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버트 채프먼의 혜안을 평가하려면 일단 1930년대 축구의 위상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 축구에서는 흔한 대중매체의 간섭이 그 시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모터사이클 경주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었고, 큰 대회에는 30,000명 이상의 관중을 모았다. 채프먼은 모터사이클 대회를 <익스프레스>에 쓴 칼럽에서 '시끄럽고 불편한 행사'라며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당시 나라에서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소유한 사람이 인구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았을 터인데도, 속도 경쟁과 기계 장치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경견도 비슷하게 인기가 있어서, 화이트 시티의 경주에서는 무려 50,000명이 모였다. 채프먼은 장기적으로 축구가 이들 모두를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지금 당장은 관중들을 매료시킬 상품이 필요했다는 것이 알았다. FA가 무기한으로 노리스를 축구계에서 추방한 이후, 채프먼은 헨리 노리스 경의 피곤한 간섭 없이 마음대로 '드림 팀'을 짤 수 있었다.

  <데일리 메일>이 노리스가 찰리 부찬을 남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불법으로 돈을 건냈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연재하자, 축구협회 청문회는 노리스를 표적으로 삼았다. 부찬과 노리스 둘 다 끈덕지게 부인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아스날 팀 버스를 매각하고 받은 돈(125 파운드)이 노리스 부인의 은행 계좌에 들어가 있었고, 노리스는 자신의 운전사의 월급을 아스날 구단의 통장에서 빼온 돈으로 주었다는 것이다. 노리스는 데일리 메일에서 제기한 불법 행위 때문에 2년 후 법정에 서게 되었고, 간발의 차로 채프먼을 추문에 끌어들이는데 실패하고 결국 클럽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게 된다. 채프먼은 전통적인 감독의 역할을 부정했다. 다행히 이제 사무엘 힐우드가 구단을 관리하게 되었고, 채프먼은 "전문가가 있는데 간섭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라는 힐우드의 모토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축구계의 그 어떤 감독도 채프먼 만큼 힘이 없었다. 그는 선수 이적, 구단 경영, 그리고 훈련 과정을 모두 관리했다. 이번에는 인정 많은 독재자였다.

  채프먼은 대부분의 팬들이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타 군단을 데려오는 것과는 별개로, 하이버리에 많은 관중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좋은 시설이 필요했다. 조지 메일이 1920년대 말에 채프먼이 말한 바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팬들이 있는 것을 당연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허버트는 그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우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경기장에 나오는 20,000명의 열정적인 팬들이 있습니다. 나머지에게는 뭔가 더 다른 것이 필요했습니다. 채프먼은 클럽이 단순히 축구만 제일 잘하는게 아니라, 팬의 편리를 챙기는데도 앞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30년대 하이버리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스탠드 세 곳에 지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스날 팬인 브라이언 킬브라이드가 회상했다. "30년대에는 역시 비 내리는 것이 곤란한 문제였어. 얼어죽을 걱정은 안했지만, 젖는 것은 다른 문제잖아. 관중 수가 70,000에서 20,000까지 오락가락 했는데, 주로 비가 올때 많이들 안왔지."

  채프먼의 지도 하에서, 하이버리는 전 유럽에서 제일 회자되는 (동시에 세련된) 구장이 되었다. 45,000 파운드를 들여 4,100석의 좌석을 갖춘 웨스트 스탠드가 1932년 12월에 개장했다. 브라이언 킬브라이드가 덧붙였다. "그 스탠드가 지어진 후에 경기장이 확 변했지. 원래 서쪽 스탠드는 그냥 넓기만 하고 비가 내려도 맞을 수밖에 없었잖아. 이제는 관중의 함성이 하이버리 안쪽에서 더 크게 울리게 되었고. 보통은 소리가 위쪽으로 퍼져서 사라졌으니까." 이 현상은 하이버리 지역을 넘어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슬링턴 주민인 나이젤 프랭크스는 <이슬링턴 가제트>에 물었다. "…그런 도가 넘은 비용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국가 위기 사태에 축구 경기장 따위에 그런 돈을 쏟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채프먼은
회의론자들에게 아스날에 관중이 많아 그런 큰 돈을 쓸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세금이 스탠드 짓는 데 들어갔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실은 경기장 입구에서 모은 돈과, 자금 유용을 허용해준 너그러운 이사진 덕이지요."

  채프먼은 그저 큰 스탠드라고 마냥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웨스트 스탠드에 입석이 준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클럽은 런드리 엔드 쪽에 사람을 쌓아두어야 한다고 결정하고, 좌석 확장을 위해 사람을 고용해 쓰레기를 구멍에 박아두기 시작했다. 브라이언 킬브라이드가 회상했다. "온갖 종류의 수레가 스탠드 뒤쪽으로 왔다 갔다 했어. 1913년 같더라고, 하이버리가 처음으로 지어질 때 말야." 하이버리에서 죽은 말 이야기는 이제 민담이 되어버렸다. 노스 뱅크에 너무 가까이 기대고 있던 말이 수레와 같이 구멍으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댄 브레넌은 그의 저서 <공식 아스날 잡록>에서 1992년 노스 뱅크를 철거할 때 그에 대한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적어두었다. 브라이언 킬브라이드도 이 이야기가 흔해빠진 도시전설일 뿐이라고 거들었다. "일꾼이 수레하고 말을 잃은거야. 그러다가 핀치레이의 식료품 장수가 이 이야기를 막 퍼뜨린거고. 허풍이 되게 쎈 사람이었거든. 뭐 그런거지. 그냥 주정뱅이들 안주거리야. 진짜였다면 재밌었겠지만, 사실이 아닌걸 어떻게 해?"

  하이버리를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으로 만들어 준 것은 (오피셜 아스날 프로그램의 문장을 빌리자면 '놀랍기 그지없고 축구계에서는 비할데 없는 건축물'인) 휘황찬란한 이스트 스탠드의 완성이었다. 아르데코 풍의 전면만 해도 다른 구장과는 확연히 달라보였다. 원정 서포터들은 언제나 하이버리 근처에서 발을 옮기며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미들스브로의 공격수인 윌프 매니언은 1930년대 하이버리에서 경기를 치른 적이 있다. "경기장 앞에 쫙 펼쳐진 광경을 보면 살짝 위축되었죠. 지어졌을 때부터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던 에어섬 파크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이버리는 맵시 있고 멋있었죠. 이스트 스탠드로 걸어들어가면 안내인이 모자를 벗어 경례를 했습니다. 제가 뛸 때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이스트 스탠드의 라커룸은 그저 아름다웠습니다. 대리석 목욕탕, 온돌식 난방까지. 완전 고급이었습니다. 이게 왜 대단한거냐면, 상대 구단들이 선수들을 기죽이려고 겨울에 난방을 꺼 놓든가, 여름에 난방을 현기증이 날 정도로 틀어놓든가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아스날은 필요한 것이라면 모두 공급해 주었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깨끗한 수건이 배달되어 있었고, 최고 품질의 맥주와 샌드위치까지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스날은 모든 상대 팀을 공평하게 취급하는, 그런 품위가 있었습니다."

  허더스필드 팬인 토미 윌리엄스도 아스날을 상대할 때면 늘 하이버리까지 먼 길을 왔다. "허더스필드 같이 공장이 있고 매연으로 꽉꽉 들어찬 마을에서 일하는 젊은이였던 내게 30년대 하이버리는 피라미드나, 타지 마할이나 마찬가지였어. 내 친구 에디와 나는 늘 이스트 스탠드 앞에 서서 놀라워서 입을 쩍 벌리고 서있었지. 순백색이었어. 정말 완전 새 건물이었지. 아름다웠어. 그때 우리는 아스날 팀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들이 관중들 앞으로 행진하면, 당시 축구 선수들이야 다들 비슷하게 벌었다지만, 그들은 아주 우리 선수들과는 다른 인종 같았어. 에디 햅굿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건강미를 발산했지. 안내인이 그에게 경례를 하면 막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보이는 거야. 환상적인 광경이었지. 드라마로 써도 될 거야. <댈러스>나 <다이내스티> 같았지. 완전 신세계야. 허더스필드가 20년대를 지배했기에, 아스날이 그 자리를 뺏어간게 분했어. 그러나 1930년대 하이버리는 완전 꿈의 세계였지. 그런 팀을 위한 준비된 무대였어."

  1935년이 되자 런드리 엔드에서 서서 보는 관중들에게도 상황이 좋아졌다. 채프먼은 관중들을 이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천장 건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브라이언 킬브라이드는 런드리 엔드에서 천장 안쪽과 바깥쪽에 서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비웃곤 했다고 한다. "천장 안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약골이라고 불렀지. 상대가 누구든가 바깥에 서 있는 우리는 사나이들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사나이가 아니라 멍청이지만. 하지만 런드리 엔드에 천장이 설치됐다는 것은 경기장에 일찍 가는게 좋다는 소리였어. 비가 내리는 날에 경기를 보면 재빨리 천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거든. 제때 비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골려주기도 하고."

  최신 건축 기술을 도입한 정도로는 성에 안찾는지, 채프먼은 현대식 장비도 들여놓는다. 1932년 그는 관중들이 경기가 몇 분이 남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45분이 표시되는 거대 시계를 들여놓았다. 조지 메일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채프먼은 축구경기가 큰 행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팬들이 그 일부가 되길 바랐습니다. 몇 분 남았는지 알게 해주는 시계가 경기에 긴장감을 더해줄 것이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축구협회는 채프먼의 사고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심판들에게 압박이 될 것이라며 시계를 금지시킨다. 그들은 결국 사우스 뱅크의 그 유명한 시계는 허용하고 만다. "어쨌거나 팬들이 이제 몇 분 남았는지는 알 수 있었죠." 메일이 비꼬는 투로 덧붙였다.

  아직도 몇몇 주민은 하이버리가 축구 성지가 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조지 메일이 말했다. "몇몇 선수들은 화난 지역 주민들에게 항의 편지를 받았어요. 채프먼도 받았을거에요, 말한 적은 없지만. 요는 대공황이라서 노동자들이 살기 힘든데, 아스날이 멋진 경기장 짓는답시고 그런 돈을 쓰는게 거슬린다는 것이에요. 맞는 말이기는 한데, 우리 계획이 부정한 것도 아니고, 경기장에서 열심히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투자한 만큼 따라 오는것이죠. 누구에게나 맞는 말이지요." 채프먼의 대형 선수 구매는 마치 영국의 불황을 몰고 오는 것만 같았다. 그가 10,000 파운드라는 기록으로 볼튼 원더러스에서 데이비드 잭을 사 왔을때, 언론에서는 부동산 가격 폭락을 보도했다. 클리프 바스틴을 데려올 때는, 영국의 실업률이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이제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라는 새 별명이 붙은 아스날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 매 경기마다 40,000명의 홈 관중을 모아야만 했다. 대공황이 런던을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박은 늘 성공했다

  채프먼의 기저에는 늘 모순이 깔려 있었다. 허더스필드 감독일때는, 선수나 경기장에 큰 돈을 쓰는 것은 '축구계의 잘못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축구선수의 프로화도 되도록이면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대적인 물가를 고려할때) 프리미어리그 시대의 개막까지 축구계의 그 어떤 감독도 그만큼 선수나 경기장 확장에 큰 돈을 쓴 적이 없었다. 조지 메일이 주장했다. "어쨌거나, 채프먼은 최고의 흥행사였습니다. 돈을 쓰는 것까지 포함해서 다른 모든 것은 팀이 환상적인 쇼를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 시대의 포병대 팬들이 증명하듯, 30년대 런던에서는 하이버리에서 아스날을 보는 것보다 즐거운 유흥거리가 없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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