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Orion Books에서 출간된 Jon Spurling의 저서의 번역본입니다.

2000년대-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각주:]

2001년 12월, 아스날과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경기 직전. 아르센 벵거 감독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증폭되었다. 그가 자신의 미래를 클럽에 '조만간' 맡기겠다고 약속하였음에도, 아직까지 계약을 공식적으로 연장하지 않아 시즌이 끝나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한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의 빈자리를 메꿀 것이라는 추측이 돌았다. 또한 아스날도 부진하고 있었다. 에두가 회상했다. "시즌 초에 조금 부진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아스날 기준으로 말이죠. 또한 아르센 벵거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아스날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잘하지 못하면, 패트릭 비에이라가 하이버리를 떠날뻔 했던 저번 여름이 또 반복되었겠죠. 챔피언스리그에서 잘하는 것이 선수들의 만족시키기 위해서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스날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살펴보면 도저히 유벤투스를 꺾을 수 없어 보였습니다."

  아스날이 유럽에서 부진한 원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인터뷰에서 아르센 벵거는 신중하게 발언했고, 실패로 인한 심리적 영향에 대해 말하는 것도 꺼렸으며, 아스날의 스타일이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더욱 인정하지 않았다. 페어스 컵에서 아스날을 위해 뛰었던 조 베이커에게 한 가지 견해가 있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옛날부터 유럽에서 강했습니다. 맨유는 자신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뮌헨 참사만 아니었으면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 대회를 우승했을 겁니다. 리버풀은 60년대에 UEFA컵을 우승했고 역시 늘 잘할 수 있었죠. 두 팀 다 오래전부터 유럽 대회에 대한 자신감을 타고났습니다. 반면 아스날은 1970년까지 페어스 컵도 아승해보지 못했고, 24년 후에야 컵위너스 컵을 우승하였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스퍼즈도 60년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에서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아스날은 경기장에서 나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축구에서는 자신감이 전부니까요."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기자 헨리 윈터는 특히 벵거 아래에서의 부진을 중점으로 약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벵거는 페어플레이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아스날이 리그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잘 먹혀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독일이나 스페인 팀 같은 챔피언스리그 상대들까지 체스게임 하듯이 축구를 하려고 했죠. 그런 상대들에게는 물샐틈 없는 수비를 선보여야 합니다. 아스날의 수비진을 살펴보면, 콜이나 로렌 같은 선수는 안정적인 풀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윙어에 가까운 선수입니다. 벵거가 수비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수비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그의 팀은 화려한 축구를 합니다. 언제나 공격을 해야한다고 지시하죠. 하지만 아스날이 단단한 수비를 가진 팀과 붙으면, 화난 기색을 보이고, 침참함을 잃고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상대 수비를 뚫을 방법을 모색합니다."

  이탈리아 축구의 '올드 레이디'가 하이버리의 모습을 드러냈고, 아스날의 악몽이 될것처럼 보였다. 유럽에서 가장 비싼 골키퍼였던 지안루이지 부폰이 골문을 지키고 있었는데다가 비린델리, 페소토, 타키나르디, 몬테로 네 명이 강력한 수비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다섯 명은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아스날을 완벽히 틀어막을 것이다." 경기 중 교체로 들어온 질 그리망디가 인정했다. '강력한 수비진 이외에도, 유벤투스에는 델 피에로, 트레제게, 네드베드가 있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스타일을 지닌 선수들이었습니다. 공간을 만들어내고 상대를 제치는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었어요. 특히 네드베드가 그랬죠. 하이버리에서 오세르와 붙은 적이 있었어요. 아스날이 편히 이길 수도 있는 경기였지만, 오세르 선수들, 특히 시세가 그날 내내 아스날 수비수들을 농락했습니다. 하지만 유벤투스 전은 우리의 접근법이 옳았고, 대인방어가 효과적으로 먹혔습니다."

  아스날은 유럽에서 이탈리아 팀들을 압도해왓다. 파르마, 삼프도리아, 인터 밀란, 로마가 지난 15년간 아스날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하이버리에서 인터 밀란에게 대파당하고, 웸블리에서 피오렌티나에게 패배하기도 했고 벵거는 '받아들이기 힘들군요.'라고 감상을 표했다.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1980년 컵 위너스 컵을 연상케했다. 토리노에서 베센이 결승골을 넣어 아스날이 승리를 거두었다. 트레제게와 네드베드가 아스날의 수비진을 분쇄하고 슛을 날렸지만, 부상당한 데이비드 시먼을 대신 나온 스튜어트 테일러가 환상적인 선방으로 막았다. 전반전이 반쯤 흘렀을쯤 부폰의 실수로 아스날이 앞서나갔다. 패트릭 비에이라가 부폰의 정면으로 슛을 날렸고, 프레디 융베리가 흘러나온 공을 집어넣었다. 얼마 후, 티에리 앙리가 20야드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며 늘어가는 프리킥 실력을 증명했다. 후방에서 매튜 업슨의 활약으로 수비는 탄탄해 보였지만, 솔 캠벨이 걷어내려는 공이 재수 없게도 스튜어트 테일러가 지크는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질 그리망디가 회상했다. "머리를 식힐 때였습니다. 예전에도 다잡은 경기를 놓칠뻔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전년에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2-0으로 앞서다가 2-2로 비긴 경기가 생각나더군요. 위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유벤투스가 동점골을 넣기 위해 몰아붙이는 가운데, 데니스 베르캄프가 전면에 나섰다. 헨리 윈터는 그 상황을 시적으로 묘사했다. "맨유에 칸토나가 있다면 아스날에는 그가 있습니다. 베르캄프는 위대한 재능을 지닌 선수이며 욕심이 없습니다. 모든 프로 선수들의 귀감이며, 다른 선수들은 볼 수 없는 공간을 꿰뚫어 보는 선수입니다. 융베리에게 준 패스는 그저 숨막히게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질 그리망디가 회상했다. "티에리와 데니스는 둘 다 이탈리아에서 뛴 적이 있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 둘은 마치 그날 밤 이탈리아 축구에 성명이라도 발표하는 듯 했습니다. 경기 막판에 유벤투스를 막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비책이 필요한 터였습니다. 데니스가 박스 외곽에서 공을 받아 몸을 꺾어 비린델리를 속이고 프레디 융베리 앞에 공을 떨구어주었습니다. 융베리의 슛은 부폰을 우아하게 넘겼구요. 그날 하이버리 잔디도 너무 향긋했어요. 정말 활기찬 오후였고 관중들도 행복하게 집에 돌아갔습니다. 제게도 좋은 추억입니다."

  패트릭 비에이라가 회상했다. "아스날이 유럽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밤이었습니다. 다만 자주 잘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물샐틈 없이 수비했고 틈날 때마다 공격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야합니다. 승리해서 기쁩니다."

  하이버리의 그 누구도 아르센 벵거만큼 기쁘진 않았다. 다음날 점심, 그가 아스날과의 계약을 3년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 데인 부회장은 기뻐하며 벵거를 '기적의 일꾼'이라 일컬었다.

  그의 팀이 보여줄 것은 아직 더 있었다.



머릿말

태동기
침입자들-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1)-자리 잡기-첫번째 경기-토튼햄 놈들-아스날의 첫번째 슈퍼스타

1930년대
채프먼이 하이버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고백:건설 인부들-타지 마할-"위이 알렉"-가장 가슴쓰린 경기-하이버리의 전투-"이 친구들 만날 때가 됐군"-야유 받은 친구들:브라인 존스-고백:테라스 청소부-은막 위에서

1940년대
뻥 터져버렸네-내 축구는 어디 있지?-"계집들이 여기에 있어"-컬트 히어로:조 머서

1950년대
환한 불빛 아래서-구사일생-앙증맞은 것들이 돌아왔다네

1960년대
텅 빈 공간-가장 위대한 인간-두 스탠드 이야기-규칙 따위 필요 없어-고백:정비사, 악사-런던의 악동들

1970년대
부활-어중간하게 하지마라-머리부터-잊혀진 영웅-찰리 조지 만세-컬트 히어로:테리 만시니-때리고 부수고-편견 없이?(1)-교감하기-컬트 히어로:윌리 영-불세출의 천재

1980년대
검투사들-라디오 매치-야유 받은 친구들:하이버리의 무능력자들-이게 아직도 축구로 보이니-컬트 히어로: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찰리 왕자님의 길-아스날 액션 그룹-고백:마스코트, '부자 되세요' 걸-"문을 열고 나가 아스날의 일원이 되어라"-컬트 히어로:페리 그루브스-막대기와 돌맹이-고백:팬진 편집자-기업정체성-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으리

1990년대
정권교체-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리 생애 최악의 순간-사요나라 노스 뱅크-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2)-개좆?-컬트 히어로:앤더스 림파-환상특급-심장마비-베르캄프 원더랜드-초전박살-저스트 던 잇-맨체스터 촌놈 길들이기-아름다운 날-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3)-이상 기류-록키를 추억하며

2000년대
바바붐(1)-사인해서, 봉인하고, 배달 완료-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4)-고백:변호사, 암표상, 경기장 관리인, 안내인-타이틀 냄새가 난다-바바붐(2)-권력 이동-무적의 팀?-컬트 히어로:레이 팔러-외인부대-고요를 깨우다-편견 없이?(2)-감회어린 곳-유럽 제패의 길-초침은 흘러가고-그리고 마지막

감사의 말



Posted by 시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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