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1930년대-타지 마할

렇다면 1930년대 마치 '타지 마할' 같았던 하이버리를 들리는 팬들의 삶은 어땠을까? 1990년대 필자가 만났던 여러 팬들이 사실 장밋빛 환상이 섞여있는 감이 있다고 하였다. 두 명의 팬이 포츠머스가 원정을 왔을때 싸움이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클라이브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폼피는 팬들을 떼로 몰고 왔고, 대부분이 선원들이라서 매우 무서웠지요. 다른 클럽 팬들과 달리, 경기장 주변에서 사람들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다른 서포터들은 토튼햄과의 경기가 있으면 산발적으로 싸움이 터졌다고 말해줬다.

  대부분의 서포터들이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홈 서포터와 원정 서포터의 자리를 나누지 않던 시절이기에 원정 서포터와 말싸움을 할 수도 있었고, 하프 타임에는 관중석에 서 있는 사람들의 홍수를 헤쳐나갈 수만 있다면 반대쪽 스탠드로 이동할수도 있었다. 다 제쳐두고서라도, 하이버리에서 7만 관중은 가볍게 넘기던 시절에 서포터들 중 중요한 일부가 되는 매혹적인 기분이 최고였다. 1935년 3월, 아스날은 3연속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총잡이들이 선더랜드를 안방에서 맞이하는 것을 보기 위해 73,295명의 기록적인 숫자의 관중들이 하이버리에 꽉꽉 들어찼다. 경기 시작 한시간 전에 이미 관중석이 모두 찼다. 뒤에 써내려갈 이야기들이 층분히 보여주듯이 아스날 관중들의 30년대는 꼭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조지 스테픈스와 리차드 모드가 기억하기에는 아스날 팬들은 그 이상 즐거울 수가 없었다.

  조지 스테픈스가 회상했다. "당시 나는 코흘리개였는데,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친구였던 피트 아저씨가 우리 집에서 하는 술집에서 날 데려갔었지. 점심을 먹고, 오픈탑 버스에 올라타가지고는 블랙스톡 로드를 쭉 내려가는거야. 첼시나 토튼햄 같은 팀이 오면 한 시간을 일찍 와야 해, 안 그러면 경기장 밖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하거든. 그 때 나처럼 작았던 애들은 이리저리 떠밀렸어. 지금도 키가 170 센티미터 정도 밖에 안 돼. 피트 아저씨가 커피에다가 위스키를 타가지고 병에 담아오곤 했는데, 하프타임이 되면 날 보고 '이거 좀 마셔보렴, 부모님은 몰라.'하면서 병을 건내줬지. 당시 사람들이 참 술을 많이 가져왔어. 지금은 힘들잖아. 마치 암묵적 규칙같은게 있는데, 쪼만한 사람이 관중들 사이에 갇혀 가지고 경기를 볼 수가 없으면 그냥 사람들 맨 앞으로 갈 수 있게 모두 길을 터줬어. 모자 챙에 툭툭 부딛히던 기억은 선명해. 그 작은 키로 볼 수 있는게 그런 거야. 챙있는 모자가 바다처럼 퍼져 있고 담배 연기가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지. 나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앞으로 보내졌고, 경기가 끝나면 피트 아저씨와 만났어. 한번은 피치에 아주 가까이 가서 알렉스 제임스 셔츠까지 만졌었어. 아마 그 주 내내 손도 안 씻었을거야!

  그 때 사람들은 주로 정장을 입고 왔어. 노동자들이 다 그랬어. 아니면, 일하고 바로 오는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고 오는 경우도 있었고, 돈이 남으면 경기 시작하기 전에 술집에서 한잔 하고 오는 거야, 왜냐면 당시 사람들이 주중 5일 일하고 다음날 오전까지 일하거나 그것보다 좀 더 많이 하고 그랬는데, 대공황 때라서 일이 들어오면 이것저것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냥 했지. 경기장은 알록달록하지 않고, 회색과 갈색의 바다였어. 머플러를 두르던 사람들이 조금 있긴 했는데, 뭐 그때는 별로 안 하던 짓이었지. 빨간색 흰색 딸랑이도 그때 나왔지. 당시 클럽의 상품 판매 수준이 딱 그 정도였어!

  가끔 경기를 공짜로 본 적도 있었어. 피트 아저씨가 날 출입문 쪽으로 밀어 보내고, 입구에 서 있는 직원을 보고 '그냥 보내줘요, 꼬맹이잖아요.' 그러면 가끔 직원이 웃으면서 '들어가렴.'하면서 보내줬지. 다른 애들도 그런 식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보면 그 시절은 공식 기록보다 관중수가 더 많았다는 얘기지. 경기 전에, 장정 몇이 경기장 주위를 돌면서 선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들고 한 바퀴 쭉 돌아. 하프 타임에 한번 더 하고, 경기가 끝나고 점수가 적힌 판을 돌고 다시 돌고, 이제 그러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경기 결과가 막 퍼지는거지. 빌라 경기하고 쉐필드 웬즈데이 경기 결과를 귀기울여 체크했지. 아 물론, 스퍼즈 경기도.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 팀이지. 때타지 않은 강렬한 붉은색과 흰색의 유니폼, 정결하고 아름답지. 1934년에 열린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경기는 아예 경기장 문을 잠가서 들어갈수도 없었어. 아스날 선수들이 대표팀에 엄청 많았거든. 가끔, 5월이나 8월에 엄청 더운 날에는, 문을 일찍 닫아가지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게 하는 거야. 당시 사람들은 재킷을 벗자니 햇볓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쪽을 택했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더우면 아예 웃통은 다 벗더만. 세상이 참 많이 변했잖아!"

  리처드 모드씨는 자랑스러워 해도 될만큼 1930년대 중요 경기 대부분을 관전했고, 1991년 필자에게 그 추억에 대해 털어놓았다. "우리들의 스포츠였어, 노동자들의 스포츠. 1930년대에 하이버리 입석에 들어가려면 1 실링이면 됐어. 그러니까, 물가 상승을 따져봐도 축구 보는데 드는 돈은 그 때에 비해서 엄청나게 올랐다는 거야. 지금 내 아들이 아스날 경기를 서서 보려해도 7 파운드나 내야 하잖아. 말도 안되지. 나중에는 10파운드를 물릴지도 몰라. (저자 주 : 14년이 지난 지금, 리처드 모드의 아들이 경기를 보려면 44.50 파운드를 내야 한다. 6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할러웨이의 술집에서 마시고 한 대 핀 후에, (그때는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지하철을 타고 경기장 근처의 역에서 내리는거야. 거기서 노래도 부르고. 주로 선수들 이름을 불렀지. 그냥 그것 뿐이었어. 당시에는 노랫말을 지어가지고 붙일만한 가요가 별로 없었거든. 선수들은 무거운 면 셔츠를 입고 경기를 치렀어. 1930년는 정말 영화 같았어. 그때 원정왔던 선수들을 좀 봤어야 해. 딕시 딘이라고 있었지. 정말 대단한 선수였지만, 윌프 코핑이나 허비 로버츠를 상대할때는 헤매기 일쑤였어. 그렇다고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그가 싫었다는 것은 아니야. 여전히 그를 존경하고, 또 어느 정도는 그를 보기 위해 돈을 내는 것이지. 다만 우리는 우리 팀을 응원하는 것이었어. 다른 팀에게 야유를 퍼붓는게 아니라.

  빌라가 원정 오면 폰고 워링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고, 블랙풀이 오면 스탠 매튜스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이지. 사실 그 선수들도 잘하면 좋지. 연극을 보러 가면, 주인공이 누구든 잘하길 바라는거랑 똑같은 거야. 30년대에는 팀과 상관 없이 모두 경외롭게 쳐다봤던 선수들이 몇몇 있었어. 그때 우리가 더 순수했던 건지도 몰라. 상대 팀이 골을 넣어도, 멋지게만 들어갔으면 박수를 쳤지.

  우리가 서서 경기 보던 것에, 홈 경기마다 살아있는 오리를 데려오는 남자가 있었어.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었어. 노망난 할망구마냥 미쳤나 보지. 한번은, 오리가 남자 품에서 벗어나서, 경기장 직원이 그걸 쫓다가 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쿵하고 넘어졌어. 직원은 표정이 영 안 좋았지만, 내 주위의 관중들은 전부 숨이 막히도록 웃었지. 관중들은 많았어. 가끔 되게 불편했고, 당시에는 관중 안전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어서 그냥 참아야했지만, 사실 그게 축구잖아. 아스날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이 모였다는 그 선더랜드 전에 나도 있었어. 완전 살풍경이었지, 모두 흔들흔들 밀고 당기고. 당시에는 별로 신경 안 쓰던 것이었지만, 몇년 전의 힐스보로 사태를 생각해보면 그날 하이버리에 사고가 없었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해. 내 친구들 코트와 신발이 벗겨질 정도로 사람들이 가깝게 붙어있었거든. 그때는 선수 하나가 골대 가까이 가기만 해도, 스탠드 아래쪽으로 몰렸지. 말했듯이, 그냥 시절이 그랬어. 요즘만큼 질이 나쁘지는 않지만 욕설도 있었지. 한 놈이 욕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여기 숙녀분도 계신다네.'하면서 조용히 시켰지. 그러면 그게 끝이었고. 요즘 관중들은 아주 그런 욕설을 노래로 부르던데 내 얼굴이 다 붉어져. 내가 늙은건지 원."

  조지 메일도 당시의 관중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끝이 안 보이는 관중들 쪽으로 달려나가곤 했죠. 당시 돈 벌기는 힘들었고, 그래서 그들 중 몇몇은 일주일 내내 돈을 아꼈다가 우리 경기를 보기 위해 다 썼지요. 허버트 채프먼이 늘 저희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더군요. '가서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어라.'고요. 그가 꿈꾸던게 이런 것일 거에요. 꽉 찬 경기장, 그리고 강한 팀. 가끔, 이 장관에 숨이 멎을 것 같기도 했어요. 매번 제가 하이버리에서 그 관중들을 향해 달리는 그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지요."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새천년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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