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90년대-옆집 골리기(2)

1992년 5월 말, 데이비드 카슨과 그의 세 친구들은 카슨의 아파트에서 사신 복장을 하고 하이버리까지 걸어갔다. 그들이 스타디움에 도착했을 때, 이미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노스 뱅크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전 열 시, 다섯 대의 불도저가 노스 뱅크를 포위하였다. 데이비드 카슨이 말했다. "우리 모두 열려있는 게이트 사이로 불도저가 노스 뱅크를 박살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불도저가 노스 뱅크를 지탱하던 기둥을 무너지자 구조물 전체가 무너졌습니다. 지붕은 제 무게를 못 이기고 알아서 부서져 내렸구요. 꽤 빨리 트럭들이 들어와 잔해를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끔찍한 광경이었어요. 저는 여전히 잠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신 옷을 갈아입지는 않았어요. 전 그냥 죽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사신 옷을 입고 가 스탠드의 죽음에 대해서 시위를 했다지만, 스탠드가 박살나는 광경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해 여름, 기념품 사냥꾼들이 몇몇 우호적인 철거 전문가의 도움으로 구 스탠드의 조각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데이비드 카슨은 노스 뱅크의 철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정원 한 기슭에 자랑스레 서 있었다. "며칠 후 경기장에 다시 돌아갔는데 경비가 느슨하더라구요. 트럭들이 왔다갔다 해야하니까요. 잡동사니들이 널려있었는데 그중 철책 조각들이 있는 거에요. 그 중 하나를 들고 오려는데 더럽게 무겁데요. 갑자기 인부 하나가 이 쪽으로 오더니 대체 뭔 짓거리냐고 물어보더라구요. 대답을 하니까 불쾌해 보였어요. 자기 상사가 보면 짤리니까 안 된다고, 그리고 내가 공사장에 있는게 불법은 그렇다 쳐도 일단 위험하다고 하대요. 그때 그가 갑자기 보스가 오늘 출근 안 한다는 것을 기억해냈어요. 그래서 우리 둘이 한 쪽으로 이걸 치웠어요. 그리고 전 집에 가서 밴을 끌고 왔구요. 그래서 같이 철책을 실었어요. 저만 그런게 아니래요. 몇몇 팬들은 아예 인부들에게 뒷돈을 주고 콘크리트 조각들을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전 노스 뱅크 기념물을 집에 장식해둔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은 없어요. 도굴꾼이 된 것처럼 약간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팔아먹을 것도 아닌데 괜찮지 않나요? 종종 그 철책 옆에 서서 두들기곤 하죠. 입석에서 경기 보던 날들의 추억을 떠올리면서요. 물론 제가 한 말을 읽는 사람들은 제가 좀 괴짜라고 생각할 것도 알아요."

  2달 후, 새 스탠드 골격과 하수시설이 완료되었고, 구단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탠드가 지어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금새 기둥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공사 과정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노스 뱅크의 디자인을 놓고 지독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1991년 3월, 남쪽 스탠드의 재건축을 맡았던 AD 컨스트럭션)이 이번에는 노스 뱅크의 디자인을 제시하였다. 12,750개의 좌석으로 이루어진 스탠드가 이슬링턴 주민들에게 공개되었다.

  래리 파커는 그 디자인을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저는 아스날 팬이자 이슬링턴 주민이었는데, 보자마자 진저리가 처졌습니다. 찰스 왕자라면 그냥 '기괴한 흉물'[각주:1]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할 거에요. 일단 건물 높이가 문제였어요. 지붕틀가지 포함하면 30미터는 된다는 소리였어요. 원래 노스 뱅크의 천장이 15미터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건물의 조명상태가 심각하게 달라질 거에요. 게다가 다른 스탠드와 전혀 안 어울리는 재료를 사용했어요. 구석은 그냥 다 트여가지고 완전 거대한 흉물이 될뻔 했다니까요. 상상해봐요. 축구계에서 다들 부러워하는 아르데코 풍 스탠드에 이상한 스탠드 하나 끼어있는 거요. 게다가 마침 아스날 팬들이 새 스탠드 짓겠답시고 자금 조달하는 방식에 심사가 뒤틀릴 지경이었거든요. 그래서 '약정제를 막자' 모임에 이어 북쪽 스탠드 디자인 가지고도 싸우게 되었죠. 우리는 지역 주민들과 '다른 아스날 스탠드 디자인을 위한 모임'(GAAS)을 설립하였습니다. GAAS와 IASA에 동시에 가입해있던 회원들이 많았죠. 동시에 두 개 전선에서 싸운 겁니다. 클럽은 우리의 반대에 꽤 놀란 모양이었습니다. 늘 이사진 측에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90년대 초에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듣는 체라도 해야했죠."

  11월 5일, 이슬링턴 구청에서 폭풍 같은 회의를 거치고, 의원들은 클럽에게 이스트 스탠드와 웨스트 스탠드에 어울리는 새로운 건물 디자인을 가져오라고 지시하였다. 결국 노웨스트 홀스트가 이끄는 롭 파트너쉽의 건축가들과(이 중에는 이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디자인 팀을 이끌었던 롭 셔드도 있었다.) 얀 보브로프스키 사의 기술자들이 새 디자인을 들고왔다. AD사의 원래 계획보다 4미터가 작고, 최신 자재를 사용하되 이스트 스탠드와 웨스트 스탠드와 훨씬 잘 어울렸다.

  래리 파커가 회상했다. "GAAS는 롭 파트너쉽에 제안을 몇 가지 했고 성과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제안이 클럽의 고압적인 자세로부터 지켜지도록, 또 의회에서 원안을 폐기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새 스탠드의 높이가 낮아졌습니다. 또한 우리는 롭 파트너쉽에 스탠드가 아베넬 가에서 멀리 떨어져야하고, 스탠드 내에 탁아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설계를 맡았던 폴 셔드 씨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스트 스탠드와 웨스트 스탠드도 디자인한 클라우드 페리어가 신봉한 30년대 아르 데코 스타일과, 최신 제재를 사용한 첨단 디자인이 절묘하게 어울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좌우 창문의 패닝 효과도 멋졌습니다. 페리어의 신념을 그대로 따라간 거니까요. 아스날은 전통과 역사의 팀입니다. 그것들을 잃으면 우리의 영혼도 사라지는 겁니다.

  찰스 톰슨은 GAAS 대사 역을 잘 수행해주었습니다. 매우 적절한 논평을 했습니다. '테일러 레포트에 따르면 전좌석제 스탠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스탠드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라구요. 약정제와 북쪽 스탠드 계획은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클럽이 만약 약정제에 성공했다면 팬들과 아무 상의 없이 AD사의 계획을 밀어붙였겠지요. IASA처럼, 우리도 그들의 손을 묶었습니다. 클럽이 이 시기를 겪으며 무언가를 배웠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팬들과 대화하는 법두요. 하지만 정말 배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스날이 세 번 만에 마침내 이슬링턴 구청에서 허가를 받아내자 이사진이 안도하는게 눈에 띌 지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애초에 충분히 대화를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요."

  아스날의 '자살골'은 새 스탠드를 가지고 지역 주민들에게 반감을 산 것만이 아니었다. 구단은 공사중인 스탠드를 가리기 위해 노스 뱅크 크기만한 벽화를 걸어놓았다. 거기에는 하이버리 경기장을 바라보는 관중들이 그려져있었다. 문제는 그 얼굴들 중 흑인과 황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폴 쉬헌이 말했다. "제가 딱히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클럽의 과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걸 그린 사람이 검은색하고 노란색이 시간이 지나가니 사라져버렸다고 어디서 읽은 것도 같은데,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스날은 늘 코스모폴리탄 클럽이자 흑인 선수들을 육성하는 클럽을 자처해왔습니다. 굳이 그걸 논하지 않더라도 어설픈 실수이긴 합니다. 약간만 생각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팬의 입장에서 그 시즌은 이상했어요. 스탠드가 세 개만 있는 경기장과, 최후의 보루 클록 엔드로 이주하는 것 모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해 우리가 컵 대회에서 잘했다는 것이 좀 신기하긴 합니다. 그러니까 하이버리 밖에서요. 그리고 처음으로 '하이버리 도서관'이라고 놀림받기 시작했구요. 원정팬들은 그림 속의 관중들이 실제 관중들보다 더 시끄럽다고 놀리더군요. 문제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봤자 경기장 밖으로 새어나갔다는 거에요. 하지만 하이버리가 그 몇 년간 조용해진 더 중요한 까닭은 다 알다시피 다른 데 있습니다. 어쨌거나 옌센과 힐리어의 슈팅은 벽화가 다시 튕겨주었으니, 장점이 있긴 있었네요."

  알란 스미스도 그 수상한 벽화에 대해 언급했다. "벽화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다섯 경기동안 벽화 쪽 스탠드에서 득점을 못 하다가, 여섯번째였던 맨체스터 시티 전에서 이안 라이트가 헤딩으로 겨우 넣었죠. 물론 저주 따위야 없었지만 노스 뱅크가 응원을 안 하고 있다는게 참 이상해요. 그 쪽에서 골을 못 넣은 건 심리적인 문제였다는 거죠. 하이버리에서 뛰면 결코 조용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 걸려있는 것보단 벽화라도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다른 경기장에서 터치 라인 뒤쪽이 공사판인걸 보면 깜짝깜짝 놀라거든요. 어쨌거나 벽화가 있으면 좀 더 경기장스러우니까요. 그해 우리는 리그에서 부진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노스 뱅크가 없는 탓으로 돌릴 순 없지요. 그저 팀이 침체기에 빠져 약해진 것입니다. 특히 1991년에 우승했던 팀하고 비교했을 때요."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1. 찰스 왕자가 트라팔가 스퀘어에 지어질 내셔널 갤러리를 이렇게 불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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