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2000년대-고요를 깨우다

하이버리에서 '챔피언스 리그, 놀고 있네!'라는 응원가를 제외하면 요즘 가장 신랄한 응원가는 원정 서포터들이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부르는 '우리가 응원가 대신 불러줄까?'일 것이다. 노스 뱅크의 말 많은 서포터들도 노래를 하지 않는 아스날 팬들을 무안하게 만드려고 같이 따라부르는 것이 더 떨떠름하다. 전좌석제 실시 이후 경기날은 눈에 띄도록 조용해졌다. 토튼햄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같은 경기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크고, 최근에 아스날 팬들은 유며감각이 죽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아스날 서포터들이 티에리 앙리를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이름 붙인 이후, 실수가 잦은 파스칼 시강도 '세계 최악의 선수'라는 응원가를 얻었다. 시즌 초에 무척 흔들린 이후 올레그 루즈니는 '우크라이나에서 루즈니를 데려왔다네'라는 응원가를 얻었다.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캠벨을 데려왔다네'를 일부러 베낀 것이다.

  아스날 팬 대미언 해튼이 설명했다. "하이버리 안에서도 목소리가 큰 서포터들이 있어. 내가 80년대에 좋아하던 응원가 중에 '거스가 국가대표에 가서, 월드컵을 우승한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있으리라'라고 있는데, 루즈니나 시강을 놀리면서 다시 부활한 셈이야. 지난 몇 년 동안에도 우리가 여전하다는 증거지. 하지만 하이버리가 '도서관'이라고 놀림받는데도 이유가 있어. 요즘 경기장에서 제일 부끄러운게 뭐냐면, 노스 뱅크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주위의 팬들이 너무 조용하니까 화가 나서 팔을 막 휘두르는 광경이야. 노래 좀 같이 부르자고. 그러면 아무도 끼지 않고, 일어난 팬들만 더 흥분하고. 하이버리의 침묵이 싫어 . 축구는 소란스럽고 불쾌한 거야. 주말의 점잖은 여가생활 따위가 아니라. 하지만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그리고 이걸 해결해보려고 안달난 사람이 너무 없어."

  조용한 경기장은 하이버리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표값은 천문학적으로 상승했고, 기존의 지역 주민들과 노동계급 팬들이 줄어들게 되었다. 전좌석제는 편안함을 원하는, 따라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꺼리는 새로운 종류의 팬을 모았다. 1950년대부터 경기장에 다녔다는 아스날 팬 브라이언 도스는 역사적으로도 '아스날 팬들은 노래를 열심히 부른 적이 없어요. 선더랜드 대 뉴캐슬 경기랑 북런던 더비랑 비교해보면 우리가 한참 쳐지지요. 계급 문제인지, 아니면 이게 '런던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스날 팬들이 전반적으로 훨신 조용합니다. 전좌석제 이후 관중들이 마치 극장에 오는 것처럼 변했어요. 분위기를 띄우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즐거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죠. 축구경기는 상호작용인데 말이에요."

  전좌석제의 결과에 화가 난 다미엔 해튼이 말했다. "경기장에 노래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야. 관중들은 아직도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고, 선수들은 박수로 화답하거든. 하지만 선수들의 수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너와 나'의 구분을 짓기 시작한 것 같아. 80년대에는 선수들과 관중들이 훨씬 자주 대화했어. 선수들에게 '트위스트 춰봐요'라고 했지. 골키퍼 존 루키치부터 시작해서. '조니, 조니, 트위스트 춰봐요'하면 루키치가 엉덩이를 흔들었어. 그 다음에는 리 딕슨에게 시켰고, 뭐 이런 식으로 계속 했어. 만약 경기를 이기고 있으면, '루키치, 루키치, 지금 몇 대 몇이에요?'라고 외치면 그가 등 뒤로 손가락을 들어 알려주었지. 요즘은 그런 것은 다 사라졌지. 아 물론 난리좀 떨면 '손 좀 흔들어줘요' 정도는 할 수 있어. 하지만 어느 정도 개성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 같아. 다시 올 것 같진 않다.

  난 또 가족 중심의 경기전 행사가 불편해. 구너사우르스, 경기장을 걸어다니는 아이들, 장내 방송으로 이상한 짓거리를 시키고. 음악은 너무 커서 내가 부르는 노랫소리도 안 들려. 그냥 한 번 와본 사람들하고, 하이버리에 온 가족들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나도 내 아이들이 있으면 그렇게 부드러워지겠지만, 나 같이 술 좀 먹고, 소리 좀 치고 싶어하는 남자들은 이제 없어도 되는 존재 같아. 그리고 우리가 경기장에서 사라져도 클럽은 신경도 안 쓰겠지.

  자리에 앉아가지고 경기장을 살펴보고 있으면 IKEA 매장에 온 것 같아. 하이버리에 와서 특히 즐거운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가족관객들이 보이고, 남정네들이 좀 보이기는 하는데 여자들하고 애들 사이에서 욕하고 소리지르기가 쉽진 않겠지. 이래가지고는 신나지가 않잖아. 사회에서 남자들이 자신의 위치에 혼란을 겪는 예시 중 하나라고도 하더라. 축구장에 가서도 욕도 못하고 공격적이지도 못한다면 대체 어디서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이야? 나는 새로운 축구 팬을 '혼비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단 말야. 그 피버 피치라는 책 있잖아,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갑자기 그 책 때문에 전좌석 경기장이 나타날 때 쯤 축구가 중산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하이버리의 계급구성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면 놀라워. 하지만 안전 때문에 경기장 구조를 바꾸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 자연스러운 결과야.

  2003년, '도서관'을 깨우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레드액션이 창립되었다. "매년 아스날 팬들의 평균 연령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티켓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지만, 공급은 적기 때문이죠. 이 경우 클럽은 티켓 가격을 올리고, 노래를 부르는 젊은 팬들이 경기장에 올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입석이 사라진 이후 팬들의 파편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친구들하고 근처에 앉을 수 없기 때문이고, 이래서는 분위기가 약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기일에 즐거움과 활기, 그리고 약간의 기발함을 통해 하이버리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레드액션을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수줍어하는 남녀들이 경기장에 너무 많아요. 그래서 경기날 분위기를 향상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행동을 취했습니다. 클럽과 협상을 좀 해서, 아스날의 유명한 경기를 모은 7분짜리 영상을 만들어서 홈경기 시작하기 전마다 틀었죠. 또한 카드섹션을 홈경기마다 만들었는데요, 2005년 2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에 정말 멋진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후 '데니스 베르캄프 데이'도 구상했습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칼링컵 경기 때 레드섹션을 만든 것이 레드액션의 가장 큰 공헌이라 할 수 있다. "레드액션은 관중들이 노래를 부르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아스날 팬들은 칼링 컵 경기를 볼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바람에, 비싼 경기는 못 보는 젊은 팬들이 많이 찾아오죠. 관중 분위기가 훨씬 좋고, 클락 엔드에 원정팬들이 가득한 점도 좋지요. 시끄러운 원정팬들이 필요한 법이거든요. 이러면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첼시와 스토크 시티와의 FA컵이 시끄러웠던 것은 별로 놀랍지도 않아요. 원정팬이 6,000명이나 와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으니까요. 또한 이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앉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새 경기장에 레드섹션을 만들 수만 있다면, 노래 부르는 사람들끼리 같이 앉을 수 있고 가족관객들에게 거슬리는 언어를 사용해도 될 것입니다. 특히 하이버리의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이 때라면, 지금 세계 최고의 축구를 보면서 매 순간순간을 즐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노래 부르는 팬들에게는 화가 나는 일입니다. 혼자 유세떠는 사람 같잖아요. 근처 관중들의 무관심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시도는 해봐야겠죠."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