트'와 그의 놀라운 활약을 위해 울부짖었다. 언론에서는 라이트와 개리 리네커의 득점왕 경쟁을 조명했다. 경기 종료 5분 전, 리네커가 올드 트래포트에서의 한 방으로 이 대결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아스날은 이때까지 스미스와 캠벨, 그리고 라이트의 페널티로 앞서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5분, 사우스햄튼은 지쳤고 라이트가 주인공이 되었다. 해리 존스가 이야기했다. "관중들은 그날 내내 슬퍼하며 낡은 테라스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경기 전,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농성 시위를 벌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술에 떡이 된 노인네 하나는 아예 불도저 앞에 드러누워서 막아보자고 하던데. '나를 쳐죽여도 신경쓸 거 없어. 어쨌거나 그러면 못 밀어버릴테니까.' 다 헛소리였지만, 이게 모두의 진심이었어. 슬픈 날이었거든. 그리고 스탠드에서 문득 생각했는데, 오늘은 축하해야 할 날이 되야하지 않을가 싶은 거야. 내가 지금까지 여기서 보낸 즐거운 순간들을 기리는 날. 그때 라이트가 몰아치기 시작했어. 득점왕을 놓칠지도 몰라 화가 난게야. 우리쪽 진영으로 돌아와 시먼이 던져주는 공을 받았어. 세인츠의 중원을 가로질러가, 테리 헐록을 속여넘기고 골키퍼 팀 플라워스가 지키는 골대에 공을 박아넣었지. 그 장면이 놀라운 장면이라면, 30초 후의 장면은 아주 질질 쌀만한 장면이지. 케빈 캠벨이 라이트에게 공을 넘겼어. 해트트릭을 때려박았고, 캠벨이 그를 관중들 앞에서 들쳐업었지. 완전 미쳤어. 내가 본 축구 중 최고였어. 시사하는 바가 많잖아. 내 주위의 남정네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어. 다들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니까. 라이트가 늘 적시에 적당한 일을 볼였던 거지. 그리고 그 5월의 주말에서 우리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 하나 선사해 준 것이고. 그 이후 그가 어찌 됐던 간에 그는 나의 영웅이야. 그때 내가 마흔먹은 중늙은이였다니까! 노스 뱅크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작별인사였지.

  라이트의 골 덕에 난잡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 정리된 거야. 웃기게도 경기 끝나고 불도저 앞에서 드러눕겠다고 으름장을 늘어놓았던 노인네를 봤어. 꽤 기분이 좋아 보였고 이번에는 자살을 안하기로 결정했다나봐. 그리고 대부분의 팬들이 집으로 떠났지. 몇몇은 '노스 뱅크를 결코 가져갈 수 없어'라고 노래를 부르며 항의를 했지만 알맹이가 없었지. 경찰들이 그들을 해산시키려고 했고. 나를 포함해서 몇몇은 근처에서 잠시 머물렀어. 여기에서 보낸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하이버리 반에 가서 술에 잔뜩 취해서 다 잊어버리기로 했지. 술이란게 참 좋지."

  페리 그루브스도 그날을 기억한다. "선수들에게도 특별한 일이었어.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노스 뱅크 쪽으로 달려가서 응원가를 듣는 법이거든. 당시 이안 라이트가 나이키 광고 모델이었을 때였어. 이 경기의 몇몇 장면이 광고 안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놀라운 일이지. 페널티를 넣고 나서, 노스 뱅크 쪽으로 달려가서 그의 신발을 툭툭 쳤어. 그의 광고 포스터마다 '사요나라 리네커상'이라고 적혀있었지. 개리가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었거든. 또 광고를 보면 이제 이안이 잉글랜드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지. 그래서 그날 개리를 제치고 득점왕이 됐다는게 아이러니한 일이야. 하지만 이안은 그런 사람이었어. 극적인 순간을 아는 사람이었고, 관중들과 어울리는 법을 잘 알았지. 그리고 나이키 광고가 방송되기 시작했어. 루 리드의 'Walk on the Wild Side'에 맞춰 그가 골을 넣는 장면이었지. 멋진 광고였어."

  노스 뱅크 최후의 나날들은 여러모로 기억할만 하다. 관중들은 그 날 라이트의 모습에 도취되었다. 그리고 그때가 마지막도 아니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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